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사진 친구들과 함께 재미나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이번 여정은 남도의 석물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여행을 다니며 석물, 특히 돌장승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유심히 본다. 전라도의 돌장승들은 한결같이 친근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꼭 한 번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있던 차에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의기투합을 했다.
내가 사는 경상도는 돌장승들의 모양새가 밋밋하다. 너무 정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전라도는 아예 다른 느낌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남도의 돌장승은 남원 산내면 실상사에 있는 돌장승들이었다.
사진으로 본 돌장승에서도 기가 느껴졌는데 실제로 보고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남도의 해학이 돌에 깃들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수염의 모양이었다. 수염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남도의 돌장승... 친근한 할아버지의 얼굴
이번 여행은 먼저 고인돌을 찾아 나섰다. 고인돌이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무덤을 축조한 거석기념물이다.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을 묻는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돌을 얹은 선사시대의 무덤이다. 고인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뉜다. 북방식은 받침돌이 높고 남방식은 받침돌이 아주 낮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이들은 "이게 무슨 고인돌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전남지방에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고인돌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여기가 분포한다. 그 중에서도 많은 고인돌이 화순지방에 널려 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 도착했지만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화순고인돌지킴이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 분들 중 연세가 지긋하신 최종채 할아버지를 만났다. 최 할아버지는 광주에서 30년 동안 교편을 잡으시고 고인돌의 매력에 빠져 고인돌지킴이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계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화순 고인돌의 이야기를 들으니 훨씬 선사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친구들과 우선 고인돌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저 멀리 넓은 들판이 보였다. 아~ 정말 이곳에 선사시대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최종채 할아버지께 여쭸더니 예전에는 고인돌 유적지에서 보이는 들판 앞까지 배가 다녔다고 한다. 고인돌을 만들던 당시에는 채집과 수렵, 농경 생활이 복합된 생활이었을 것이다. 물과 들판, 산이 가까이 있는 화순은 선사인들에게도 살기 좋은 땅이었던 모양이다.
고인돌군 뒤편 언덕 쪽으로는 규모가 큰 채석장이 있었다. 채석장에서는 3000여 년 전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무문토기가 발견되었는가 하면 상평통보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인돌군 가까이 사람의 주거지가 함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순지방의 돌들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응회암이 많다고 한다. 이 응회암은 화강암처럼 단단한 돌이 아니라 가공이 쉬운 무른 돌이다. 그래서 이 지방에 특히 많은 석물들이 있지 않나 싶다.
이곳 고인돌 공원에서 유명한 것은 200톤이 넘는 핑매바위다. 핑매바위는 아이를 점지해 주는 마고(麻姑)할매와 관련된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선지 아들을 낳기 위해, 처녀 총각이 결혼하기 위해 주위의 돌을 주워 덮개돌 위의 구멍을 향해 던져 넣는 풍습이 전해져온다.
전남 지방에만 고인돌 2만여 기... 한반도 고인돌의 절반
고인돌 유적지를 뒤로 하고 나주 불회사 돌장승을 만나러 떠났다. 불회사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양쪽으로 근엄하게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 있었다. 이 근엄한 할아버지 주위로 경보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훔쳐가려 했던 모양인데 나 같으면 무서워서 손도 못 댈 것 같은데 간이 큰 도선생이 있었나보다.
울타리 없이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이 보호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역시 여기 돌장승 할아버지(下元唐將軍)도 수염이 익살스럽다. 더군다나 여기 할아버지는 수염을 땋은 모습이 특이했다. 이런 세심한 묘사는 남도 석물을 더 가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다음은 돌장승이 있는 곳은 나주 운흥사였다. 운흥사 돌장승은 뜻밖에도 동네 입구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운흥사 할아버지 장승(上元周將軍)은 불회사 장승과는 달리 그 모습이 온화하다. 더군다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으니 그 인상은 더 환하게 느껴진다. 수염 또한 특이하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옆에 있는 돌장승 할머니는 영락없는 나이 드신 우리네 시골 할머니의 모습이다.
석물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면 화순 운주사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운주사는 하룻밤 새 천불천탑이 세워졌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지난 1월 1일 운주사에 다녀간 적이 있다. 곳곳에 눈발의 흔적도 보였고 찻집에서 따끈따끈한 차도 한 잔씩 들이킨 기억이다. 11개월만에 찾아간 운주사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번에는 와불을 보지 않고 그냥 갔는데 이번에는 와불을 만나러 갔다. 몇 년만에 찾아간 와불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돌들로 장식을 해 놓았다.
운주사의 불상들을 자세히 보면 역암이 많다. 이것은 화강암에 비해 가공이 용이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암을 자세히 보면 문양이 불규칙한 듯하면서 규칙이 있는 것같아 보기에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해가 많이 짧아져서 이번에는 운주사의 탑들이 사열을 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그냥 온 것이 못내 아쉽다.
덧붙이는 글 | *교통안내
고속도로
1. 화순읍 중앙병원 앞에서 29번 국도를 이용하여 → 능주사거리(10㎞) → 우측 822번 지방도(남평쪽으로 5.6km) → 좌측 817번 지방도(좌회전 8.4km) → 도암 → 818번 지방도를 따라 직진(다도쪽으로 3.1km) → 우측 운주사 방향(0.4km) → 운주사.
2. 광주 → 나주방면 1번도로 → 남평( 822번 8.6km) → 평리( 817번 도로) → 도암 → 운주사
현지교통
1) 광주-운주사행 군내버스 이용/34회 운행/1시간 20분 소요(38km)
2) 화순읍-운주사행 군내버스 이용/40분 간격(34회)/40분 간격(26km)
3) 나주-운주사행(중장터행) 군내버스 이용/1시간 간격(11회)/30분 소요(19km)
춘양면 고일돌群 - 도곡면 직전 삼거리에서 '불문사' 이정표 따라 좌회전, 1.5 km를 가면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고인돌 지대가 나옴.
불회사 - 운주사에서 818번 장흥방면 도로로 더 가면 이정표.
운흥사 - 불회사에서 3.2km더 가서 작은 장암교 다리 끝 지점에서 좌회전, 3.5km
* 주변 볼거리와 먹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생겼다는 돌장승이 있는 쌍계사터가 있으며 쌍봉사도 있다. 도곡온천에 숙박을 할 수 있고, 그 주변에 식당들이 많다. 특히, 흑두부를 잘 하는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