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파는 곳에서 20명 남짓 서있다. 10:00시부터 표를 판다. 30분 남짓 기다렸을때는 내 앞에 25명으로 불어났다. 새.치.기 뭐! 양호한 편이다.
기차시간이 오전 11:40분이라 조금 초초하다.
10시가 됐는지 문이 열리고, 검색대 짐검사를 통과한 사이에 내 앞의 인원 35명 정도로 불어났다. 흠!
표를 판지 30분정도가 지났는데도 내 앞 줄은 줄어들지가 않는다. 휴~ 이 나라 경찰도 줄서라는, 새치기하지 말라는 말을 안하는데 어찌 외국여행자가 주제넘은 오지랖을 할쏘냐!
새치기꾼들이 거진 다 사라지자, 줄이 조금씩 준다. 그래 '참는 것이 복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줄은 줄어 내 앞 사람까지, 3장이나 산다. 흠! 불길한 예감이 언뜻 스쳐지나 가고.
카스(카스카르, 喀什)가는 보통열차 입석이 '41'위안이라 50위안짜리를 내밀고는 '카스!'라고 외치니 '없어!'란다.
요 짧은 한마디가 주는 의미와 공교로움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없어?', '없어!', '왜 없어?', '다 팔렸어!', '나 한국인! 천천히 다시 말해! 왜! 왜! 왜! 표가 없어?', '다 팔리고 없어!'
휴우~ 백사장에 밀려오는 파도마냥 끝없이 새치기를 해대는 신강 위구르인들을 인내로 버틴 보람이 결국 이런 식이라니! '머피의 법칙'이 생각난다. '잘못된 가능성이 있는 것은 잘못된다'인가?
표가 없다는 데 어쩔 것인가? 인상이 저절로 써진다.
'줄 안서면 표 안팔어!'라는 때늦은, 나한테는 별 설득력 없어 보이는 문화의식 질서의식 고양함성을 등 뒤로 하며 대합실을 나왔다.
다시 역으로
11시나 됐을까? '카스'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단다. 이런이런! 길가에서 오후에 두어 차례 지나가는 우루무치에서 출발하는 카스행 침대버스를 타고 가야한다고 한다. 에고! 길바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침대버스를 기다려야 하나?
'카스'쪽으로 버스타고 조금씩 접근하기로 결정! 쿠처에서 카스가는 방향의 3분의 1쯤에 있는 '아크수(阿克蘇)'로 가기로.
12시에 출발하는 표를 사고 돌아서니 '리'가 서있다가 반긴다.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줬다. "interrupt! interrupt! My turn don't buy ticket" "정말?" 그래 임마! 정말이다.
출발시간 비슷한 두 사람끼리 죽이 맞아 버스가 드리운 그늘 속에 들어가 쪼그려 앉아서 노닥노닥. 나름대로 구경거리가 됐는지 많이 들 쳐다본다.
기념 촬영. 또 짧은 이별. 요 너털웃음 잘 웃는, 외할머니가 남아프리카인이며 할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이고 엄마는 영국인이라는 국제적 혈통의 맨체스터 성 앞 마을에서 셋방을 살고 있고 '박지성'을 알고 있는, '사진'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작달만한 영국인이 보고 싶을 것이다. 이런 타문화에 열린 가슴과 입맛을 지닌 여행자는 만나기 드문데.
차에 올라 위구르어 회화책을 보는냥 하고 있으니 역시 옆의 위구르소녀가 말을 건다. 이렇게 위구르어 책만 펴면 위구르인 선생님이 나타난다.
잉? 위구르 문자를 모른단다. 몽고칸이 위구르어로 역사를 기록하라고 할 정도로 완성도 높았던 위구르어가 후손들에게 이런 대접을. 몽고문자도 위구르어에서 나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내 형편없는 영어실력에 일조를 하신 우리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기억난다. 집에서 한국어를 안써서 해방 후에 따로 우리말을 배우셨다는.. 위구르인이 위구르 말과 문자를 잃으면 위구르인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신강지역에서의 중국정부와 위구르측의 충돌은 민족적, 역사적 특히 종교적 갈등 탓이지만 자기문화를 잃을지 모른다는 '문화적'위기가 불려온 갈등탓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 여행자의 비약일까?
고2며 곧 개학이라 아크수에 있는 학교로 엄마와 여동생하고 가는 중이라고 한다.
'리'와 수다떠는 걸 보고는 내 영어 실력이 현지인 수준정도 되는 줄 심각한 오해를 하고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써먹을려고 시도 때도 없이 영어로 질문한다. 등에서 식은 땀이, 오싹 한기가 든다. '이봐! 학생 내 영어실력은 학생보다 못해!'라는 비교급이 들어가는 영어문장을 말할 줄 몰라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는 척. 정말 피곤해진다.
아크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물어보니 '카스'가는 버스는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터미널'이란다. 택시로 이동. '중화사상'에 가득찬 한(漢)족 택시운전사의 비외교적 표현들을 한 귀로 흘려듣고 갔다. 에고 그냥 '산동'에서 왔다고 할 것을 굳이 '한국'에서 왔다고 한 죄 아닌 죄(?)다. 이런 사람인줄 꿈앤들 알았나? "중국은 한국보다 커!" 그래 커 남북한 합쳐 44배니까 크지.. "중국은 한국보다 인구도 많아!" 그래 많아 13억이니 남북한합쳐 20배정도는 되지.. "한국은 과거 중국의...", 문화우월사상에 빠진 국수주의자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고쳐주려다 그냥 '외교적인 한국인'이 되기로 결정했다. 한 10여분 만났다 헤어지는 데 괜한 갈등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서.. 갈등의 원인제공을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인구'많은 걸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중국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후다닥 달려가 표 파는 곳에 가니 15:00 차라고 되어있다. 잉? 지금이 몇시인데? 짧은 의문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얼른 버스로. 버스에 앉아서 보니 14:40 분이다. 잉? 12시에 출발해서 거진 서너시간 넘게 걸려 왔는데 무슨 조화인고?
이런저런 추리 끝에 알아낸 결과는, 버스에 걸린 시계시간은 신강시간였고, 원래 북경시간으로 오후 3:00에 출발해야 하는 차가 시골버스답게 사람 채워간다고 오후 4:40분(신강시간 오후 2:40분)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결국 십여 분 더 기다렸다 출발. 2시간씩 별 항의없이 넘어가는 중국인들이 이 경우는 위구르인들이 무섭게도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카스까지는 거의 서쪽방향으로, 해가 지는 방향으로 400여 Km다. 이 차도 역시 속도계는 '0'에 멈춰있다. 짭! 카스까지는 6시간 걸린다고..
10시 넘어서 카스도착. 내 다리가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좁은 의자에 6시간이나 끼어왔더니 온 몸이 제 상태가 아니다.
'리'가 하루에 16위안이라는 알려준 '색만빈관(서만호텔, 色滿賓館)'으로 이동. 과거 영국대사관 건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제국주의 영국이 인도를 거점으로 중앙아시아를 먹기 위한 전초기지였던. 카스의 근대사는 영국이나 러시아같은 열강들의 탐욕이 숨겨진 견제와 무너지는 제국 청나라의 고분분투와 위구르독립(종교)투쟁의 혼란지였다고 할까!
(필자주: 이 지역(카스를 포함한 신강지역)에 대한 갈등을 짧게 표현하자면 18세기 중후반의 청나라의 정복은 잠복기를 거쳐 19세기 중후반에 짧지만 격렬한 투쟁을 불러들여왔다. 특징이라면 이 지역의 투쟁은 '민족'적인 것보다는 '종교'적이었다.(주 : 이 지역 최고전문가이신 김호동 선생의 <근대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을 참조하시길)
20세기 초반의 투쟁은 투쟁지도자와의 협상을 위해 <손자병법>과 '36계'를 만든 나라 중국측이 마련한 비행기의 공교로운 고장으로 인하여 투쟁지도자들 다수가 사망바람에 불씨가 사그라졌지만 소멸하지는 않아서 20세기 후반을 거쳐 21세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문명'과 '중화문명'의 충돌이며 '유신론'와 '무신론'의 충돌이며, '위구르족'과 '한족'간의 민족충돌이기에, 이 지역(신강)의 평화적 해결과 공존을 바라는 사람으로, 그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가 않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
하여간, '색만빈관'으로 가자고 했는데 전혀 다른 호텔 앞에 내려주고는 가려고 한다. 지도에는 '색만빈관'앞에 우체국이 있어서 재차 확인까지 했는데 '있어있어!'라는 빤한 거짓말만 하고는 총알처럼 도주. 결국 야밤에 물어물어 1Km 넘게 있는 색만빈관 도착.
오늘 혼자(근무)라 무척 피곤하다는 프런트 직원. "제일 싼 방!" "25위안!" 잉? 머시라? 25위안! "내가 듣기에는 여기 15위안!", "25위안!, 손 씻는데 있어!" 그래! 그래! 내 앞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저 프론트 직원과 그 직원보다는 더 지친 나를 위해 무리하기로 결정. "오케이 이틀!" 방값 50위안, 열쇠보증금 20위안
힘들게 사층까지 올라갔더니 '400'호는 벌써 다섯 명이 찼단다. 어제 내가 도와준 일본총각이 서양총각들 틈에서 아는 채! 짧은 미소가 오갔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다시 내려가서 프론트 직원에게 '너 피곤한 것도 이해해! 근데 나 오늘 버스만 열 시간 넘게 타서 나도 피곤해! 그냥 15위안짜리 아무 침대나 줘!'하니까 아가씨 둘만 있는 방인데 괜찮냐고 물어본다. 할머니 스무 명도 괜찮으니까 침대 좀 줘! 잠좀 자자!
거의 2주 걸려 이번 여행의 반환점인 '카스'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에 왔다는 실감도 느끼기 전에 잠에 빠졌다.
<8월 18일 경비사용 내역>
ㅇ 이동비 : 80 위안
- 버스 : 쿠처 > 아크수 35 위안
- 버스 : 아크수 > 카스 45 위안
ㅇ 교통비 : 12 위안
- 버스 : 빈관 > 쿠처역(1위안), 쿠처역 > 빈관(1위안)
- 택시 : 아크수터니널 > 중앙터니널 (5위안), 카스터미널 > 색만빈관 근처 어디쯤 (5위안)
ㅇ 숙박비 : 15 위안
- 색만빈관 : 3인실,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실(온수 제공)
ㅇ 식 비 : 8 위안
- 아침 : 커피한잔
- 점심 : 계란 4개 (2위안)
- 저녁 : 신강비빔면 6위안
ㅇ 관람비 : 없음
ㅇ 잡 비 : 3 위안
- 수박 한쪽(0.5위안), 생수 한통 (2위안),
ㅇ 총 계 : 118 위안
* 계산 편의를 위해 사사오입
덧붙이는 글 | ㅇ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자티의 중국여행(http://ichina21.hani.co.kr/)', 중국배낭여행동호회인 '뚜벅이 배낭여행(http://www.jalingobi.co.kr)'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ㅇ 중국여행에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한겨레-차이나21-여행자료실(http://bbs.hani.co.kr/Board/tong_tourdata/list.asp?Stable=tong_tourdata)'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ㅇ '여행일기'라 평어체를 사용했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중국배낭길라잡이'의 내용을 실전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봐주시길..
ㅇ 중국어는 경어가 거의 없기에, 사실에 가깝게 번역했습니다. 현장감 있는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군요.
ㅇ '여행지정보'보다는 '여행정보'에 치중했습니다. 괜한 그리고 많은 '여행지'사진은 스포일러(영화결말을 말하는) 같아서.
ㅇ 중국돈 1위안은 2005년 8월 한국돈 136원(팔 때 기준)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