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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위 등 방안 가득한 술병과 상황버섯, 약초들에 대해 설명하는 백관채씨
장롱위 등 방안 가득한 술병과 상황버섯, 약초들에 대해 설명하는 백관채씨 ⓒ 전득렬
산삼을 갈아 마신 후 바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 신세를 졌다는 백관채(43, 구미시 도량동)씨. 몸에 좋다는 산삼이지만 너무 과하게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고, 산에서 욕심을 부리면 길을 잃는다는 교훈을 얻으면서 백씨와 산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경북 구미 공단의 이화섬유에 근무하던 평범한 샐러리맨 백씨는 3년 전 도라지를 캐기 위해 금오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25∼30년생쯤 되는 산삼을 연거푸 두 번씩이나 발견하는 큰 행운을 안게 된다.

산삼 2뿌리 캐고 사흘 뒤 1뿌리 더 캐

백씨는 2002년 6월 19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부처님오신 날'이었으며 20년 전 돌아가신 백씨 '부친의 기일'이 겹친 날이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매주 빠지지 않고 등산을 하던 백씨는 그날도 어김없이 구미 금오산에 올랐다. 그는 오늘 '더도 덜도 말고 도라지 10뿌리를 캐게 해 주십시오'하는 생각으로 소원을 빌 듯 산에 올랐고, 예상 외로 많은 도라지를 발견했다.

"도라지 50여 뿌리를 캐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요. 등산로는 아니었지만 평소에도 잘 다니던 산길이었는데 갑자기 으스스해지면서 무서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뭔가에 이끌리듯 발길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방향을 잡아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백관채씨는 산삼을 캘때 마다 사진을 찍고, 약초는 술로 담궜다
백관채씨는 산삼을 캘때 마다 사진을 찍고, 약초는 술로 담궜다 ⓒ 전득렬
평소에 담력이 세 '강심장'으로 통하던 그였지만 저절로 발길이 움직여지는 그 순간에는 머리카락이 쭈삣 설 만큼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온몸에 닭살이 돋고,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주위를 경계하듯 몇 번씩 두리번거렸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던 그의 눈에 갑자기 광채가 들어오면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산삼이었다. 도라지와는 다른 틀림없는 산삼이었다. 그곳에서 백씨는 25∼30년생 정도 되는 산삼 2뿌리를 캐는 횡재를 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산에서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여동생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좋은 일엔 항상 길몽이 있다고 했던가. 백씨는 여섯 살 아래이며 생일이 같은 날이었던 여동생이 전날 밤에 '똥물을 뒤집어쓰는 꿈'을 꾸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일이 같은 여동생은 꿈에도 몰랐던 백씨에게 미리 다가올 행운을 꿈 속에서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삼 곁으로 날아든 꿩과 70대 노파의 조언

그로부터 사흘 후인 수요일 낮에 백씨는 금오산에서 산삼 1뿌리를 더 발견하는 행운을 얻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에 출근해 일을 하던 백씨는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계속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요동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급기야 조퇴 신청을 하고 금오산에 올랐던 그는 다시 산삼을 캐는 기적을 얻은 것이다.

순전히 산이 불러 정신없이 이끌려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 그가 도착한 곳은 지난 번 산삼을 발견했던 장소 주변. 그곳에서 백씨는 산삼 한 뿌리를 더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인기척이 나면 사람을 피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려야 할 '꿩'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꿩 한 마리가 그를 위협이라도 하는 듯 그 주위를 빙글빙글 계속 맴돌았다.

순간, 불길한 생각과 함께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산삼을 발견한 자리의 주위에서 혹시나 산삼이 더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를 더 둘러보자 꿩은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쫓아와 시위를 하듯 맴돌았다.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접고 얼른 자리를 떴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는 금오산의 뜻이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기 때문이다.

금방 캔 산삼을 들고, 산에서 헐레벌떡 내려와 자신의 승용차에 오른 그는 버스승강장 앞에서 70대의 한 노파를 우연히 만났다. 버스를 기다린다는 그 노파가 너무 측은해보여서 집까지 태워 드리면서 그는 또 한 번의 기이한 우연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 보는 그 노파는 묻지도 않았는데 산삼이야기를 꺼내면서, 산삼을 보관하는 방법과 포장하는 방법 등 산삼에 대한 전설과도 같은 내용들을 알려주었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린 그 노파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아들부터 사위까지 모두 산삼을 캐는 심마니 가족이었다.

명예퇴직, 그리고 심마니가 되다

그때부터 백씨는 산삼의 신비스러움에 푹 빠지게 되었고, 산삼 관련 전문 서적을 구해 산삼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몇 주 후부터 그의 눈에는 산삼뿐만 아니라 산에서 나는 자연산 상황버섯과 만병초, 화살나무, 조릿대, 토복령, 만년불사초 등 이름조차 생소한 희귀한 약초들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다니던 회사에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신내림을 받은 사람처럼 전국의 깊은 산 속을 누비는 '심마니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벌써 3년 전의 일, 그동안 100여 뿌리가 넘는 산삼을 발견해 심마니로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책에서만 보던 상황버섯이라는 것을 실제로 발견했을 때는 너무 눈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습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상황버섯은 말 그대로 성스러움 그 자체였죠. 금맥을 캐는 기분이 들 정도 흥분되고 설레던 그때 마음을 잊을 수가 없죠."

상황버섯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보인다
상황버섯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보인다 ⓒ 전득렬
'인간은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이며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한 학자의 말처럼 산삼, 상황버섯, 약초 등 산에서 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공부를 한 그의 눈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희귀한 약초들과 귀한 상황버섯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버섯의 발견은 산삼을 발견한 것과 비견할 정도로 흥분되는 일이라는 그는 우리나라 상황버섯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고 말한다. 가까운 중국산 상황버섯과도 확연히 차이가 나며 재배하는 상황과도 성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나이테가 선명하며 목질진흙성분으로 되어 있는 상황버섯을 가루로 만들어 현미경으로 보면 그 성분을 형성하는 7개의 고리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1년 중 절반 이상을 산 속에서 보낸다는 백씨는 산을 한 번 타고 내려오면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고 한다. 깊은 산 속은 도시와는 달리 해가 일찍 떨어져 금방 어두워지는 법. 오후 4시가 지나면 마음까지 당황해진다고 한다. 심마니가 되어 처음 산에 갔을 때는 무작정 다니기만 했던 터라 길도 많이 일었다고. 길을 잃었을 때 계곡을 따라 가면 산 아래로 내려간다는 생각에 계곡 물을 따라 하염없이 내려갔지만 물길은 끝없이 펼쳐지기만 했다.

짙어만 가는 어둠과 산소리, 바람소리, 짐승소리 등이 공포로 몰려 왔다. 담력이 없었더라면 실족이라도 해서 영원히 '산사람'이 될 뻔한 적도 많았다며 초보 심마니 시절을 회상했다. 이제 산에 이력이 난 그는 여름철에는 며칠씩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한다. 이제는 계곡의 물길도 없고, 나침반도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없어도 쉽게 길을 잃지 않는다. 산 속의 나무에는 이끼가 많이 끼는데, 이끼 낀 방향이 북쪽을 알려주는 이정표라는 것을 감각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산 속에서 보낸 세월과 전문 서적을 통해 그는 웬만한 약초는 모두 만나보았다. 또 그 약초의 효능들도 거의 모두 꿰뚫고 있다. 그런 약초 캐다가 술로 담아 놓은 술병만 해도 100여개가 넘는다. 더덕, 오미자, 도라지, 토사자, 머루다래, 하수오, 만병초, 영지, 상황버섯, 야생국화, 천삼, 인동덩굴, 부처손, 야관문, 곶감걸이 나무, 구찌뽕나무, 엄나무껍질 등이 술과 만나 그의 손을 거쳐 노랗게 술병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

욕심을 버려라

3년 동안 산 속만 헤매고 다니고, 약초 그림만 나와 있는 이상한 책(?)만 보고 다녔으니 가정 생활이 정상적으로 될 리는 만무한 일. 아들, 딸 두 자녀를 둔 백씨는 그동안 가장으로서 집안일에 너무 신경을 못 써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그의 아내는 같은 아파트에 있는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을 돌봐주며 받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왔다.

산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고, 그 선물은 어려운 사람들의 몫이라고 딸에게 전한다.
산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고, 그 선물은 어려운 사람들의 몫이라고 딸에게 전한다. ⓒ 전득렬
백씨는 그동안 캔 약초들과 상황버섯 등을 무작정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바람에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해졌다는 것을 깨닫고 5일장 등 시골장터에 내다 파는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캔 산삼들도 지인들을 통해 전달하고 사례금 조로 받았지만 오랜 산행의 경비로 모두 써 버린 상태다. 아파트 발코니에 말리고 있는 수십여 종의 약초들과 상황버섯은 이제 그의 생계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암 수술을 6차례나 받은 65세의 노인에게 전달된 상황버섯이 병을 호전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70대 노파가 남긴 '욕심을 버려라'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욕심을 가지고 비싸게 판매하기 위해 보관 중이던 귀한 물건들을 못 쓰게 됐다는 '진짜 심마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행경비와 인건비 정도만 나오면 될 정도의 가격으로 장터에 내다 판다. 주위에서는 헐값에 내 놓는다고 '바보'라는 이야기도 종종 한다. 하지만,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는 사람들의 생명보다 고귀한 것은 없다고 늘 아내와 자녀들에게 말한다. 산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고, 그 선물은 이 땅의 고생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덧붙이는 글 | 3년 동안 산속을 누비며 다닌 땅꼬마 백관채씨는 산삼, 상황버섯, 약초 등에 대한 궁금한 것들과 많은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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