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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영하 0도가 된다는 추운 밤. 4평 남짓한 가게에서 닭 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추운 바깥 날씨를 어른다.
"아저씨, 그래도 이 장사가 좀 나으신가 봐요."
"그러지, 쪼메 낫지… 우선 야채는 힘이 부대껴서(딸려서) 못햐!"
내가 사는 동네 앞에 있는 시장통 골목엔 치킨센터가 여럿 있지만 이렇게 비메이커(?) 치킨 집도 있다.
아이가 커가면서 치킨 먹는 일도 좀 줄어서 별로 들를 일 없던 이 가게에, 그저 추워지는 날씨에 오늘은 닭이라도 한 마리 팔아드리자는 생각이 들어 아주 오랜만에 들렀다.
70이 다 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이 가게는 몇 달 전까지는 야채가게였다.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가게였으니 근 10년 넘게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3년여 전 앞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또 그 옆에 야채만 전문으로 하는 큰 가게가 들어서면서 노부부가 운영하던 야채가게는 사양길에 들어서야 했다. 더구나 그 야채전문가게는 어느 교회에서 신자들끼리 6명이 각각 파트별로 담당을 하여 제법 전문적이고 값싸게 야채를 공급하니 웬만한 주부들은 옆집 눈치를 보면서 그 가게로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대형마트에서 함께 살 때가 아니면 되도록 이 집을 이용하려 했지만 내가 봐도 이미 경쟁력이나 여러 서비스에서 뒤쳐지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동네에서 단골이 많았던 것은 물론 두 분 모두 성실한 덕분에 근처 분식가게에서 급하게 주문전화라도 오면 파 한 단이라도 무 몇 개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해 주시는 모습을 길을 지나며 많이 보아왔다.
다 늙은 나이에 배운 오토바이가 그래도 쓸모가 많다고 웃으면서 열심히 배달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그러다 자꾸 매상이 줄고 적자가 쌓이면서 그렇잖아도 아들의 사업으로 지게 된 약간의 빚까지 자꾸 갚지 못하게 되면서 가게는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극처방으로 옆 큰 가게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와 신선한 야채를 팔겠다는 생각에 새벽 1-2시까지 문을 열고 팔다가 아예 가게에 있던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차로 물건을 떼어오면 다시 장사를 하는, 그야말로 24시간 강행군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가 기운 매상을 돌이킬 방법은 없었고 점점 쌓여가는 빚과 지친 몸에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겟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에서 십수년을 벌어먹었는데 이 나이에 다른 모르는 동네에 가서 장사를 할 수도 없고 몇날며칠을 생각 끝에 궁여지책으로 업종을 바꿔 보기로 하셨단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정식으로 치킨가게를 할 수는 없고 그저 생닭도 팔고 닭도 튀겨주면서 손님들이 원하면 즉석에서 닭도리탕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이 가게를 하기로 했다.
이 닭집을 시작하고 우선 저녁이면 팔리지 않아 시들어 가는 야채를 바라보며 한숨짓던 고민이 없어지고 오늘 덜 팔리면 내일 또 팔지 하는 위안도 할 수 있어 그나마 이 장사가 몸도 덜 고달프고 일한 것에 비해 수익도 조금 더 나은 거 같아 빚 갚을 때까지 이 장사라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튀겨지는 닭을 기다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요즘 쌀협상 문제로 생존문제가 걸려있다며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농민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시위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회는 이들에게 얼마나 일한 만큼의 대가와 희망을 줄 수 있는지 '좀더 나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닭이 다 튀겨졌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정신이 들었다.
딸아이도 내 마음을 아는지 깨끗한 양념통닭집이 아니라고 해서 투정하는 일없이 문도 없는 추운가게 안 의자에 앉아 말없이 닭이 튀겨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