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회장님실이요?" 재벌 권력의 상징인 총수들의 집무실은 대개 사옥 맨 꼭대기층에 위치해 있다. 왼쪽부터 태평로 삼성 본관, 양재동 현대차 사옥, 여의도 LG 트윈타워, 서린동 SK 본사.
"회장님실이요?" 재벌 권력의 상징인 총수들의 집무실은 대개 사옥 맨 꼭대기층에 위치해 있다. 왼쪽부터 태평로 삼성 본관, 양재동 현대차 사옥, 여의도 LG 트윈타워, 서린동 SK 본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회장님실요? 어떤 회장님을… 예약은 하셨나요? 잠깐만요."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안내 데스크. '회장실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기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여직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어떤 회장실을 말씀하시는 건지… 사전에 예약을 하셨나요"라고 물었다.

기자임을 밝히고, '28층에 이건희 회장 집무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안내 표시판에 없다'고 하자,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보곤 "26층부터 구조조정본부라고만 돼있어 잘 알지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삼성 본관 로비 안내 표시판도, 11기의 중앙 엘리베이터에도, 28층 표시를 찾기 어렵다.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27층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 대신 '27' 숫자 위에 여분의 버튼이 있어, 28층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28층은 이른바 삼성 권력의 핵심이다. 이를 이용하는 삼성 임직원도 극히 제한돼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 집무실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국내 4대 재벌총수들의 집무실은 더욱 그렇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그룹의 주요정책과 경영전략이 결정되는 이곳은 외부인은 물론 내부직원들조차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재벌 권력의 상징인 총수들의 집무실은 대개 사옥 맨 꼭대기층에 위치해 있다. 그룹마다 차이는 있지만, 총수와 함께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핵심인사들도 본사 사옥 최고층에 자리잡고 있다. 바로 아래층에는 이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경영전략실이나 구조조정본부 등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임원은 "그룹 총수나 사장단 등이 본사 최고층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며 "위층에 있으면 임직원들의 이동도 드물고, 불필요하게 접촉할 일도 줄어 경영의 집중도를 높일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집무실은 28층, 이재용 상무는 25층, 그 사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76년에 완공된 태평로 삼성본관은 지하 3층 지상 28층 건물이다. 전체 면적은 2만5000평에 달하고, 1개 층의 넓이는 760평 정도다. '재계의 청와대'로 불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실은 건물 꼭대기인 28층에 있다.

이 곳에는 이 회장 집무실 이외에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실과 비서팀 등이 있다. 또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모임인 '수요회의'가 열리는 회의실도 28층에 위치해 있다.

수요회의는 매주 수요일 아침 이학수 본부장을 비롯한 구조본 팀장과 전자, 생명 등 각 계열사 사장 등 20여 명이 모여 그룹 전반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다. 따라서 28층은 그야말로 삼성의 최고 핵심 인사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회장실에 출근해 업무를 챙겼지만, 올 들어서는 본관으로 거의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이 회장 집무실의 경우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크지 않고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면서 "본관 회장실 이외 이 회장께선 업무 대부분을 자택의 개인 집무실에서 처리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석달째 비어있는 '재계의 청와대'... 올해 말 귀국 불투명

이 회장은 올 5월 중순 이태원의 신축 건물로 이사하기 전까지 '승지원'이라는 한남동 자택에서 업무보고 등을 받으며 경영 구상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9월 4일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이 회장의 귀국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석달이 넘도록 '재계의 청와대'가 비어있는 셈이다.

당초 오는 22일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인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회의'에 이 회장이 참석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지난달 터진 막내딸 윤형씨의 자살사건으로 미국 체류기간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언제 귀국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면서 "일부에선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중소기업 상생대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올해 말 귀국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 차기 대권주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25층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본관 28층은 그룹 총수의 권위를 상징하는 곳으로, 26층과 27층은 200여명의 규모의 구조조정본부가 들어서 있다. 본관 나머지 층 모두는 삼성전자가 쓰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볼때는 25층이 가장 꼭대기층인 셈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25층에 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왕자의 난' 이후 양재동 사옥 21층으로 출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집무실은 양재동 현대차 사옥과 역삼동 랜드마크 타워 빌딩에 각각 마련돼 있다.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양재동 사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꼭대기층인 21층에 집무실을 두고 있다. 정 회장은 주로 양재동 본사로 출근한다.

정 회장 집무실이 있는 21층에는 김동진 현대자동차(주) 대표이사 겸 그룹 총괄 부회장의 집무실도 함께 있다. 삼성이나 LG와 마찬가지로 그룹 총수와 가장 접촉이 빈번한 2인자가 지근 거리에서 보좌한다는 사실이 집무실 위치에서도 드러난다.

현대·기아차의 2인자 정의선 사장은 양재동 본사 사옥 20층에 있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올해 4월부터 양재동 별관 자리(대지 1500평)에 1700억원이 투입되는 21층 건물 신축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사는 계열사인 엠코가 맡았으며 2006년 12월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건물이 완성되면 현대·기아차도 21층의 트윈타워를 갖게 된다.

정 회장은 2004년 여름 현대하이스코, 엠코 등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이 있는 역삼동 랜드마크 타워 빌딩 가장 꼭대기인 23층에도 집무실을 마련했다. 랜드마크타워는 그룹의 제2사옥으로 불리는 곳.

현대INI스틸, 로템, 본텍 등 현대차 다른 계열사들이 속속 입주해 랜드마크 빌딩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철강 산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현대INI스틸이 위치한 랜드마크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랜드마크 집무실은 주로 관련 계열사 보고가 있을 경우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랜드마크 23층에는 정몽구 회장의 집무실뿐만 아니라 정 회장의 큰 딸이자 광고회사 이노션의 정성이 고문의 집무실과 박재범 사장의 집무실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광고 회사 이노션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각별한 애정 표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구본무 LG 회장 집무실이 34층 빌딩에 30층인 이유

구본무 LG 회장
구본무 LG 회장 ⓒ 연합뉴스
87년 완공된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는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터로 꼽힌다. 이는 연꽃이 물에 뜬 형상으로 명당 자리를 의미한다.

이 빌딩 동관 안내 표지판에는 공식적으로 구본무 회장 집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표시돼 있지 않다. 각 층의 안내를 가리킨 표지판에는 회장실이 있는 30층은 그냥 ㈜LG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구 회장은 매일 동관 30층 자신의 집무실로 출근한다. 95년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쭉 이 곳을 지켰다. LG 트윈타워 맨 꼭대기층은 34층이지만 30층부터 34층까지 건물 구조상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면적이 좁은 꼭대기층에 집무실을 두고 있지 않다. 집무실이 있는 빌딩 30층 양쪽에는 접견실이 있다.

30층에는 구본무 회장 집무실뿐만 아니라 그룹의 2인자로 알려진 강유식 부회장의 집무실도 함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곳에는 구 회장과 강 부회장 이외에 GS그룹의 허창수 회장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허 회장이 올해 LG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해, 강남 GS타워로 자리를 옮긴 이후 구 회장과 강 부회장이 30층을 사용하고 있다.

30층은 2개의 접견실과 대회의실, 그리고 집무실로 구성돼 있으며, 구 회장의 집무실은 30평 규모다.

LG트윈타워 동관 30층 구 회장 집무실은 한강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구본무 회장의 취미인 철새 관찰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집무실에 탐조(探鳥)용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거나 잠시나마 휴식이 필요할 때 한강과 그 위에 자유롭게 노니는 철새를 바라본다"고 할 정도로 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LG상록재단이 서울시와 함께 한강 밤섬의 철새 보호에 나서는 것도 이러한 관심 때문이다.

이 밖에 LG의 정도경영본부와 홍보실 등 핵심 부서들은 28층과 29층에 포진해 있다.

최태원 SK 회장, 본사 사옥 매각하면서 '전세살이'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SK그룹은 지난 99년에 종로구 서린동에 본사 사옥을 완공하면서 서린동 시대를 열었다. 이 건물은 최 회장의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생전에 의욕적으로 추진했었다. 맨 꼭대기층인 35층에는 최종건 1대 회장과 최종현 2대 회장의 흉상이 설치돼 있고, 바로 아래인 34층에 최 회장의 집무실이 있으면서 'SK의 상징'으로 불린다.

청계천을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최 회장 집무실의 책상 위에는 항상 최 회장 가족 사진과 부모인 고 최종현 회장 부부 사진이 놓여 있다고 SK 관계자는 설명했다. 집무실 이외 최 회장을 찾는 VIP 인사들을 위한 접견실과 비서실 등이 34층에 있다.

최 회장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아침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그는 특히 분식회계로 구속됐다 풀려나고 외국 자본인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등을 겪으면서 경영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던 것에서 벗어나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이사회나 포럼 등 대내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도 4대 재벌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해,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과 'CEO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이어 최근에는 그룹 협력 관계사와의 상생 경영 발표 현장에도 직접 참석해 '행복경영'을 발표하기도 했다.

SK는 지난달 서린동 사옥을 메릴린치 쪽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4400억원에 달하는 매각대금으로 인천정유 인수에 나설 방침이다. SK는 매각 후에도 현재 빌딩을 5년간 임대할 예정이며, 최 회장의 집무실도 그대로 남을 계획이다. 최 회장은 용산구 청암동 자택도 전셋집이어서 집과 사무실이 모두 전세살이를 하게 됐다.

SK 관계자는 "인천정유 매입 자금을 사옥 매각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재무건전성도 그만큼 양호해진 측면이 있다"면서 "고 최종현 회장이 '비좁은 나라에서 부동산에 욕심내면 안된다'고 말할 정도로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적은 그룹 전통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회장의 집무실은 철저히 외부에 비공개로 돼 있다. 재벌 그룹 대부분의 경우 입구 안내도에 공식적으로 집무실 위치를 표시하지 않을 뿐 더러, 엘리베이터도 따로 마련돼 있다.

4대 기업의 한 임원은 "CEO 집무실에 대해 보안 문제도 있고,'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라면서 "지극히 공식적인 것만 오픈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