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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였다. 미술 시간에 하늘색 크레파스를 잃어버린 어떤 친구가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엉엉 울어서 놀란 적이 있었다. 하늘색이 없으니 하늘을 칠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만 그땐 정말 큰일이었다. 나무색이나 '살색'과 같은 크레파스가 없으면 나무도 사람도 그릴 수가 없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의 하늘은 하얗거나 잿빛을 띠고, 노을에 물든 저녁 하늘은 붉게 빛나며, 해가 기울수록 조금씩 짙어지는 하늘은 어느새 짙은 남빛의 밤하늘이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하늘은 무슨 색인가?"라는 질문엔 당연하다는 듯이 파란색을 떠올리지 않았는가.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도 되는 양.

다양한 색을 지닌 하늘은 하나만이 옳다는 논리 속에 가려졌다. 적어도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려면 빨간 하늘, 노란 하늘도 그리게 해줘야 한다는 교육론이 나오고, 살색 크레파스가 인종 차별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될 때까지는. 어쩌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지금 우리 사회의 태도도 이와 같은 건 아닐까.

성적 소수자란 누구인가

근래 들어 '성적 소수자(性的少數者)'란 용어가 점차 널리 쓰이는 추세이긴 하지만, 누구나 그 의미를 쉽게 알아들을 만한 일상용어는 아니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는 일이 가장 흔한데, 2000년에 연예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 2001년에 하리수의 등장으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소외하고 차별해온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와 함께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인권도 이주노동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소수자의 범주로 포함시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성적 소수자는 오로지 이성애만이 정상이고 옳으며 남성과 여성 각각의 성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믿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별받고 차별받는 존재가 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동성애는 금기와 터부, 그리고 비정상적이란 낙인이 찍혀있었다. 동성애자는 범죄자가 되었다가, 정신병자로 되었다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란 오명까지 덮어써야 했다. 심지어 동성애는 성적으로 타락한 서구 사회의 산물이 잘못 수입되어 한국 사람들을 흉측하게 물들인 것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동성간의 사랑이나 성행위는 인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있었다.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도 동성간의 성행위가 묘사되어 있고, 고대 그리스처럼 남성간의 사랑이 더 칭송받던 때도 있었다. 또한 플라톤은 <향연>이란 저서에서 동성애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랑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역사를 보아도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일'은 지금과 다른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소매를 자른다는 뜻의 '단수(斷袖)'는 중국에서 동성애를 뜻하는 단어로 이 말은 한(漢) 나라의 황제이던 애제(哀帝)가 동현이라는 그의 애인과 함께 낮잠을 자다가 먼저 일어났으나 동현이 자신의 소맷자락을 깔고 있음을 알고, 그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매를 자르고 일어났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도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보면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및 멜라네시아 문화권에서는 여성끼리 혹은 남성끼리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친밀함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성적 소수자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동성애자는 그동안 안개 속에 가려진 존재였다. 그 실체가 사회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제 10여 년에 불과하며, 언론에서 '호모'나 '변태'와 같은 비하어가 아닌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이런 짧은 역사에 비해 한국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변화와 발전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모임인 '초동회'가 1993년 겨울에 만들어졌고, 1994년에 각각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여성동성애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로 분리, 발족하였다. 1995년부터 연세대, 서울대 등 대학을 중심으로 동성애자 모임이 결성되기 시작했고 1996년엔 익명성과 빠른 정보 공유라는 장점을 업고 PC통신 동성애자 모임이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이 세상에 동성애자는 나 혼자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던 이들에게 단지 컴퓨터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다른 동성애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실로 엄청난 경험이었다. 동성애에 대한 적대적 풍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로서의 자긍심이나 게이, 레즈비언바에 대한 정보, 심지어 다른 동성애자들의 연애담을 듣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PC통신은 그것들을 가능하게 했고, 그 힘은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양적 성장을 불러왔다. 1999년 이후로 지금까지 인터넷을 기반으로 그야말로 폭발적인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한편, 인권운동은 1995년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 1998년에는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 등 전국적 규모로 동성애자 모임의 상설 협의체를 결성해 대사회적 발언권을 높였고, 시민사회 단체와의 연대 활동을 통해 2001년엔 '국가인권위원회법'의 19가지 차별적 항목 가운데 하나로 '성적 지향'이 포함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문화운동도 활발했다. 영화를 통한 동성애자들의 자긍심 고취와 이성애자와의 소통을 꿈꾸는 '서울퀴어영화제', 한국 최초의 동성애 전문 잡지로 서점 유통을 시도한 <버디>의 발간이 있었고, <니아까> <보릿자루>와 같은 무가지도 제작, 배포되었다. 또한 2000년부터 해마다 거리 행진 프라이드 퍼레이드 과 전시회, 영화제, 토론회 등을 엮는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임을 당당히 밝히고 활동하는 연예인들도 나오게 되었고, 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동성애자를 규제와 치료, 선도와 회개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에겐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동성애를 도덕과 윤리의 차원으로 규정하고 단죄하고 싶어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문제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차별과 억압을 넘어

동성애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차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가진 혐오감에 의한 심리적·정신적 고통이다.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매질이나 감금과 같은 폭력적인 냉대나 정신 치료 강요 등에 시달릴 수 있다. 또한 친구나 동료들에게 왕따나 멸시 등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은 거짓된 이중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 사랑하고 수년 이상을 함께 정서적·경제적 공유 관계를 맺어 인생의 반려자로 함께 살아가는 커플이라고 해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주택자금 대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가족수당, 결혼기념일 휴가, 본인 및 배우자 경조금, 의료보험 적용, 출산휴가, 연말정산시 배우자 공제 등도 불가능하며, 위급한 순간에 수술동의서를 쓸 수 있는 보호자 자격이나, 유산 상속, 재산분할권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사회적·법적 권리의 부재는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으로서 응당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당하는 차별이 아닐 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동성애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과 비합리적인 혐오와 공포를 호모포비아(Homophobia)라고 명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동성애란 말만 들어도 왠지 소름이 끼치고 역겹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성애자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 감정이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러한 호모포비아는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때리거나 심지어 죽이는 '혐오범죄(Hate Crime)'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동성애자들까지 국력 강화를 명분으로 수용소에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고 목숨을 빼앗은 역사적 사건이다. 2002년에 미국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로 말미암아 일어난 범죄의 희생자가 1558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편견이 빚어내는 비극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심각하다.

한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엑스존(http://exzone.com)'과 '청소년보호법'이었다.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의 운영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의해 청소년 유해 사이트로 결정·공고가 난 것을 뒤늦게 알고 2002년 1월 행정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의 과정에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내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에 '동성애'가 포함된 것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음이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2004년 4월에 마침내 시행령에서 차별적인 동성애란 문구는 삭제되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국어사전 및 영한·한영사전의 차별적 표현과 동성애 사이트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관행이 사라지기도 했다.

학교와 가정, 텔레비전 드라마와 소설들, 모든 것이 이성애만을 보여 주고 가르칠 뿐 동성애에 대해서는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동성 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혐오하고 비관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 성적 저하와 가출, 방황 등을 겪어도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마침내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비극이며 곧 사회적 타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지갯빛을 닮은 세상을 위해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뜻이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는 나열식 인정은 아닐 것이다. 가령,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이 있을 수 있고, 이성애자의 시각에서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역으로 장애인이 '그래, 세상엔 장애가 없는 사람도 있어'라고 배려하고 동성애자가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이해해 주자'고 존중해 주는 것으로 대치시켰을 때는 어떤가. 코미디가 되어 버린다.

동성애는 이성애의 반대말이 아니다. 동성애이건 이성애이건 '사랑하는 대상의 성별을 표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과연 있을까.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일컬을 뿐이니 오히려 '비슷한 말'이라고 해야 더 적절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다양성과 자유의 목을 졸라 여기저기에 족쇄를 채워서 '다르다'를 '틀렸다'로 만들고, '차이'를 '차별'로 키우고 모든 걸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어 힘의 서열을 매긴다. 이런 현실에서 자신이 익숙하게 보아 온 것만을 진실이라 믿고 그 바깥으로 눈 돌리는 것조차 거부한다면 우리는 진리에 다가설 수 없고 정의로워질 수도 없으며 더 현명해지지도 못할 것이다.

이젠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자. 일곱 가지 색깔이 어울린 무지개처럼 다양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우리의 삶 속으로 옮기고 싶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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