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일보에서 무료 배부하는 한자 학습지
조선일보에서 무료 배부하는 한자 학습지 ⓒ 양중모
그런 유혹은 성인들보다 자식을 기르는 주부들에게 더 강하리라. 지금 조선일보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맛있는 한자', 사실 한자를 중요하게 교육 받지 않은 세대인 나도 종종 보면서 배울 때가 있다. 기업체에서도 점점 한자를 중요시 여기는 곳이 늘어가고 있다는데, 영어 뿐 아니라 각종 외국어니 예능 부분을 가르쳐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무료로 주는 주간 한자 학습지에 가까운 교재를 뿌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정 거래 등 문제를 떠나서 조선일보가 제공하는 각종 교육에 관한 무료 자료들은 독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나쁘게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특히나 자식 교육에 열심인 우리나라 정서상 어머니들은 그런 것들을 마다하기 힘들다. 그 뿐인가. '맛있는 공부' 같은 초중고생을 위한 교육 섹션면을 따로 하나 만들어 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등의 조언까지 해주어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한 학부모들의 가려운 부분까지 긁어주니 싫어하래야 싫어할 수 있겠는가.

사람 마음이라는게 다 그런 법이니까. 그렇다하더라도, 거리감은 두고 보는 게 꼭 필요할 듯 하다. 반미, 친미를 주장하는 가운데 용미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듯, 나 역시 그런 유혹을 끊기 힘들다면 用조선을 주장하고 싶다.

대학교 시절 '학생회애들이 별다른 목적의식이 없다'고 비판하던 약간 보수적인 교수님이 어느 날인가 조선일보를 대놓고 비판해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얘네들은 미친 거 아냐. 맛있는 공부? 참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는거야?!"

사실 그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 때문에 속으로는 많은 반감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고 나니, 오히려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사실, 나 역시 '맛있는 공부'는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냥 재미로 보기에는 좋았기 때문이다.

초등생 5학년의 겨울 방학 계획표가 마치 고시생의 계획표 같다.
초등생 5학년의 겨울 방학 계획표가 마치 고시생의 계획표 같다. ⓒ 양중모
그리고 무심코 지냈는데, 오늘 집으로 배달된 '맛있는 공부 초등학생 겨울 방학 공부법'을 보고서 그 교수님이 화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 내용은 대략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내용 세워야'라는 제목 아래 한 5학년 아이의 시간표를 그려놓았다.

난 사실 그걸 보고서 깜짝 놀랐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오전은 영어, 수학 공부로 꽉 차여져있으며, 오후 역시 영어, 수학 숙제에다 논술까지 포함되어 있고, 피아노, 검도 등 예능 공부도 틈틈이 들어가 있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말에도 꽉 차여져있지 않지만, 주간에 부족했던 면을 보완한다는 계획이 세워져있지 않은가. 주중내내 공부로 꽉 차여진 시간표였는데, 주말까지 공부하겠다니, 이것이 특정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의 시간표인지, 아니면 아직 한창 뛰놀아야 할 초등학교 5학년의 시간표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 교수님이 화냈던 이유가 대략 짐작이 갔다. 다양한 무료 교육 서비스로 조선일보에 호감이 생기고 혼자서 교육 계획을 세우기 힘든 부모들의 경우 이런 기사를 보고 자신의 아이들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섬뜩함마저 들었다.

오로지 공부로 가득차있는 그런 계획표,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마다, 자연을 탐구하고 싶은 아이도 있고, 여행을 하고 싶은 아이도 있을 것이며, 각각 재능이 다를 텐데 그런 계획표가 과연 좋을 것인가.

게다가 바로 그 옆에는 대학교에 13세에 합격한 아이가 매일 CNN을 한 시간씩 시청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게 되기까지 꽤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고, 그 아이는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듯 했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보고, 무턱대고 자신의 아이에게도 CNN을 한 시간 씩 시청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닐지.

그러고 보니 '맛있는 공부'면을 가득 채운 건 화학경시대회 입상, 13세 대학교 입학 등 특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런 아이들이 노력해서 거둔 성과에는 박수를 쳐주는 것이 옳겠지만, 아이가 자라나는데 있어 그런 지식과 관련된 공부에 관한 성과들만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는가.

운동 선수로 대성할 아이도 있고, 작가로 대성할 아이도 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자칫 영어나 수학 등 시험에 필요한 공부만 강요하는 교육 방법은 성공하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바로 그 점에서 조선일보의 교육 섹션은 각별한 주의를 갖고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짜 맛있는 공부는 아이의 관심사와 흥미를 고려 그 아이의 적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것일 것이다. 과연 지금처럼 영재 중심 교육방법에 대한 충고만으로 아이에게 '공부 맛있지?'라고 물을 수 있을까?

몇 몇 아이들에게는 정말 맛있는 공부이겠지만, 또 다른 몇몇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정말 맛없는 공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사실 저도 에듀조선 외국어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영재들 교육방법을 위주로만 다룬 조선일보의 교육 섹션면은 좀 과도한 감이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