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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회 동기회
제 32회 동기회 ⓒ 정수권
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렸던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참석했다. 내 고향 경북 영양의 입암초등학교 제32회 동기생 50여 명이 종로5가의 한 식당에 모였다. 그리고는 타임머신을 타고 4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몇 해 전부터 매년 모임을 가졌지만 아직도 처음 참석하는 친구들이 있다. 오래간만에 보는 친구들은 서로 변한 모습에 놀라다가 자세히 보면 어렴풋이 남아있는 옛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란다. 친구들이 식당에 들어올 때만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인사를 하며 얼떨떨해 하다가도 나중에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특히 여자 동기생들은 반가움의 표현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앞집에 살던 경숙이는 30년 만에 나를 알아보고 자지러졌다.

저녁식사
저녁식사 ⓒ 정수권
머리가 희끗하고 배도 불룩 나오는 등 변한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아직도 동안인 목선이나 할아버지(?)가 된 준석이도 있었다. 그래서 준석이를 가리켜 '담임선생님이니 인사드리라'는 소리에 깜빡 속은 친구들도 있다.

'이랬니?' '저랬니?'하면 동창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듯 '야' '자' 하며 그동안 못 다한 학창시절 얘기를 쏟아냈다. 음식점이 시끌시끌했다. 식당 주인도 이 낯선 풍경과 말투에 "완전히 도떼기 시장이네예!" 경상도식 억양을 흉내내며 덩달아 즐거워했다.

노래방에서
노래방에서 ⓒ 정수권
내년 모임은 5월, 모교에서 열기로 하는 내용의 회의를 간단히 하고 지하 노래방으로 뒤풀이를 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흥에 겨워 서로 부둥켜안고 한바탕 난리를 떨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도란도란 모여 또 한번 옛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떠들어서 모텔 지배인이 몇 번이나 들러 조용히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피곤해서 끝까지 함께 있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와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잤다.
얼마나 잤을까?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깼다. 벌써 아침이다. 몇몇 친구는 벌써 세수를 하고 말쑥한 차림으로 왔으나 대부분 자다가 일어난 부스스한 얼굴에다 런닝셔츠 바람으로 모여 들었다.

나처럼 일찍(?) 잔 사람들은 편하게 잤지만 어느 방에는 인원이 너무 많아 제대로 잠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우진이는 다른 방에 들어가 자다가 여자를 동행한 예약 손님한테 항의를 받고 쫓겨나 복도에서 밤을 새웠다며 투덜거렸다.

바로 그때, 노루란 별명을 가진 호철이가 "어이 여기 빤스 하나 못 봤나?"하면서 바지춤을 잡고 엉거주춤 들어섰다. 우리는 배꼽을 잡았다.

"야 니 팬티를 와 여기서 찾노?"
"하하, 저기 여학생 방에 가서 물어보지 그래."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오니 누군가 속옷을 감춰버려 찾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목욕을 하다 옷을 잃어버린 선녀 얘기는 들어 봤어도 샤워를 하다 팬티를 잃어버린 나무꾼 얘기는 처음이다.

아침식사
아침식사 ⓒ 정수권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푼 뒤 청계천 구경에 나섰다. 길 하나 건너니 바로 닿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 정수권
"와 물이다."

빌딩 숲속을 흐르는 청계천이 참 좋았다. 맑게 흐르는 물이며 징검다리, 물가의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아! 우리 어릴 때 놀았던 냇가와 똑같다"며 또 한 번 동심으로 돌아갔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서로 물을 튀기는 장난을 치다가도 사진 찍는다며 "여기를 보세요"하니 금세 어린 시절 그때처럼 얌전히 차렷 자세를 취한다.

징검다리 위에서 포즈를 취하다
징검다리 위에서 포즈를 취하다 ⓒ 정수권
물줄기가 시작되는 무교동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모두들 옛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그새 절반가량은 볼 일이 있어 먼저 떠나고 나머지는 "촌놈들 서울 나들이했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서울 친구들 말에 무교동 낙지 골목으로 가 맛있는 낙지로 점심 겸 반주를 했다.

청계천을 걷다
청계천을 걷다 ⓒ 정수권
초겨울, 가로수 은행잎이 바람에 뒹구는 아름다운 남대문 거리를 걸어 서울역으로 돌아와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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