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5일 까치 소리가 들리던 아침 나는 이 책의 일독을 끝냈다. 책을 산 지 열흘만에 일독을 겨우 끝낸 경우는 이 책이 처음이었다. 일독을 하는데 이처럼 시간을 끄는 책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적한 사택에서 밤 늦도록 책을 읽는 재미, 먼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며 까치 소리에 책을 덮으며 유림의 숲을 지나 현실로 돌아왔다.
3권으로 1부를 이루고 있는 이 책을 만난 것은 오랜만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시험을 끝낸 동료 직원의 자녀들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사다 줄 수 있었던 것도 최근 몇 년만에 느낀 감동 때문이었다. 책다운 책을 만난 기쁨을 전하며 시험을 끝낸 허전함을 채울 수 있으면서도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 다음으로 내가 존경하는 인물인 '조광조' 를 현대에 살려낸 작가 최인호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15년 전의 구상을 현실로 이루어낸 작가의 굵은 펜대 앞에서 그저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작가의 펜끝을 따라가며 인간 조광조의 모습을 만나 참 행복했다. 아니 가슴이 아팠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이리라.
성종 13년(1482년)에 태어나 중종 14년(1519년)에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약을 받고 죽은 정치개혁자. 썩어빠진 정치를 바로잡으려다 실패하였던 이상주의자. 그는 하늘 아래 지극한 도(道)를 구하며 공자조차 이루지 못했던 왕도정치를 현실에 접목시키려 했던 선각자였다.
작가 최인호는 이렇게 묻고 있다.
혼란한 시대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나약한 펜을 들어 글을 써서 질문을 던지려 함이니. 공자여, 과연 그대가 2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을 다시 살아간다 하더라도 수년 안에 우리나라의 어지러움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조광조여, 과연 그대가 5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수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의 경세지략(經世之略)을 펼 수 있겠는가.
작가는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던 화순 능주면 남정리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며 글을 시작하고 있다. 작가의 발길을 따라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며 걷는 나 또한 오백 년 세월의 뒤안길에서 오늘도 이 나라의 발전을 빌고 있을 고혼을 만나러 가는, 가슴 아프면서도 벅찬 감회를 누를 길이 없었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하늘이 이 땅을 굽어보시니
내 일편단심 충심을 밝게 밝게 비추리
그가 남긴 절명시를 읽노라니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 없다. 살아가면서 내 집과 가족처럼 나라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대통령을 사랑하기보다 불평불만 더 많이 터뜨리며 살았으니 한없이 오그라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는 공자의 사상을 밑바닥에 풀어놓고 조광조의 입을 통하여 중종 임금을 설득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명도 明道)에 지나지 않으며 '학문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라도 늘 삼가는 것(근독 謹獨)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의 사상을 전하며 나라의 기강과 법도를 바로잡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하늘의 천성인 명도를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종 스스로 깊고 어두운 곳에 홀로 있을 때라도 근신하여 스스로 군자가 되는 것이다. 이 두 사상으로 중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광조.
일찍이 공자는 군자에 대비되는 소인을 이렇게 말했다.
"소인은 편당을 짓고 두루 어울리지 않으며, 이해관계를 따지는 데 밝으며, 교만하여 태연하지 못하며, 언제나 근심 걱정으로 지내며,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다."
공자의 말을 떠올리자니 요즈음 세상에 소인 아닌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또 가르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군자의 기역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돌이켜 보게 된다.
작가는 동서양의 위대한 선각자들을 횡으로 꿰뚫어서 행간마다 숨겨 놓고 불쑥불쑥 들이미는 해박한 지식을 열거하고 있다. 예수, 부처, 노자, 장자, 맹자에서부터 보들레르의 시를 비롯해 동서양 문학의 거목들이 내뿜는 작품들까지 유가사상에 접목하여 대비하는 현란한 수사법으로 독자의 눈을 황홀케 한다.
작가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는 노자의 도덕경을 제시하며 조광조가 지식인으로서 다변에서 오는 참화를 피할 수 없었음을 꼬집으며 작금의 이 나라 정치가들의 입을 향해 한 마디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조광조는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 유가의 도를 실현하려다 산화한 유교적 이차돈이며 순교자라고 자신있게 부르짖는다.
공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공자의 입으로 말을 하고, 공자의 귀로 소리를 듣고, 공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였고, 결국에는 공자조차 이루지 못한 왕도정치를 권력에 접목시키려 했던 조광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예지자였던가.
덧붙이는 글 | 이 책은 정치가, 학자, 학문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에게 참으로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제2권도 곧 안내해 올리겠습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