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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남의 창고에서 새 주인의 배려로 겨울을 나고 있는 백구 가족.
ⓒ 최연종
화순에 폭설이 내린 지난 4일, 남의 집 허름한 창고 주변을 서성거리는 내 이름은 '백구'(白狗). 새 주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오갈 데도 없고…. 더구나 나는 홀몸이 아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장소는 음식점 주변이 좋겠다. 남은 음식찌꺼기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바닥에 비닐을 깔고 헌옷가지로 이불을 만들면 그런 대로 추위는 피할 수 있겠지….


▲ 젖을 물리면서도 이방인의 카메라를 경계하는 백구.
ⓒ 최연종

“강아지 춥겠던데 언제 낳았어요?”
“무슨 강아지요? 우리 개 안 키우는데….”

조윤주씨는 깜짝 놀랐다. 손님이 가리킨 곳에 하얀 어미개가 강아지 6마리를 출산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 어미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새끼는 어미를 닮지 않았다. 모두 누렁이다.

그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다. 친구와 강가에 놀러갔는데 친구가 개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개가 갑자기 돌변, 조씨를 물려고 달려들어 도망쳤지만 끝내 다리를 물렸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친구 집에서 된장을 가져다가 상처에 발라 아물었지만 그 이후 개를 가까이 하지 못했다.

▲ 백구가 경계를 풀고 포즈를 취했다.
ⓒ 최연종
조씨는 화순읍 대리에서 숯불구이집 대장금(大長今)을 운영한다. 그날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보여준 감동이 없었다면 크게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가씨는 자기가 시켜놓은 음식을 고스란히 어미 개에 갖다 줬다. 손님의 정성에 감동한 조씨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미 개는 오랜 동안 굶은 탓인지 먹지를 못했다.

조씨가 사골 국에 쇠고기를 넣고 끓여서 갖다 주니 그때서야 어미개가 경계의 눈빛을 풀고 먹기 시작했다. 날름날름 받아먹는 어미 개를 보며 조씨는 고등어도 튀겨서 갖다 주는 등 산후조리를 하다시피 정성껏 돌봤다. 덕분에 백구는 살이 오르는 등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 강아지는 어미와는 달리 누런 털을 가졌다.
ⓒ 최연종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급했다. 칼바람이 쌩쌩 부는 요즘 날씨에 문짝도 없는 허름한 창고에다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는 박스를 얻어다가 간이 집을 만들고 박스 주변엔 천막을 둘렀다. 헌 옷도 바닥에 깔아주고 두툼한 이불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문짝을 대신해 봉고차를 출입구 주변에 세워 바람을 막아줬다. 하루 세 끼 꼬박 음식을 갖다 주고 새끼를 쓰다듬어 주니 백구는 젖도 잘 물리고 조씨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좋아했다.

백구가 음식점 주변을 서성거릴 때는 올 봄이다. 조씨는 옆집에서 흰 개를 키우고 있어 처음에는 옆집 개로 생각했다고 한다. 현관까지 들어올 때도 있었지만 옆집 개가 놀러오는 것으로 알고 무관심했던 것.

▲ 하루 3끼 먹이를 주며 정성껏 백구 가족을 돌보는 조윤주씨.
ⓒ 최연종
“어느 날부터 창고 주변에서 비닐 등 쓰레기를 물어 나르는 걸 보았습니다. 쓰레기 더미 속에 새끼를 낳으려고 나름대로 출산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집 없는 개인 줄 알았으면 진즉 돌봐주었을 텐데….”

그는 새끼를 낳는 걸 보고서야 집 없는 개로 알았다며 처음부터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손님들이 2006년 새해는 개띠 해라며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덕담을 할 때 왠지 기분이 으쓱해지는 조윤주씨.

“남은 음식으로 어미와 강아지를 정성껏 돌볼 생각입니다. 조만간 멋있는 개집도 만들어주고요. 배고픔과 추위 속에도 새끼를 사랑하는 어미 개를 보며 많은 걸 느꼈습니다. 하찮은 미물인 동물도 그런데 우리는 더 잘 해야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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