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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검>의 연소하(윤소이)
<무영검>의 연소하(윤소이) ⓒ 태원 엔터테인먼트
최근 국내의 각종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가 부쩍 늘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장밋빛 인생>같은 올해 대표적인 드라마들의 성공.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오로라 공주> <사랑니> <무영검>같은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은 여성 캐릭터의 능동성에 관련된 변화다.

우리는 과거 영상문화에서 접해오던 여성상의 전형은 종래 남성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던 이야기에서 수동적으로 남성에 끌려가거나 단순히 주변부의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여성 캐릭터가 오히려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해나가는 설정이 강화되었고, 보다 다층적인 심리와 내면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구체화하는 캐릭터들이 증가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 mbc
영상 문화에서 그려내고 있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보면, 연륜과 의지를 겸비한 '성숙한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진다. 치기어린 감성이나 남성의 보호, 선택에 의존하는 공주처럼 현실성과 일상성이 결여된 여성 캐릭터는 최근 환영받지 못한다. 종래 공주나 청순가련형처럼 전통적인 영상문화에서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묘사되는 캐릭터에 대중들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현대 여성상은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존재로 묘사된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쾌걸 춘향>의 성공은 종래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이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성상을 전복하는 캐릭터의 힘에 빚진 바 크다. 특히 '김삼순'의 경우에는 트렌디 드라마에서 30대, 노처녀, 일상성이라는 키워드로 정의 내려지는 여성상의 전범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영상문화의 속성 속에서, 이들은 대개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지만 자신의 일과 사랑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꿀리지 않는 당당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제빵사나 조명 디자이너, 미용사 같은 극중 전문직 여성들의 직업이 부각되는 것 역시 맹목적인 사랑 이야기의 환상을 주입하는 데서 벗어나, 여주인공의 주체성을 부각시키고 대중이 감정이입하기 쉬운 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로 등장한 <사랑이 기적이 필요해> <영재의 전성시대> 같은 작품들에서 묘사된 캐릭터들은 엄밀하게 말해 삼순이의 아류작이다. 종래 한국 영상문화 속 여성 캐릭터 창조에 있어서 30대 여성은 비주류에 가까웠다. 그러나 종래 주변부에 머물던 30대 여성 캐릭터는 이제 최근 영상문화 속에서 열정과 성숙의 경계선에서 균형 잡힌 존재로 묘사된다.

<오로라 공주>의 정순정(엄정화)
<오로라 공주>의 정순정(엄정화) ⓒ 이스트필름
30대라는 물리적 나이는 세상물정에 대해서 어수룩하지도 않지만, 젊음의 열정과 낭만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다. 공주 같은 환타지 속의 존재보다 대중이 보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캐릭터를 선호하는 최근의 추세에서 30대 여성은, 대중의 자화상을 반영하며 그들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러한 '변종 캔디'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의 몰락은 올해 드라마 문화를 관통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급진성이 좀더 두드러진다. 눈여겨 볼 것은 보수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사용되는 '모성애'를 강조하는 여성상이 전혀 색다른 장르 영화 속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과정이다.

<친절한 금자씨>나 <오로라 공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색깔을 드러낸다. 마초적인 남성 문화의 영역으로 자주 사용되던 복수라는 소재에서 여성 캐릭터가 가지는 차별성은 바로 '모성애'와 '죄의식'이다. 여인들의 복수극에서 모성애는 희생과 헌신의 개념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뒤틀린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과 과격한 반골 의식으로 나타난다. 남성들의 대결에서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머물던 복수극은, 모성애와 죄의식이 결합되면서 법과 제도가 처리하지 못한 범법 행위에 대하여 공적인 응징으로 색깔을 달리한다.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최진실)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최진실) ⓒ kbs
성 역할의 전복과 파격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연애술사>나 <연애의 목적>같은 작품에서는, 종래 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을 조롱하며 젊은이들의 성 담론을 하나의 일상적인 화두로 접근한다. 한편으로는 '희원'(연애술사)이나 '최홍'(연애의 목적)같은 캐릭터를 통해 남성 중심적 사회 질서에서 남성에 비해 성적 편견과 통념에 억압되어있는 여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시선도 탁월하다 .

한편 <사랑니>나 <녹색의자>같은 영화에서는 미성년자 남성과 성인 여성의 사랑이야기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얼핏 원조교제라는 자극적인 설정 자체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성인 여성의 자각과 성장이라는 테마에 있다. 주인공의 행위는 사회 통념의 입장으로 봤을 때 부적절해 보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변의 왜곡된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순간순간 충실해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무영검>이나 드라마 <신돈>에서는 왕자(남성)을 지키는 여성이라는 색다른 성 역할의 전복을 보여주었다. 남성이 우유부단하고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로 묘사되는 데 비하여, 여주인공인 연소하(윤소이)나 노국공주(서지혜)는 시종일관 목적과 신념이 일치하며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감정이 개입되어 일을 그르치는 것은, 수동적인 나약함은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영상문화 속에 이처럼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의 약진은 최근 '강한 여성'에 대한 동경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마초적인 남성미를 흉내내는 인위적인 강함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언행에 대한 확신이 있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의미한다.

사랑에 있어서 종종 순애보로 묘사되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개념대신, '내가 너를 사랑한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여성상, 세상의 통념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더 중요한 여성상, 일과 사랑에 있어서 모두 능동적이고 공사 구분이 분명한 합리적인 여성상을 주된 개성으로 하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의 약진은 하반기 영상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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