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오래 전, 사흘 밤낮을 불 밝히며 놀던 사람들이 있었다. 해마다 마을엔 축제의 날이 돌아와, 낮엔 그들의 신명이 태양을 삼킬 듯 했고, 밤이 돌아오면 그 태양의 에너지를 토해내기라도 하듯 강렬함에 끊임이 없었다. 심장 박동을 닮은 원시의 북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붉은 노랫소리가 하늘로 올라갔다. 기록되지 않은 밤에 벌어진 무수한 유희들…. 모두 간 데 없이 사라졌으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장승만이 천년이 지나도 아직 거기에 선 채 그들의 신명을 지켜주고 있다.”
사단법인 문화마을 들소리(이사장 문갑현, 45)는 자신들을 소개하는 서장을 이렇게 연다. 그들은 우리 문화의 공동체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풍물을 중심으로 한 음악 위주의 문화단체를 1984년 창단했다. 그들은 ‘문화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공연을 문화예술 관점만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려고 한다. 하여 초창기에는 문화를 돈벌이로 전락시킨다며 많은 비난을 받아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젠 당당히 해외에 우리 문화를 수출하고 있다. 대체로 문화단체들이 마케팅 개념이 없어 자생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대부분 상근 직원들에게 변변치 못한 월급을 주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던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들소리의 출현은 대다수의 문화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비난할 사람은 없다. 아니 오히려 따라 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그들은 자존심보다는 자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상품성이 있어야 외국에 가서도 통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예술성과 철학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들의 주상품은 “타오(도:道)”이다. 타오는 동양 철학의 중추를 이루는 ‘노장사상(Taoism)’의 근본인 도(道)의 중국식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도’는 사람의 길이자 예술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시냇물이 조약돌을 눈부시게 닦아내듯 가야하는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본래 사람이 걷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이 글자는 인간의 도리로써, 예술의 도리로써 하늘과 자연, 천지 만물의 질서에 합일하기 위해 존재의 자유를 찾아가는 신명의 여정이 우리 앞에 놓였다고”말한다.
“타오”는 그동안 많이 알려진 ‘난타’나 ‘야단법석’ 등과는 다르다고 한다. 보통 타악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타오”는 분명 우리의 풍물굿에 중심을 둔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본적으로 풍물을 하면서 시대에 맞는 타악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다른 타악과의 또 다른 차이점은 보여주는 개념이 아니라 보고 손뼉을 치면서 같이 즐기는, 위압이 아닌 편안함이라고 그들은 힘주어 말했다.
올 3월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세계 음악과 춤의 잔치인 우매드(WOMAD:World of Music and Dance)에서 “타오”를 공연했다고 한다. 법고, 오북 가락 등을 재구성해서 ‘도의 깨달음’을 지향하는데, 자유로운 해방감을 얻고, 질서와 신명의 경지를 찾아가며, 평등 속에 가식없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고, 서양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 서양 사람은 소통은 갈구하지만 그런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음악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는 확신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들소리’는 이런 철학으로 캄보디아에도 한국 문화를 수출하려 한다. 2005년 12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캄보디아 시엠립 앙코르와트에서 여는 이번 캄보디아 공연은 ‘한국-캄보디아 관광협력을 통한 한국관광’이란 이름으로 홍보관광진흥개발기금을 받아서 여러 단체가 같이 진행하는 사업이다.
‘들소리’는 이번 행사에서 ‘타오’ 공연만이 아닌 워크숍을 병행할 것이라고 했다. 현지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도록 만들고 보고 배우는 마당 프로그램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초청자들이 아시아 문화를 익힐 수 있는 것으로 소규모가 아닌 집단적으로 몇 백 명을 동원하여 한계를 뛰어 넘는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들소리의 한진화 문화사업팀장(36), 서미숙 기획실장(31)과의 인터뷰 동안 그들은 내내 확신에 차 있었다. 서 실장은 말한다.
“우리 문화의 중심은 ‘성심을 다한다’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 ‘성심’을 가지고, 빌고 빌어주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워크숍을 끌고 갈 것이며, 청바지를 입어도 이 철학만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어서 한 팀장은 앞으로의 꿈을 말한다.
“그동안의 우리 문화는 하드웨어만 있었습니다. 용인민속촌의 경우만 보아도 집은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없습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 의식주의 모든 것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무당도 있고, 놀이공간도 있고, 공동체를 실현할 산 체험교육장으로 만들어 나가는 그런 것 말입니다. 하드웨어만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채워야 합니다. 모든 전통문화가 같이 살아나가는 구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 실장에게 좀 더 구체적인 개획을 들어보았다.
“내년 2월엔 ‘타오’를 업그레이드해서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것이고, 그 뒤 아프리카 공연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체 계획으로 100일간의 영국 10개 도시 순회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또 아일랜드, 프랑스도 돌 것이며, 영국 런던에 현지 지부를 개설하여 유럽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을 것입니다. 또 다양한 한국 문화를 소개할 창구로 만들어서 현지화를 이루어내려고 합니다.”
그들이 만든 팸플릿 따위를 보면 한국 문화를 하면서도 필요없는 영어가 자주 등장하고, 토속적인 맛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공연이름을 우리 토속어가 아닌 ‘타오’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옥에 티’일 뿐이며, 그들은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획을 하고, 실천한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따뜻한 마을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 사는 마음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들 18명의 식구들은 많지는 않아도 중소기업 직원들 정도의 월급은 가져간다고 한다. 노조는 물론 없지만 오히려 실무자들이 월급을 깎아야 한다고 이사장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모두가 내 회사란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얘기이다.
이 추운 초겨울, ‘들소리’는 우리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하지만, 가볍게 내딛고 있다. 우리 모두가 힘껏 큰 손뼉으로 보냈으면 한다. 그리고 큰 성과를 안고 돌아오기를 기원해본다. 그야말로 ‘성심을 다해’ 빌어주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문화마을 들소리 : http://www.duls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