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로 시집이 하나 왔다. 오래전에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후배 윤임수가 보낸 시집이었다. 나야 문학을 팽개치고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이 친구는 시를 열심히 쓰더니 실천문학에 등단해 열심히 활동하는 있다. 그러다 이제 드디어 시집이 나왔나 보다.
늦가을에 이것도 누구 속을 뒤집으려고 시집을 보냈나? 후배는 시집이 나오고 이 첫 시집을 나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옛날에 함께 시를 논하고 술도 엄청 마셨는데 이런 기쁜 일을 나와 함께 하려고 했다니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윤임수와와 함께 문학에 미쳐 나다닐 때는 문학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소설을 쓴다고, 문학을 한다고 집에 처박혀 7년여를 골방에서 썩히던 시절이었다. 문학이니, 운동과 문학이니, 문학이란 삶의 문학을 해야 하니, 삶이 들어가지 않는 문학은 룸펜들의 넋두리라느니…. 그때는 그런 말들도 많이 내뱉고 다녔다.
시를 이야기하면서 리얼리즘 서정성이나 백석이나 이용악, 임화 등 많은 시인들을 논했다. 그 가운데 윤임수와 함께 나랑 어울려 다니던 형이 김광선 형으로 그 형은 진짜 노동자로 노동시를 쓰던 형이었다. 이 형은 식당 주방장 일을 하다 지금은 창작과 비평에 등단해 시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만 이단이 되어 먹고사는 일만 열심히 하게 된 셈이다.
윤임수는 철도청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 윤임수 하면 제일 생각나는 시가 '이원 사람들'이다. 이 이원사람들이란 시가 그때 나랑 만나던 시절에 한참 쓰던 시였다. 그때 막걸리 집에서 모임을 열 때마다 한 편씩 써오던 시가 지금 여기 시집에 있는 이원 사람들이란 시였다.
이원 사람들 1
역 앞 팽나무 아래에서
큰사발 가득히 막걸리 받는다.
선로반 강하 형님은 벌써 얼큰해져
한여름 지독한 감기로 콜록
콜록거리는 어린것 기침도 모른 채
허참 고것 맛있다
쏘가리 매운탕에 연방 수저를 들이밀고
삼십 도를 훨씬 웃도는 뙤얏볕에
복숭아를 몇 짐이나 따내린 할아버지들
막걸리 반 통으로 피곤을 씻는데
어이 한 잔 더 혀
아버지 같은 어르신네 권하는 술잔에
불그름히 술기 오른 얼굴을 뒤로하고
염치없이 두 손이 덥석 나가면
가득가득 채우고 넘쳐 흐르는 술잔이
사람 사는 세상이야
바로 이거지
낯선 마음 촉촉이 적시어 온다
윤임수가 활동하던 동인은 '젊은시'였다. 지금 창비로 등단한 김광선 형하고 함께 너댓 명이 모여 동인으로 활동했다. 회보형태로 그야말로 끈질기게 동인지를 만들어 내더니 역시 두 사람은 등단까지 하고 시를 끝까지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는 지역에서 젊은 문학청년들이 모여 연대를 고민했는데 그게 바로 '청년문학'이라는 틀이었다. 논의를 하고 '청년문학'으로 지역의 문학판을 어떻게 짤까 고민하던 때였다. 그때 우리가 주로 만나는 곳은 출판사나 인쇄소가 모여 있는 대전 정동에 있는 산내식당이었다. 주로 막걸리를 파는 허름한 식당이었는데 두부두루치기와 파전이 일품이었다. 막걸리 맛이야 대전에서도 최고로 맛있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주전자를 앞에 놓고 우리는 거의 싸움하다시피 문학 이야기를 했다. '젊은시'는 주로 창작을 주장했고 우리는 운동과 리얼리즘을 이야기 했다.
철도 궤도공의 편지 1
침목 바꾸기 야간 작업을 마치고
코끝이 움츠러드는 음습한 여인숙에 누웠어요 형님
물려받은 것 없고 배운 것도 많지 않아
이 길로 들어선 지 사 년
이를 악물고 목돈 모아서
작아도 좋은 내 가게 하나 차리려고
시작한 지 벌써 사 년이 되었어요
거친 일 하다보니 험한 때도 많았고
더러운 일 하다 보니 사나운 꼴도 많이 보았는데
그새 세상은 참 많이도 좋아졌다지요
그래 3D라는 말도 생기고 다들 기피다한지요
한세상 살아가면서 뜻하는 것 다 이루고
편하게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때로 부러웠지만
땀 흘린 만큼 떳떳한 보람을 손에 쥐고
내 어깨에 강한 레일 두 줄기 깔고 보니
오히려 부끄럽지 않은 날들이 좋아졌어요 형님
새마을에 앉아서 두 다리 쭈욱 펴고 가는 사람들이야
멀고 아늑한 풍경이 아름답겠지만
때 절은 목장갑 한 켤레도 소중하다는 것이 새삼스러워요
집 떠나와 마음고생도 많이 시키고
좋은 소식 전하지도 못해 미안한데요
눅눅한 습기에 젖지 않는 가슴으로 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오늘은 이만 줄이고 편지 자주 드릴게요, 그럼.
철도 노동자로 시작한 윤임수의 시에는 이처럼 삶의 감정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문학은 이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내용의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념적이고 순수만을 고집하는 서정성의 시만이 난무하는 요즘의 시단에서 이처럼 현장에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쓰는 시야말로 시의 건강성을 되찾는 일이다.
아버지의 무덤
빈농의 자식이었고
역시 빈농이었던
가난해서 더 비워졌고
비워져서 더욱 가난했던
그리하여 골 골 골
자신마저 끝내 비워버린
한 사내가 여기 누워있다
천지가 빈터인,
이 짧은 시 또한 읽는 맛을 더해준다. 앙상하게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음미해볼 만한 시집으로 참으로 오래간만에 시집다운 시집을 읽어본 것 같다. 특히 리얼리즘 시를 이어가는 현재의 젊은 시인 중에서도 내가 아는 윤임수가 이처럼 좋은 시를 쓰고 있다는 게 반갑고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밥맛이 없다가 얼마 전에 엄니가 해준 동태국으로 입맛이 살아났듯이, 요즘 내가 시에 대한 애정이 없었는데 윤임수의 시집을 읽고 시를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아무튼 윤임수의 시집을 보고 문학이라는 것, 시라는 걸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분이 좋았다. 또한 난 재미없으면 시집이든 소설이든 끝까지 안보는 성향이 있는데 윤임수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미있게 읽었고, 그 다음에도 운전을 하면서 신호대기 때마다 시 한 편씩을 꺼내 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