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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간척지 내 농로 가에 서있는 방향표지판에 나있는 탄흔
천수만 간척지 내 농로 가에 서있는 방향표지판에 나있는 탄흔 ⓒ 안서순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지난 것처럼 서있는 방향 간판마다 총알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철새도래지인 천수만 간월호(충남 서산시 부석면) 옆에 탐조객들을 위해 짚을 엮어 임시로 지어놓은 첫 번째 철새 관측소(간월도로부터 6km)가 자리한 곳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 서있는 가로 50cm, 세로 20여cm 정도 크기의 작은 철제 방향판에는 10여 발이 넘는 총알이 관통한 자국이 나있다.

논을 따라 길이 나있고 그 길을 따라 십자로 등지에 서있는 수십 개의 이 작은 방향 판들은 적게는 3-5개, 많게는 10개가 넘는 총알구멍이 뚫린 채 서있다. 밀렵꾼들이 철새사냥에 앞서 총의 영점 조정을 위해 마구 쏘아댄 자국이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천수만 철새도래지'. 그 덕에 철새들은 하루도 편치 못하다. 대낮에도 엽총을 들고 사냥개까지 대동한 밀렵꾼들이 출몰해 밀렵감시원이 빤히 보고 있는데도 총질을 해댄다.

천수만 내 농로가의 방향표지판은 총알구멍으로 성한 게 별로 없다.
천수만 내 농로가의 방향표지판은 총알구멍으로 성한 게 별로 없다. ⓒ 안서순
15일 오전 11시 서산시 장동 현대간척지 출입로를 지키고 있던 철새 밀렵감시원 박모(54)씨는 "지난 11일 오후 3시께 감시단 2명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엽총 2발을 발사해 차를 타고 쫒아가자 그대로 달아났다"며 "대낮에 그것도 감시단이 지키고 있는데도 총질을 해대니 우리가 철수하는 저녁시간은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감시단원은 논바닥에서 엽총탄피와 덫이 심심찮게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철새도래지가 철새 살육장으로 변하고 있다. 서산태안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으로 일하면서 동물병원을 하고 있는 김신환(53)씨는 '천수만 철새 지킴이'로 자타가 공인하는 환경, 철새 전문가다. 김씨는 전문가답게 천수만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훤히 꿰뚫고 있다.

"여기서 참혹하게 죽을 줄 알았다면 3000㎞ 넘게 날아 왔겠습니까."

김씨는 총상을 입고 치료 중 죽어 병원 냉장고에 보관 중인 '혹부리 오리'를 내어 보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이 새는 작아 먹으려고 총을 쏜 것 같지는 안거든요, 재미삼아 쏜 것이 확실해요, 얼마나 무지한 사람입니까."

새의 가슴에는 공기총알 2개가 지난 자리에 구멍이 뚫린 채 피가 검붉게 엉겨 붙어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천수만 순찰'을 나가는데 그때마다 부상당한(대부분 총에 맞은) 철새가 발견된다 말했다. 지난 1월에는 죽은 고니가 병원에 실려 왔는데 엽총 1발과 공기총 2발을 맞았더라고 했다.

2개의 공기 총알이 관통해 죽은 혹부리 오리
2개의 공기 총알이 관통해 죽은 혹부리 오리 ⓒ 안서순
"천수만이 세계적 철새도래지라고 한다면 그만큼 철저한 보호가 필요한데 현재로는 거의 무방비거든요."

김씨는 "주로 민간인들로 꾸려진 '밀렵감시단'이 있어 그마나 지켜지고 있는데 철새 도래지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철새보호'가 이뤄져야 합니다"라고 주문했다.

세계적 철새도래지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래도 예년에 비해 밀렵꾼들의 극성이 덜한 것은 올 가을 세계적으로 유행한 '조류독감' 덕이라고 한다. 조류독감에 감염될 것을 우려해 드나드는 밀렵꾼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자가 '천수만 밀렵 극성'이라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간 날은 그날 오전까지 눈이 내려 길이 비좁은데다 미끄러운데도 불구하고 좁은 농로 길은 수상쩍은 차바퀴 자국으로 반질거렸다.

농사철도 지난 농로에 수상쩍은 자동차 바퀴가 내린 눈을 다져놓았다.
농사철도 지난 농로에 수상쩍은 자동차 바퀴가 내린 눈을 다져놓았다. ⓒ 안서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1984년 물막이 공사 이후 천수만 간척지에 도래한 철새는 291종으로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기록된 450여종의 절반이 넘는 조류가 한 번쯤은 다녀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지난 2000년을 고비로 최근 6년간 철새 개체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의 이평주 사무국장은 "간월, 부남 두 담수호의 수질악화에 따른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현대가 일괄적으로 영농을 할 때는 낙곡도 많고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서식지가 자연스럽게 보호되고 밀렵꾼들의 출입도 어려웠으나 2002년 일반에 분양한 이후부터는 누구라도 출입제한을 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어 서식지 보호가 안되는 데다 밀렵꾼까지 들끓어 철새가 마음 놓고 쉬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여 스트레스를 받게 해 서식지를 타의적으로 떠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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