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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마을의 다랭이논, 초봄에는 마늘로 온통 녹색이다
가천마을의 다랭이논, 초봄에는 마늘로 온통 녹색이다 ⓒ 유근종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바다가 어디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산 앞바다로 기억난다. 부산에는 큰고모댁이 있어 자주 갔고 이모들도 많이 살고 계셔서 자주 다녔다. 그 바다가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군대생활을 동해바다가 보이는 울진에서 하게 되었다. 해안초소에 근무할 때는 거의 매일 멋진 일출도 보고 시간나면 낚시도 다니고 머릿속이 복잡하면 자전거에 몸을 싣고 방파제에 나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렇듯 바다는 내게 친구같은 존재다. 망망대해가 펼쳐진 동해바다만 보다가 남해바다를 오랜만에 다시 봤을 때 '이게 무슨 바다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친근해지는 바다가 바로 남해섬의 남해바다가 아닌가 싶다.

<font color=a77a2>[왼쪽] 정포마을의 류금지 할머니. <font color=a77a2>오른쪽 가을을 떠나 보내고 있는 남해바다.
[왼쪽] 정포마을의 류금지 할머니. 오른쪽 가을을 떠나 보내고 있는 남해바다. ⓒ 유근종
남해에 들어서는 것은 남해대교를 건너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남해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다. 원래 붉은 색이던 것이 붉은 색이 오래 가지 못한다고 회색을 칠했다가 최근에 다시 붉은 색으로 바꾸었다. 회색이던 것이 어느 날 빨간색으로 탈바꿈을 한 듯했다.

남해를 자주 다닌 것은 집에 차가 처음 생기면서부터였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남해를 꼼꼼히 보려면 차가 있어야 제격이다. 남해대교를 건너 고현면 우회도로를 들어서는 순간 남해 해안 일주가 시작된다. 하동과 광양 멀리 여수까지 보이는 남해의 풍경은 이채롭다.

얼마 전 다시 아내와 같이 남해에 간 적이 있는데 언덕 쯤에서 보니 굴따는 할머니들이 계셔서 그 쪽으로 내려갔다. 서면 정포마을에 계신 분들인데 거의 다 일흔이 되신 분들이다.

가만 보니 굴을 양식해서 따는 것 같지는 않아서 류금지 할머니(75)께 "그것 팔아서 돈 하세요?"라고 여쭸더니 "노니 헌다"며 큰 굴을 따서는 계속 내 입속으로 넣어주신다. 좀 짜긴 했지만 큰 놈으로 몇 마리 먹으니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이렇듯 시골 할머니들은 타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옆에 계신 할머니들이 금지 할머니 이름이 좋다고 말하자 정작 본인은 좋은 줄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떠시는 모습에서 비록 젊은이들이 다 떠나서 외롭겠지만 적적하지만은 않은 시골생활을 하고 계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물건방조어부림
물건방조어부림 ⓒ 유근종
물건방조어부림의 아름드리 나무들
물건방조어부림의 아름드리 나무들 ⓒ 유근종
남해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방풍림이 있다. 그래서 이 방풍림을 언젠가는 한 번 사진 속에 담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남해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풍림은 삼동면 물건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 150호로 지정된 물건방조어부림이다. 이 방풍림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 등을 막아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숲으로, 물고기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어부림의 구실도 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숲이 파괴되면 동네가 피해를 입는 사실을 알고 숲의 보호에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숲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이용한 지혜를 알 수 있는 자료로써 문화적 가치가 커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물건방조어부림에 가면 계절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봄이면 새싹이 돋아나는 이파리를 보고, 여름이면 그 푸름을, 가을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겨울에는 방풍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이 외에도 남해에는 많은 방풍림이 있는데, 서면 서상리 장항마을의 방풍림(이 동네에선 그냥 장항숲이라 부름)을 들 수 있을 것이고, 남면 홍현 1리에 있는 방풍림도 빼놓을 수 없다. 아주 작은 그리고 지금도 조성되고 있는 방풍림까지 합치면 꽤 많은 수가 될 것 같다.

장항마을의 방풍림
장항마을의 방풍림 ⓒ 유근종
가천마을의 암수바위, 앞에 보이는 것이 여인의 임신한 모습과 비슷한 암바위.
가천마을의 암수바위, 앞에 보이는 것이 여인의 임신한 모습과 비슷한 암바위. ⓒ 유근종
남해에는 자랑거리가 많다. 그 중에서 남해 사람들의 강인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마을이 하나 있는데 남면 가천마을이다. 요즘은 가천마을이라는 명칭보다는 다랭이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고 있다. 그리고 가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암수바위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천마을에 가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을 논으로 개간해서 사는 것을 보면 남해사람들이 얼마나 환경을 잘 개척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가천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으면서 어업에는 종사하지 않는 남해에서 유일한 농업마을이다.

요즘은 가천마을이 너무 유명해져서 주말이면 관광버스들로 북적인다. 그 여파인지 지금 가천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

특히 암수바위가 있는 곳에 담을 다시 만들어서 예전의 자연스러움을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것을 좋게 만든다는 것이 오히려 흉한 모습이 되고 말아 아쉽다.

여전히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갈고 있는 가천마을의 할아버지
여전히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갈고 있는 가천마을의 할아버지 ⓒ 유근종
이 곳 가천마을에는 아직도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워낙 비탈진 곳이라 경운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남해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용문사라는 절인데 용문사는 802년(신라 애장왕 3년)에 창건된 절이다. 임진왜란 이후 호국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숙종 때 나라를 지키는 절이라며 수국사로 지정된 적도 있다.

남해에 가면 용문사를 꼭 들르게 되는 이유가 몇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절 어귀에 위치한 나무장승 때문이다. 화려한 색깔도 일품이지만 그 귀여운 모습이 나를 끌리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얼마 전 너무 오래된 나머지 그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지금은 장승이 없는 빈 자리만 휑하니 남아 있는 것이 애처롭기만 하다.

둘째로는 일주문 오른쪽 언덕에 있는 9기의 부도가 있는 부도밭이다. 부도밭의 조화도 아름답지만 봄이면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종류의 제비꽃을 볼 수 있고, 가을이면 부도 주위로 들국화들이 예쁘게 피어난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이 용문사 약수이다. 용문사의 약수는 내가 마셔본 절집의 물 중 가장 맛있는 물이 아닌가 한다. 남해까지 가서 용문사 물을 마시지 않으면 남해를 다녀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맛은 일품이다.

<font color=a77a2>[왼쪽] 용문사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제비꽃. <font color=a77a2>[오른쪽]용문사 입구의 귀여웠던 장승.
[왼쪽] 용문사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제비꽃. [오른쪽]용문사 입구의 귀여웠던 장승. ⓒ 유근종
남해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올 수 있는 곳이라 내겐 지난 시절 많은 위안을 받은 곳이다. 지금 역시 그렇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비해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연스러운 아기자기함이 그 본래의 모습이었거늘 지금은 너무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개발이라는 것도 남해의 자연스런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뤄서 나아가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얼핏 보기에도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펜션들은 왜 그렇게 많이들 짓고 있는지….

 

덧붙이는 글 | * 남해를 찾아가는 길은 예전에 비해 많이 빨라졌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생겨서 서울에서 5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거의 한 시간 반이상 단축되었다.

남해로 접근하는 방법은 삼천포-창선대교를 이용하는 방법과 남해대교를 이용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어디를 가든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숙박시설 역시 가는 곳마다 즐비하게 있어서 여유롭다. 하지만, 주말에는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더 자세한 사항은 남해군청 문화관광과(http://www.tournamhae.ne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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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에 입학했고,지난 1998년과 1999년 여름 러시아를 다녀와서 2000년 졸업 뒤 사진전 "러시아 1999"를 열었으며 2000년 7월부터 2001년 추석전까지 러시아에 머물다 왔습니다. 1년간 머무르면서 50여회의 음악회를 다녀왔으며 주 관심분야는 음악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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