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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7월 파리 에펠탑 아래서
ⓒ 정지언
에어프랑스 5901편 이코노미 클래스의 비좁은 공간에서의 12시간 비행은 지겨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앞으로 내게 벌어질 여정의 궁금함 때문에 견딜 만 했다.

샤를르 드골 공항에 도착, 출국시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아주 조용한 입국 심사가 시작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는지 나의 앞사람 여권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심사자가 내게 같이 온 일행이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내 말에 앞사람은 통과되지 못한 채 기다리게 되었다. 먼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파리 중심으로 가려고 하는데 R.E.R(고속지역전철)은 어느 곳에서 타야하는지 물어보았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파리로의 첫 발걸음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학교 재학시절 미술 선생님은 슬라이드를 통해 자신의 유럽 여행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 사진들과 에피소드는 어느 수업 보다 더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꿈꾸었던 여행을 드디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자유, 평등, 박애의 도시로 많은 외국인들이 이민을 와 파리에서는 여러 인종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에펠탑이나 몽마르트 언덕 주변의 유명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노점상에는 흑인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들 중 흑인들의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을 보면 프랑스 사회에도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남아있다고 보인다. 근래에 있었던 파리소요 사태를 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기실 파리는 가진 것이 많았다. 프랑스인들이 자부심을 기꺼이 가져도 될 만큼 말이다. 여러 박물관, 미술관등에 소장된 작품들을 어린 시절부터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프랑스 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여겨질까? 미술관에서 진지하게 명화를 감상하는 초등학생의 모습과 미술관 관람이 중노동에 가깝다고 생각한 내 처지와 비교할 때 더욱 그러하였다. (사실 현지인이 아닌 여행객의 입장에서 하루 꼬박 걸리는 미술관 관람은 정신과 육체가 모두 힘들다고 호소한다.)

▲ 2005년 7월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세 미술관과 세느강변 유람선
ⓒ 정지언
아침 시간, 모두들 바삐 출근길을 서둘러 떠나야할 때 노천카페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보았는가? 나른한 오후 시간, 뤽상부르 공원, 튈르리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중년의 모습에서 여유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모습들이 생경하기만 해 자꾸만 쳐다보았다.

유시민씨가 편역한 제노포브스 가이드에서 프랑스인의 성격과 기업문화 편을 살펴보면 "프랑스인은 정열적이고 발랄하며 인생의 멋의 비결을 안다. 그런 프랑스인이기에 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은 모양인지 프랑스인은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는 데 도가 텄다"라고 전한다. '물론 그들도 일을 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한국에서 각박하게 살며 일하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였다.

파리 지도를 봐도 그렇고 실제 개선문 위에서 파리 시내를 둘러보면 방사형으로 구획이 잘 갖춰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도로의 모습을 보면 와! 하고 탄성이 나올 만 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1860년경, 나폴레옹 3세 때 파리의 개성을 살리면서 몇 개의 중요한 간선도로의 폭을 확장하여 이러한 방사형 도시가 되었다는데 간선도로 폭의 확장은 바리케이드를 치기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길 양쪽의 건물이 높고 또 돌로 되어 있으면 폭이 좁은 길에서 아주 쉽게 바리케이드를 칠 수 있는데 몇 군데만 막으면 전 구역이 해방구가 될 수 있어서 바리케이드는 프랑스 사회투쟁의 거점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22쪽)

에펠탑은 이미 파리의 상징이 되어 레스토랑이나 빵집(파리바게트), 엽서 등 여러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릴 정도이다. 런던의 지하철 역 곳곳에서 포스터를 본 적이 있는데 에펠탑이 나오는 포스터에는 꿈과 낭만의 도시 파리로 놀러 오라는 내용이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센 강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이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할머니, 시청 앞 모래에서 배구를 하며 여유를 보이는 파리지앵들을 보며 프랑스인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설핏 보았다고 할까?


▲ 2005년 7월 시청에서
ⓒ 정지언
이제 파리를 떠나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휴양지 북부지방 에트르타와 남부지방 앙티브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프랑스에서 두 시간 남짓 북쪽으로 가면 모네의 고향 르하브르가 나온다. 기차에서 만난 한 젊은이가 보트를 타러 르하브르에 가느냐고 묻는다. '나의 행색을 보면 그럴 말이 나오지 않을 법도 한데….'

'르하브르란 곳이 보트로 유명한 곳이구나!' 하고 한 가지 정보를 얻은 채 최종 목적지는 르하브르가 아니라 에트르타 라고 말해 주었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타고 한 시간 가량 더 가야 한다. 에트르타는 아직까지 한국에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동양인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 2005년 7월 북부 프랑스 에트르타
ⓒ 정지언
프랑스인들은 주로 남부 프랑스로 여행을 많이 간다고 들은 탓인지 북부지방에 위치한 에트르타에서는 유난히 비프랑스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카메라를 잘 다루지 못하겠다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던 나이가 지긋한 독일부부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서로 짧은 영어실력 탓에 웃음이 주요 대화 수단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곳이라는 에트르타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쿠르베의 작품에도 나왔었다.

▲ 2005년 7월 피카소가 사랑했던 앙티브
ⓒ 정지언
니스에서 기차로 15분가면 캠핑카와 호화 요트, 독특한 바다색으로 요약될 수 있는 앙티브가 나온다. 고흐가 앙티브의 바다색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고흐가 내는 오묘한 코발트빛 밤하늘색은 그렇게 앙티브의 바다와 닮아있었다. 앙티브의 바다색을 바라보며 유럽의 예술가들은 참 복받은 사람들이라 생각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불러오기 충분할 것임으로….

말로만 듣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스럽고 완벽한 아름다움(과연 인간이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였다.)이나 거리 곳곳에 미를 생각한 건물, 센 강변 등 파리가 가진 것들을 보고 난 후 마음의 자세가 바뀌었다. 매사에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던 마음의 자세가 '아! 이제야 만족할 만하구나!' 하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말이다.

센강의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는 바토무슈(유람선)에서 <비포선셋>의 줄리델피와 에단호크를 떠올리며 고이 접어놓은 프랑스 여행을 되새겨본다.

▲ 2005년 7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전면
ⓒ 정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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