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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단풍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찬우군.
지리산 피아골단풍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찬우군. ⓒ 장옥순
지난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각에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오늘은 찬우를 학교에 못 보낼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찬우가 아픈가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오늘 찬우 엄마가 아이들 낳을 것 같아서 순천에 갑니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찬우도 데려 가야 할 모양입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몸조심하시고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시겠습니다."

찬우네는 이번에 네 번째 아이를 낳는다. 지난 여름 늦가을에 아기를 낳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미리 축하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축하는 무슨 축하요. 오히려 동네 사람 보기가 창피합니다요. 자식 키우기 힘든 세상에 넷씩이나 낳는다고 수근대는 것만 같아서요."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처럼 아이들이 귀한 세상에 낳을 수 있으면 낳아야지요. 국가적으로도 찬우 아빠는 애국자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산모에게 힘을 주시고 행여 부끄럽다는 생각마시고 적극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태어날 아기도 당당해진답니다."

찬우 엄마는 일본 여인이다. 얼마나 얌전하시고 온화한지 늘 탄복하게 된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조심스런 태도도 그렇고 아이들을 챙겨 보내는 게 빈틈이 없다. 찬우는 일본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바람에 유치원도 다니지 않고 입학한 아이다. 그래서인지 학기 초에는 한글을 깨우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데리러 오시면 항상 운동장 밖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밖에서 기다렸다. 교실로 오시라고 했는데 그나마도 밖에서 기다렸다. 착실한 부모를 닮아서인지 찬우는 글씨 쓰는 것도 예술이고 그림은 더욱 잘 그리며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착실하게 잘한다.

아마도 농촌 총각들이 장가가기 힘든 실정에서 종교적 모임에서 이루어진 결혼인 것 같은데 자식 교육에 열성을 보이는 것은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종교적 가르침 때문에 생긴 자식을 어떻게 하지 못 하고 낳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자신감이 없어하고 미리부터 걱정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학교에 올 때마다 격려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이 아이들이 자랄 때쯤이면 국가에서 교육에 드는 비용의 대부분을 해결해 주게 될 것이라는 얘기나, 아이를 낳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자식만큼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겠냐며, 더 낳지 못해서 둘밖에 없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무튼 우리 산골분교의 입장에서는 경사 중에 경사가 난 셈이다. 아기의 울음이 사라진 지 오래고, 더 이상 아기를 업은 모습을 볼 수 없는 동네의 모습은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학생 한 명이 아쉬운 우리 산골분교에서는 축하잔치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 곳에 아이들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곳에 아이들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 장옥순
마음 같아서는 현수막이라도 내걸고 싶은 심정이다. 친정이 일본이니 산후 뒷바라지도 찬우 아빠가 혼자서 다 해야 하고 세 아이들을 돌봐야 할 테니 그 어려움이 오죽할까? 날마다 아내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쁜 찬우 아빠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힘든 시골 일도 열심히 하고 일거리가 없을 때면 품을 팔아서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는 숭고한 의식까지 갖고 성스럽게 자식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일렁인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트럭에 태우고 와서 "우리 왕자님, 공주님, 내리세요"하며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를 위해 차문을 열어 주신다.

나는 동네에서 아이들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몇 살인지, 또 동생은 없는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후임자에게 이 학교를 두고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 오지만 3년을 10년만큼이나 소중히 하며 아이들과 함께 숨쉰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찬우네 집을 시작으로 동네에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으면 참 좋겠다. 젊은 엄마들을 볼 때마다 아기 더 낳기 운동을 주장하는 나를 사람들은 보건복지부 직원이 아닌가 의심할지도 모른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집안,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사라진 동네, 학교가 없어지는 곳에서는 어떤 미래도 보장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책보다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임 여성들을 보호하고 아이들을 소중히 하는 대대적인 정부시책이 따라오지 않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여성들의 결혼 기피, 임신 기피는 막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밤 늦도록 학교에 남아 불을 켜 놓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쓰곤 했다. 학교가 지역의 구심점으로 살아나야 한다는 잠재의식 덕분인지 지나가던 학부모님들도 전화를 주시곤 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미약한 일이지만 학교와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게 하는 일만은 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3년.

찬우네 집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를 신호음으로 이 산골에도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이들이 먼 길을 다니며 힘든 학교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풍경 속에서 좋은 책을 읽으며 바이올린을 배우며 감성과 예지를 키워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일이나 모레쯤 찬우네 집에 미역이라도 사서 보내야겠다. 때 맞추어 자주 미역국을 먹고 젖이 잘 나와서 튼튼한 아기로 자라나길 기도한다.

덧붙이는 글 | 3년 동안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집에서 출산 소식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 산골 분교에도 아기들의 울음 소리가 넘쳐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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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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