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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림 같다>는 미술에 홀린 손철주의 미셀러니이다. 저자 손철주는 신문사 미술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국내외 미술 현장을 취재해 온 미술 칼럼니스트다. 현재는 '학고재' 주간으로 근무하고 있다.

'책머리'를 그는 독특한 이름의 '앞섶을 끄르고'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고 싶다. 그림 마음에 드는 나이고 싶다. 그림은 입이 없고 마음은 갈피가 없으니 다만 그리운 팔자다"라고 적고 있으니 그는 그림에 단단히 홀린 사람임에 분명하다. 어디에 홀려 거기에 미친다면 분명 어느 빛나는 지점에 도달(미치다)할 수 있으리라.

▲ 손철주 <인생이 그림이다>
ⓒ 생각의나무
손철주의 품격 높은 예술 산문집인 <인생이 그림 같다>는 1부 옛 그림과 말문 트기, 2부 헌 것의 푸근함, 3부 그림 좋아하십니까, 4부 그림 속은 책이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에 따라 열 몇 개의 소 항목으로 개별 이야기가 이루어져 있다. 책 속에 언급되는 미술 작품(그림)은 모두 원색으로 처리되어 있고, 작가 인물 소개는 책 맨 뒤쪽에 따로 구성해 독자의 책 읽기와 내용 파악이 쉽고 빠르게 했다.

그는 인생이 그림 같고, 그림이 책 같고, 책이 그림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의 4부 표제 '그림 속은 책이다'는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저자의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손철주의 산문집 <인생이 그림 같다>는 그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동서양을 물론, 고대와 현대 미술 전부를 아우르고 있다. 박물관 속의 토기와 조각품, 상품 디자인, 체 게바라와 존 레논의 사진, 어느 절간의 스님이 찍은 기와 지붕의 위의 청태(靑苔)에 이르기까지 그 그림의 빛깔과 모양은 다양하다.

우리는 그가 이렇게 그려 놓은 그림을 천천히 읽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 읽기의 즐거움이 매우 크다. 사실 나는 이 그림을 다 읽지는 않았다. 이 장면 저 장면 골라 아껴가며 읽는다. 1부의 세부 항목인 '난의 난다움'에는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不二禪蘭)과 임희지의 <묵란도>, 강세황의 <난 그림>, 김지하의 <란이 바람을 타는가 바람이 난을 타는가>라는 작품을 놓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 일부를 잠시 인용한다.

난다운 난 그림은 모름지기 난잎에서 찾아야 한다. 부드럽게 꺾어지는 춘란이든 꼿꼿하게 기를 세운 건란이든, 난 그림의 요체는 모두 잎에서 표현된다. 잎을 그리는 작가의 붓은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간다. 숨막히는 긴장은 난을 냉정하게 만들고, 맥풀리는 이완은 난을 방종하게 만든다. 난의 됨됨이가 그 긴장과 이완의 묘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옛 사람은 난 그림에서 절도를 으뜸으로 생각한다. 그리지 말고 치라고 요구한다. 서예에서 긋고 삐치는 필법이 다르듯이 난 그림에서도 붓은 고집 센 룰 아래 운영된다. 난잎의 기본은 삼전법에 있다. 잎이 뻗어나가되 세 번의 꺾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머리는 못대가리처럼 뾰족해야 하고, 끝은 쥐꼬리처럼 가늘고 길어야 한다. 가운데는 사마귀 배처럼 보록하게, 교차하는 부분은 봉황의 눈처럼 맵시 있게 치라는 주문도 들어 있다. 형식이 내용을 장악하는 사례를 난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설가 김훈은 "손철주는 한 생애를 다해서 관능의 일탈과 자유를 도모한다. 도모는 곧 헤매기인 것인데, 그의 눈은 끊임없이 빚어지고 스러지는 세상의 모든 빛깔과 선과 형상을 쫓아다니며 노느라고 바쁘다"고 적고 있다. 그 노님과 바쁨 속에서 얻어진 손철주 <인생이 그림 같다>를 겨울 찬바람 소리 들으며 읽는 내 즐거움은 그윽하다.

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생각의나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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