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동안 청국장을 만들었다. 잘 띄운 청국장을 냉장고에 뭉쳐 넣고 나머지는 모두 꼬들꼬들하게 말렸다. 여름이 시작될 때 심었던 콩이 이제 청국장과 메주로, 그리고 아궁이 불 프라이팬에서 향기롭게 굽혀 일생을 마감하고 있다. 싸리 채반지에서 잘 마르고 있는 청국장을 보며 콩의 일생을 떠올려 본다.
비가 온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 전날 허리를 두드려가며 엎드려 콩을 심었다. 잡초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콩 모종을 길러 옮겨 심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직파를 했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밭이랑을 떼굴떼굴 구르는 콩을 집어다 달래가며 심었다.
이렇게 심었던 콩을 가마솥에 삶다보면 문득 고향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들큰하게 콩 삶는 냄새가 집안에 꽉 차 오르면 그 옛날 향수어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어머니가 집어주는 삶은 콩을 한줌 먹다보면 너무 맛있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다 끝내 설사를 하고 말던 기억.
청국장뿐 아니라 모든 콩 음식은 삶을 때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콩을 물에 서너 시간 불렸다가 삶는데,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줄여서 몇 시간을 더 삶는다. 콩국수를 할 때는 끓는 순간 불을 꺼야 하지만 메주나 청국장을 만들 때는 손가락으로 쥐어봐서 콩이 완전히 뭉개질 때까지 삶되 절대 넘치거나 타지 않게 해야 한다.
청국장을 말려서 먹으면 좋다. 채반지에 널기 전에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살짝 넣어 버무려 말리면 좋은데 그늘에 말려야 먹기 좋다. 너무 말리면 딱딱하다. 가루를 내서 물에 타 먹기도 하는데 식성 따라 먹을 수 있지만 빻지 않고 그냥 먹는 게 더 좋다. 딱딱한 음식을 꼭꼭 오래 씹어 먹는 것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아랫목에서 청국장을 띄울 때 대 소쿠리 밑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삼베를 펼쳐 놓고 삶은 콩을 담아 이불을 덮어두면 이틀쯤 될 때 콩이 뜨기 시작하면서 열도 많이 난다. 일주일이면 발효가 다 끝난다.
사실 콩 농사에서 제일 힘든 공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잡티 가리기다. 주로 밤에 작업이 시작되는데 밥상 위에 펼쳐 놓고 잡티를 가려낸다. 이 사진은 서리태를 가리는 작업이다. 콩 속에 섞은 다른 종류의 콩도 가려야 하고 설익은 콩도 가려내야한다. 집에서 먹을 것이라면 다른 콩들이 좀 섞여 있어도 괜찮지만 팔 콩은 그럴 수 없다. 물론 체에 치고 선풍기로 검불을 다 날려도 마지막 이 공정은 꼭 거쳐야 한다.
올 해는 콩이 하도 많아 맥주도 한잔 해 가며 콩을 가렸는데, 무엇보다 아궁이에 프라이팬으로 콩을 구워먹으면서 콩을 가렸더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할 수 있었다. 프라이팬에 메주콩은 물론 약콩과 서리태, 그리고 콩나물 콩까지 섞어서 볶았는데 땅콩 생각이 나서 캐다 놓은 땅콩 자루를 열고 까 넣어 볶았더니 맛이 그만이었다. 나중에는 현미도 한 줌 넣어서 같이 볶아 먹었다. 간식으로 먹기도 좋을 것 같았다.
올해는 콩을 네 종류를 심었는데 메주콩(노란콩)을 제일 많이 심었다. 곱게 밭을 갈고 골에다 콩을 심었다. 콩 잎이 서너 개 날 때면 잡초도 뒤질 새라 불쑥불쑥 자라는데 이때 두둑을 괭이로 득득 긁으면서 콩 포기를 덮어주면 풀을 없앨 수 있다. 문제는 햇볕이 쨍쨍한 날 낮에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서리태를 심었던 밭은 애석하게도 때를 놓치고 비를 서너 번 맞혔더니 콩밭인지 풀밭인지 엉망이 되었다. '풀밀어' 기계를 가져가서 밀었는데 풀이 너무 자라 힘이 몇 배나 더 들었다. '풀밀어'로 민 다음 두 주 후쯤에 풀을 한 번 더 매 줬다.
콩은 한 뼘쯤 자랐을 때 순을 한 번 따 주고 다시 콩가지가 벌어서 꽃이 피기 직전에 한 번 더 순을 잘라 줘야 줄기가 안 뻗고 콩이 조랑조랑 많이 맺힌다.
도리깨 타작을 한꺼번에 하려면 힘이 부치지만 콩을 심을 때부터 한꺼번에 심지 않고 며칠 간격으로 심었고 또한 콩을 베는 것도 며칠 간격으로 베었기 때문에 콩 타작도 여러 날 나누어서 했다. 처음에는 살살 때리다가 겉 콩이 대충 떨어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도리깨를 힘껏 두드려 속 콩이 다 털려 나오게 한다.
도리깨 질은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한다. 한쪽으로만 하면 밤에 자다가 어깨가 빠지는 것 같은 통증을 만날 수 있다.
원래 들에서 부는 바람에다 콩을 날려야 하는데 산골마을에 부는 바람은 한쪽 방향으로만 불지 않는다. 산골짜기로 들어 온 바람이 이리저리 휘젓는 식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선풍기를 돌린다. 선풍기는 바람을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전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 편치 않다. 선풍기로 부치기 전에 먼저 얼기미로 흙이나 모래, 또는 콩깍정이들을 다 걸러낸다.
콩을 여러 자루 했다. 메주 쑤고 청국장 만들고 제법 남았다. 청국장이 잘 팔리면 청국장을 더 만들 생각인데 직접 청국장 만들어 먹겠다고 생콩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