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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여학생 정정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념 열쇠고리와 전통차를 내밀며 고마움을 표한다. 깍쟁이 조위 역시 예쁜 사랑의 편지를 써서 나를 감동시켰다.
가르치는 게 직업인 나로서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고맙다며 찾아오는 이들의 감사 표시가 내게는 과분할 뿐이다. 종강했다고 교수에게 인사하러 오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요즈음, 이들 유학생들이 보여주는 끈끈한 사랑은 정겹기만 하다. '사제간의 정'이라는 고풍스러운(?) 말도 새삼스레 떠오른다.
이들은 이미 성인이지만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그 마음은 마치 어린 아이와 같다. 아이들처럼 순수하다. 자기 나라에서 일 년 남짓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들어온 이들은 처음의 어눌했던 발음이나 억양이 많이 좋아졌고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 역시 살이 붙어 그런 대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의 이런 모습들은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한다. 과장되게 말한다면 맹자의 군자삼락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학생들과 이렇게 돈독하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강의 시간에 수업 외에 다양한 활동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일기도 쓰게 했다. 그것이 학생들과 나를 친구로 만들어준 것 같다. 학생들은 일기쓰기를 통해 그들의 잘못된 한국어 표현을 깨닫게 되고 속마음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일기 말미에 써준 교사의 '한마디'를 읽으며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 11월에 학생들은 전주에서 열린 '김장 축제'를 체험하고 돌아왔다. 그 때의 경험을 적은 글이다.
오늘 우리 중국 유학생 같이 전주에 갔어요. 날씨가 맑았지만 너무 추웠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기분이 너무 즐거웠어요. 우리는 친구와 같이 먼저 배추김치 만들었어요. 나는 앞치마 입었어요. 장갑도 입었어요. 만들기 시작합시다. 나는 고추 칠 했어요. 매 일 편잎 고추 칠했어요. 비누를 칠하는 것 같아요. 내 생각에 이건 너무 쉬웠어요.
그 다음에 우리는 공연을 봤어요. 왕궁 경호 군대 같아요. 점심은 학교 식당보다 더 맛있어요. 오후에 우리는 자유활동을 했어요. 네 시간 후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어요. 친구와 같이 기분이 좋았어요. (조위)
오늘은 우리 중국 유학생들이 전주에 갔어요. 좋은 날씨지만 너무 추워요. 그렇지만 전주에 가는 버스 안에 난방이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상쾌했어요. 전주에 고대의 건물이 많아요. 문화 흔적이 농후해요. 경치는 중국과 조금 비슷해요. 오전에 우리는 김장 체험을 했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김치 담그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먼저 배추를 반으로 갈라서 소금물에 담가요. 끝난 후에 우리는 김치를 가져올 수 있었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오후에 자유시간이 있어 친구와 같이 전주 시내를 산책했어요. 많이 한국 전통 선물 있었지만 너무 비싸요. 오후 네시에 전주에서 돌아왔어요. 좋은 하루였어요. (가정)
이미 전문가(?)가 절여놓은 배추에 역시 장인의 손맛으로 맛있게 만들어진 양념을 배추 한 잎 한 잎에 바르는 게 김장이라고 우습게 생각한 이들에게 나는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김치 담그는 일은 쉽지 않아요. 과정이 단순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아직도 맛있는 김치를 잘 못 담가요. 한국 사람인데 정말 큰일이죠? ^^
자신의 관심 분야를 재미있게 묘사한 일기도 눈에 띈다. 미국 NBA의 휴스턴 로켓츠팀의 일정에 맞춰 농구를 보고 오느라 수업 시간에 자주 하품을 하는 화준이의 일기도 재미있다.
NBA경기 봤어요. 11월부터 NBA 경기 시작됐어요. 저는 농구를 너무 좋아해요. 저는 Houston Rockets팀 좋아해요. 중국 선수 Yao Ming때문에 저는 농구를 알았어요. 경기는 Houston Rockets vs. Kings입니다. Yao Ming은 너무 잘 했어요. Houston Rockets가 이겼어요. 경기는 너무 멋졌어요. 금년 Rockets 팀 너무 강대해요. Yao Ming은 NBA에서 세 년을 지냈어요. 그래서 경험이 너무 있어요. 올해 Yao Ming은 슈퍼스타입니다. (감화준)
선생님도 야오밍 때문에 미국 NBA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화준이가 농구 보느라고 시간을 많이 뺏겨 학교에 와서 졸고 있으면 선생님 마음이 아파요. 적당히 보세요!
화준이의 일기를 보고 있으니 박찬호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하여 승승장구할 때 뿌듯한 애국심으로 박찬호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던 때가 생각났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집에 갈 생각에 마음이 들뜬 아이들의 흥분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 친구와 같이 슈퍼마켓에 갔어요. 최후 시험이 코앞에 닥쳤어요. 시험 후에 집에 갈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선물을 살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 선물을 살 거예요. 그렇지만 어떤 선물을 살지 생각이 없어요. 너무 어려워요.
우리는 전체 슈퍼마켓을 돌아 다녔어요. 아버지는 선물 술과 담배를 샀어요. 어머니 화장품 샀어요. 언니와 형부도 화장품 샀어요. 두 조카들은 양말, 모자, 신발 샀어요. 그리고 우리 중국 친구들은 선물 샀어요. 박하사탕, 초콜릿, 커피설탕, 초코파이 해태와 보리차를 샀어요.
선물 많이 사고 집에 가져갈 거예요. 오늘 돈 많이 사용했어요. 그렇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조위)
행복한 조위, 선물 보따리가 가득해서 마치 '산타클로스 조위' 같아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초등학생의 일기 검사에 대해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위헌결정을 내린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일기쓰기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쓰기'를 연습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다. 게다가 자신만의 은밀한 고민과 궁금증을 털어놓기도 하고, 한국어에 대한 질문도 하게 되니 일기장은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귀한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끈끈한 교류를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방학이 되어 유학생들은 모두 떠났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적인 교감은 앞으로도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서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장에도 이런 끈끈한 만남과 사제간의 인격적인 교류가 더욱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