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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군 신동면 예미초등학교 도서관 개관식
ⓒ 김홍련
겨울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는 12월 초하루. 몸무게 100kg이 넘는 괴짜 목사 한사람이 어둠을 뚫고 강원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국의 대표적 오지마을인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예미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예미초등학교는 산업합리화 조치 이전 만 해도 탄광이 호황이라 남부럽지 않은 시설과 많은 학생들로 붐볐지만 이제는 전 학년이래야 100명도 안되는 작은 학교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제 흥청대던 외지인들도 다 떠나고 학생들도 떠난 자리에 사명감을 가진 몇몇 교사들만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썰렁하고 찬바람만 쌩쌩 대는 강원도 오지마을 초등학교에 이날 신바람 나는 일이 생겼다. 도서관을 가진다는 건 적은 학교예산으로 엄두도 못 내던 차에 한 목사의 온정으로 전교생의 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어린이에게 마술을 선보이는 김수연 목사
ⓒ 김홍련
괴짜목사로 통하는 김수연 목사는 원래 기자였다. 그것도 잘 나가는 방송사의 취재기자였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뜻한 바 있어 오지마을에 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전력투구하다 아예 직장에 사표를 내고 사재를 털어 20년 가까이 이 일에 남은 인생을 투자하고 있다.

남들은 무슨 돈으로 그 많은 책을 구입해 나눠주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한단다. 그때마다 그는 그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의 투자는 어린이들에게 정신적인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진다고 한다.

사실 생색내기로는 몇 년간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언정 20년 가까이 도서보급에 힘을 쏟는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아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대답 대신 최근 한 언론사의 인터뷰 도중 사회자가 "목사님은 노후준비는 되셨어요?"라고 묻던 일을 상기시키며 "노후 준비가 걱정되면 왜 이런 일을 하겠어요?"라는 말로 대신한다.

그를 보필해오며 5년 동안 이 일에 동참해온 아나운서 출신 변원주씨가 옆에서 거든다.

"사실 지금은 형편이 나아진 거예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20년간 사재를 털어 이 일을 유지 해온다는 정성이 놀라워요. 저도 거기에 매료되어 봉사대열에 합류했지요."

그는 요즈음 '좋은 책읽기 가족모임'이라는 단체 활동에 물불 가릴 틈이 없이 바쁘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다행히 주변에서 후원자도 생기도 봉사자도 생겨 이제는 마음이 든든하단다.

특히나 오늘은 <네이버>에서 좋은 책읽기 운동에 동참하여 도서관 버스를 기증해 주어 그 버스를 타고 새벽같이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며 자랑을 한다.

▲ 2000여권의 장서로 채워진 도서관버스 기증
ⓒ 김홍련

▲ 새로 개관한 도서관에서 독서를 즐기는 어린이들
ⓒ 김홍련
예미초등학교는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해 서울에서 온 봉사자들이 구연동화도 해주고 마술도 보여주고 학부모들을 위한 교양강좌도 열어주는 등 하루 종일 북적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책에 있었다. 버스 안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모르고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린이들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가 동시에 오버랩되었다.

괴짜라 불리는 김수연 목사는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하여 축사대신 어린이들과 구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헌 책을 모아다 갖다 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받는 사람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처리곤란한 옛날 책들을 갖다 주는 걸로는 어린아이들의 양식을 키워줄 수 없어요."

12월 1일 개관한 예미초등학교 도서관에는 김 목사가 기증한 3200권의 어린이 도서가 가득 자리 잡았다.

김 목사는 이날 도서관 개관의 공을 도서관버스를 기증해 준 네이버측에 돌렸다.

"꺼져가는 봉사의 마음을 불태워준 네이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소주잔을 높이 쳐들었다. 그가 괴짜 목사로 불리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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