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장김치입니다
김장김치입니다 ⓒ 박희우
저는 미리 막걸리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갓김치까지 담갔습니다. 막걸리에 갓김치, 맛이 기가 막힙니다. 아내는 막걸리를 곧잘 마십니다. 홀짝홀짝 한잔을 비웁니다. 저는 밥숟갈에 김장김치를 얹었습니다. 한입 가득 입에 밀어 넣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김장김치가 어디 있을까요. 저는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아내도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여보, 속이 다 후련하네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일찍 끝낼 수가 없었을 거예요. 남자도 김장김치를 잘 담글 수 있다는 걸 당신이 보여주었어요. 고마워요, 여보."

아내의 칭찬이 과합니다. 저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을 떱니다. 그런데 있지요. 마음 한구석이 여간 뿌듯한 게 아닙니다. 저는 엄지손톱을 바라봅니다. 손톱이 알알합니다. 쓰리기도 합니다. 저는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갑니다. 아직도 손에서 마늘냄새가 납니다. 비누로 깨끗이 씻었는데도 그렇습니다.

저는 어제 밤늦게까지 마늘을 깠습니다. 물론 저만 마늘을 깐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도 고사리 손으로 마늘을 깠습니다. 마늘 까기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마늘을 물에 담갔는데도 그렇습니다. 아내가 시범을 보여줍니다. 먼저 칼로 마늘의 아래 부분을 잘라냅니다. 이유를 물으니 마늘 아래 부분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두 겹으로 깔았습니다. 저는 베란다에서 절인 배추를 가져옵니다. 아내가 저보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김장김치용 비닐봉지와 청각, 굴을 사오라고 합니다. 저는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게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오늘은 바쁜 날입니다. 빨리 움직여서 나쁠 게 없습니다.

아내가 배추 속에다 양념을 집어넣습니다. 양념을 배추 이파리에다 척척 바릅니다. 다시 배추를 동그랗게 오므립니다. 그런 다음 김치 통에 담습니다. 아내가 허리를 폅니다. 힘든 모양입니다. 저는 얼른 아내가 끼고 있는 고무장갑을 벗겼습니다. 제가 김장김치를 담그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싱긋 웃습니다. 제법 그럴 듯하다며 칭찬도 합니다. 저도 아내를 치켜세웁니다.

"나야 고생하는 게 뭐 있겠소. 마늘 깐 일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아니잖소. 일주일 전부터 김장준비를 했지 않소. 요즈음은 김장 안하는 집도 많다는데 당신이 고생이 많소."

"김장김치를 사 먹다니요? 그건 안돼요. 김장김치는 겨우내 먹을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음식이에요. 그걸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지요."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갸륵하기만 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저는 더욱 열심히 배추에 양념을 바릅니다. 김치만 있으면 겨우내 반찬걱정은 없습니다. 그냥 맨밥에 김치만 먹어도 좋습니다. 찬밥에 김치를 걸쳐먹어도 맛있습니다. 찌개를 끓여먹어도 좋습니다.

저희 집 김장김치는 재료가 모두 국산입니다. 한두 가지만 빼고는 모두 처가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것도 예사 농산물이 아닙니다. 지리산 바로 아래 동네가 처가입니다. 그곳에서 농사지은 것이니 얼마나 싱싱하겠습니까.

"옆집에도 갖다 주지 그래요? 김장할 때 흔히 그렇지 않소."
"당연히 그래야지요."

갓김치에 막걸리입니다
갓김치에 막걸리입니다 ⓒ 박희우
그때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습니다.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인가 봅니다. 잠시 몇 마디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식탁에 앉자마자 아내가 기분 좋게 웃습니다. 무슨 재미난 일이 있는가봅니다.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지레 말해버립니다.

"글쎄 있지요.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이 내일 우리 집에 김장김치 먹으러 온대요."
"그래요. 그럼 좀 더 많이 담글 걸 그랬소."

저희 부부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오늘 저희 집은 배추 스무 포기를 담갔습니다. 작년에는 마흔 포기를 담갔습니다. 아내는 다음에 스무 포기를 더 담근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배추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담그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돈을 아껴서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단 아내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주부들이 다 그렇게 알뜰살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내는 계속해서 후련하다는 말을 합니다. 어디 아내뿐이겠습니까. 저도 아내만큼이나 마음이 후련합니다. 조금밖에 도와주지 못했는데도 그렇게 좋아하는 아내가 고맙기도 합니다.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같이하면 힘들지 않습니다.

이번 김장준비에는 온 가족이 참여했습니다. 여덟 살배기, 열 살 배기 꼬맹이는 마늘을 깠습니다. 저도 설익은 솜씨지만 김장을 직접 담갔습니다. 아마 저는 그럴 것 같습니다. 김장김치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담근 김장김치가 어떤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