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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들의 천국 화왕산 억새밭
억새들의 천국 화왕산 억새밭 ⓒ 유근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 가을인가!' 했는데 이제 겨울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꼭 가고 싶은 산을 이야기한다면 억새로 유명한 산 하나쯤은 꼭 떠올리지 않을까. 억새가 유명한 산이라면 창녕 화왕산을 빼놓을 수 없다.

경남 창녕 화왕산(火旺山, 해발 757m)은 옛날 화산활동이 활발해 불뫼, 큰불뫼로 불린 데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지금도 화산활동으로 생겼던 분화구가 5곳의 작은 습지로 남아 있다. 정상 주위에는 화왕산성이 둘러싸고 있다. 가을에는 억새제가 열리고 3년마다 봄이면 억새태우기 행사가 열린다. 화왕산은 봄이면 진달래로, 가을이면 억새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대학 시절 수강한 강좌에서 화왕산과 관룡사로 답사를 다녀 온 적이 있다. 존경하는 선생님과 함께 한 산행이었고 화왕산과 창녕에 대한 역사도 함께 들을 수 있었던 산행이라 더욱 기억에 남아 있다.

관룡사 입구를 좌우로 지키고 있는 석장승
관룡사 입구를 좌우로 지키고 있는 석장승 ⓒ 유근종
몇 년만에 오르는 화왕산 가는 길을 지난 1월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후배를 구하고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산악인 박정헌씨와 함께 했다. 그는 히말라야 촐라체 해발 5300m 지점에서 다리가 부러진 후배를 들쳐 업고 기적처럼 생환했다. 당시 그도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후배를 구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지만, 결국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잘라야 했다. 이제 친구는 히말라야의 거봉(巨峰)들을 예전처럼 오르지 못한다.

지난 해 말 친구는 함께 원정을 떠나는 후배와 사진 촬영을 위해 내게 들렀다. 촐라체 원정을 떠나는 날이 하필 12월 24일이라 타박을 주기도 했는데 얼마 후 신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었다.

석장승을 지나면 발 아래 보이는 부도탑
석장승을 지나면 발 아래 보이는 부도탑 ⓒ 유근종

관룡사 입구의 가을
관룡사 입구의 가을 ⓒ 유근종
화왕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럿 있지만, 이번에는 관룡사에서 시작했다. 관룡사 입구 은행나무는 이제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듯 샛노란 이파리들을 땅에 떨군 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산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특히 해마다 가을이면 새벽 단잠을 깨고 아버지를 따라 송이버섯을 따러 가야 했다. 산골 촌놈이 산이 좋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 순간 '산이 내게로 왔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아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올해는 몇 번 산을 찾았다.

관룡사 우물 아래 계절을 모르고 핀 제비꽃
관룡사 우물 아래 계절을 모르고 핀 제비꽃 ⓒ 유근종
관룡사 우물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제 막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기 전 갈증을 해소하고 물통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관룡사를 지나 산을 오르면서 사람들은 입고 있던 옷가지들을 하나씩 배낭 속에 집어넣기 시작한다. 흐르는 땀방울이 머릿속 생각의 찌꺼기들까지 밀어낸다.

관룡사 용선대
관룡사 용선대 ⓒ 유근종
한참을 오르다 잠시 쉬어 가는 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관룡사 용선대에서 산행객들은 석불좌상의 온화한 미소와 그 미소를 배경으로 사진으로 남기기에 정신이 없다.

친구 박정헌과 그의 아들
친구 박정헌과 그의 아들 ⓒ 유근종
어느 정도 가면 헬기장에 닿는다. 이제 여기부터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저 멀리 화왕산 정상 분지에 있는 5만6000여 평의 억새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오른 길이 나무 사이로 오르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억새평원이 나타나니 완전 딴 세상이다.

의병  곽재우 장군의 근거지였던 화왕산성
의병 곽재우 장군의 근거지였던 화왕산성 ⓒ 유근종
억새밭에 닿기 전 오르는 길에 보이는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의병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예전에는 이리저리 나뒹굴던 돌들이 이젠 옛 모습을 되찾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화왕산성을 지나 도착한 억새 군락지는 절정의 순간을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눈부시다. 평원에 들어 선 순간 누구나 "와~!"하는 탄성을 지른다.

억새밭에 도착해 점심으로 가져온 충무김밥과 김치볶음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었다. 땀 흘린 뒤 먹는 밥은 아무렇게나 차린 밥상일지라도 진수성찬 못지않다. 나른한 오후에 친구는 잠깐 낮잠을 청하고 난 커피 한 잔을 들이킨다.

꼭 봄 날씨 같은 가을날의 오후
꼭 봄 날씨 같은 가을날의 오후 ⓒ 유근종
친구는 이번 산행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산악인들이 흔히 하는 말로 "산이 저기 있기에 오른다"고 하는 것처럼 그냥 묵묵히 오르고 또 그렇게 내려오는 것이다. 촐라체에서 일어났던 사고 당시의 심정이 궁금했지만, 상처만 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친구는 요즘 부쩍 분주해졌다. 지난 해 12월 촐라체로 떠났는데 꼭 1년이 되는 올 12월에 사고를 당했던 후배와 촐라체를 다시 찾는단다. 히말라야에 있는 셰르파들을 돕기 위해서다. 친구는 산에 진 빚을 이렇게나마 갚아 나가고 있다.

억새평원의 인파들
억새평원의 인파들 ⓒ 유근종
화왕산 정상에 잠시 섰다가 하산길을 재촉했다. 항상 하산 길에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지루함이다. 일단 목적을 이뤘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힘이 빠진 다리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지루한 하산길이 끝나고 주차장을 지나 걸어 나오는 길에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이 보였다. 얼마나 산행객들이 많았는지 4차선 도로가 주차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중앙선에도 일렬로 차들이 서 있다.

집에서 가까운 지리산을 포함한 국립공원에는 산과 숲이 쉴 수 있도록 안식년 또는 경방기간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런 제도를 이제는 모든 산에 확대 실시하는 것은 어떨까.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산을 훼손하고 있지만 수많은 인파들을 보니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화왕산은 정말 억새 반 사람 반이다.

 

덧붙이는 글 | * 대중교통

ㅇ서울, 부산, 대구, 마산에서 창녕까지 직접가는 버스가 있다.
ㅇ서울: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창녕경유 부곡행이 5회, 4시간 소요.
ㅇ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40분간격, 1시간 10분 소요 
ㅇ대구: 서부시외버스주차장에서 고속 29회, 직행25회 50분 소요.
ㅇ마산: 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 50분 소요
ㅇ창녕에서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이용한다.
-시내버스터미널(창령읍) 출발 - 옥천매표소 - 1일 6회
(7:00, 9:40, 11:40, 14:10, 15:50, 18:00) 소요시간 25분 
   -옥천매표소 출발 - 시내버스터미널(창령읍) - 
     7:25, 10:10, 12:10, 14:40, 16:20, 18:30 출발 

* 승용차
 ㅇ경부고속도로 - 구마고속도로 - 창녕IC - 화왕산군립공원 
 ㅇ남해고속도로 - 내서분기점 - 구마고속도로 - 영산IC - 5번 국도 - 계성면 - 옥천저수지 - 관룡사 

* 등산코스
 ㅇ1코스
   옥천리 - 관룡사 - 관룡산 정상 - 진달래 능선 - 화왕산 정상 - 목마산성 - 창녕여중 (4시간)
 ㅇ2코스 
   창녕여중- 도성암- 환장고개 - 화왕산 정상 - 진달래 능선 - 관룡산 정상 -
   관룡사 - 옥천리(4시간)
 ㅇ3코스
   창녕여중- 도성암- 환장고개 - 화왕산 정상- 환장고개- 도성암- 창녕여중

* 주변 볼거리
  창녕에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우포늪이 있다. 그리고 온천으로 유명한 부곡하와이를 들 수 있다.

*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의 파키스탄 히말라야인 돕기 자선강연회
 - 장소:진주시 청소년 수련관
 - 일시:2005년 12월 12일(월요일)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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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에 입학했고,지난 1998년과 1999년 여름 러시아를 다녀와서 2000년 졸업 뒤 사진전 "러시아 1999"를 열었으며 2000년 7월부터 2001년 추석전까지 러시아에 머물다 왔습니다. 1년간 머무르면서 50여회의 음악회를 다녀왔으며 주 관심분야는 음악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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