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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동지할 굉음이 한강변을 휩쓸었다. 공선수뢰가 일으킨 물보라가 10여 장이나 치솟아 오르며 나룻배를 산산이 흩어 놓았다.
[우와! 만세다!]
반공에 흩뿌려지는 조각난 파편들을 보며 구경꾼들이 만세를 불렀다.
[꽝]
그때 총성이 울리고 흰 연기가 확 퍼졌다. 구경꾼들의 환호가 더욱 절정에 이를 무렵 군중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흰 연기로부터 15보 가량 떨어진 대원군의 차일 안에서는 한 바탕 소란이 일었다. 희뿌연 화연 사이로 대원군과 천희연이 의자를 넘기며 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둘레에 도열해 있던 나졸들도 일부는 엎드리고 일부는 장창을 무작위로 겨누느라 어수선해졌다.
[꽝]
“천주님 만세! 만고의 역적놈아 천주님의 심판을 받거랏!”
애초에 총성이 난 곳과는 다른 방향에서 젊은 사내 하나가 뛰어오며 이미 넘어져 있는 대원군을 향해 수발총을 발사했다.
“으아아”
사람들이 물결 갈라지듯 머리를 쥐어싸며 뛰고 굴렀다. 무예별감들이 칼을 뽑아들고 주상의 행궁을 에워싸는가 하면 몇몇은 앞으로 맞받아 뛰쳐나왔다. 사내가 남은 한 발을 다시 대원군 쪽으로 겨냥했다.
“전! 후! 저놈을 막아!”
아직 오혈포를 꺼내들지 않은 오장이 소리쳤다. 무예별감들보다도 빠르게 흑호대 전과 후가 수발총 쏜 사내를 덮쳤다.
[꽝]
총소리와 함께 뛰어 오던 사내를 덮치려던 젊은이가 목을 뒤로 꺾으며 넘어갔다.
“이이이!”
전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비수를 긋되 허파쯤을 찌르고 빼며 목에 긋기를 한 동작으로 끝냈다. 배와 목을 쥐며 눈을 뜬 채 버둥거리는 사내에게 마지막 비수를 박으려는 찰라 서늘한 칼날이 목덜미 좌우에 닿았다. 전이 옴짝도 하지 못한 채 눈알만 굴려 훑은 다음에야 너덧 명의 무예별감에게 포위된 상태임을 알았다. 애초에 군중사이에서 첫 발을 날린 흉터 난 사내가 소리 친 오장을 향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저 편에선 숨겨 놓은 수하 하나가 칼에 맞아 피를 쏟아내고 있고 그 위에 올라탄 젊은 놈 하나는 무예별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쪽을 보고 있는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꽝]
[탕]
눈치 저편의 오장도 품에서 짧은 총을 꺼내 자신에게 겨누는 것을 끝으로 두 발의 총성이 교차함을 느꼈을 뿐 이내 허연 연기가 앞을 가렸다. 흉터 난 사내의 어깨가 뜨끔했다. 주변 사람들이 된불 맞은 송아지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였다.
흉터 난 사내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쥔 채 두 발을 다 쏜 수발총을 내던지고 재빨리 사람의 무리 속으로 몸을 맡겼다. 오장은 배에 뻐근한 통증을 느낀 채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끌며 사람들 사이에 묻히려 시도했으나 움직이는 건 마음뿐 몸은 썰물처럼 빠지는 군중과 몇 발치나 떨어져 있었다. 한 무리의 무예별감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화연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데 부옇게 시야가 흐렸다.
“전하를 뫼시어라”
“대...대감께오서, 어서 어의를!”
뒤엉킨 악다구니가 귓가에 아련하게 들렸다. 그리고 흐릿한 시야에 일군의 무예별감들이 뛰어 오는 모습을 보였다. 오장은 천천히 오혈포를 들어올렸다. 한 손으론 축축한 배를 움켜 쥐고 한손으로만 간신히 들어올린 총을 조준했으나 가늠자와 가늠쇠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부옇게 뭉뚱그려진 총구만 천정 없이 후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탕]
아무도 쓰러진 이는 없었으나 십 여보 앞에서 무예별감들의 달음박질이 멈추었다.
[탕][탕]
어떤 이는 엎드리고 어떤 이는 모로 뛰며 흩어졌다. 아무도 앞으로 뛰는 이는 없었다. 오장의 눈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옇던 시야도 어느새 캄캄한 암흑으로 변했다. 부들거리는 오른 팔을 간신히 들어올려 턱 밑으로 가져왔다.
‘제기럴.....꿈자리가 그렇더라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게 이것밖에 없었다.
“안 돼! 오장님 아니 되오!”
고개를 땅에 눌린 채 결박이 지워지고 있는 젊은이 전이 오장을 향해 부르짖었다.
[탕]
그러나 총성과 함께 정수리를 깨는 파편음이 그 소리를 묻어버렸다. 오장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쉬익-펑]
그때 대원군이 있던 차양으로 빛이 난다 싶더니 단상 밑에서 폭음이 울렸다. 널빤지가 튀고 사람의 살이 날았다.
[펑-퍼버벙]
청국의 축하연에 터져대던 폭죽소리처럼 연이어 폭음이 울리고 허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으악! 악-”
대원군의 차양 밑에서 터지던 폭약처럼 철편이 튀지는 않았으나 자기 발 밑에서 터지는 폭음에 혼을 내놓은 듯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펑,펑]
폭음은 차양 주위 뿐 아니라 수백 보 밖의 건너편에서도 들렸다. 노량진에 모였던 수 만의 군중이 일거에 뛰느라 사람이 밟히고 짓눌려 아수라 지옥을 연상케 했다.
‘이 바보 같은 놈들. 조금만 빨랐어도 이 꼴은 안 당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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