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목련꽃 브라자' 전문
참 앙증맞고 예쁘고 재미있는 시편이다. 시의 종결부에 "눈부신/하냥 눈부신/저----"이라는 구문에 가득 담긴 딸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활자 밖으로 쏟아져 나올 듯하지 않은가. 나는 딸이 없어서 이런 시편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내년 여름 휴가 때 섬진강변에서 복효근 시인을 만나는 날 어쩌면 위 시의 주인공도 만날지도 모르겠다.
시장 골목에 양은 쟁반 층층이 포개어 밥을 이고 배달가는 아줌마의 모습을 그린 '쟁반탑'에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화자의 깊고 따스한 시선이 배어있음을 우리는 단번에 읽을 수가 있다.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합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 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
이 시는 양은 쟁반에 층층이 쌓인 밥상을 탑이라고 바라본 시인의 작은 발견에서 비롯되었다. 탑이, 쟁반탑이 춤추듯 걸어간다고. 이 이상한 탑은 양은 쟁반이 옥개석으로, 스텐 그릇은 사리합으로, 또 하얀 밥알이 사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쟁반탑을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는 가난한 시장 사람들이 다 부처만 같다고 한 어구에 시인의 세상과 타자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이웃을 끌어안는 복효근 시인의 몸을 나는 차라리 탑이라고 불러야겠다. 우리들의 힘겨운 삶 속에서 적잖게 위안을 주는 탑이라고. 지면상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위 시에는 삶의 진리, 도(道)가 놓여있다. 독자여, 다시 읽어보시라. 보이지 않는가, 삶의 참 진리가.
이렇듯 복효근의 시는 사물(자연)과 일상의 우리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사랑과 삶의 이법(理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의 첫 시집부터 다섯 번째 시집 <목련꽃 브라자>에까지 줄곧 견지해온 바다. 불혹을 넘어 사십대 중반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는 그것이 훨씬 깊어져 있음을 나는 본다.
잘 빚어진 찻잔에 그어진 실금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묘파해낸 '틈, 사이'라는 시편과 어머니의 검버섯을 "땀과 눈물과 피가 썩어서/썩고 삭아서 나는/그런 향기"의 "팔십년을 싹을 틔워/비로소 피는 꽃"이라 말하는 '검은꽃'이라는 시편에서 나는 그걸 확인한다.
"어디 별뿐만이겠느냐. 바로 옆에 있는 꽃에게로 가기 위해서도 죽음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라는 '自序'의 첫 문장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시집에서는 '생(生)의 이면(裏面)'을 바라본 시인의 눈빛이 적잖게 드러난다. 그만큼 그의 서정이 높고 깊고 그윽해졌다는 말이다. 이런 죽음을 안고 있는 깊은 시선으로 '즐거운 나방이' '어떤 제다법(製茶法)' '물꽃' '연어의 나이테' 같은 수작(秀作)이 나왔을 것이다. 시집 뒤쪽에 '해설'을 쓴 유성호는 이런 그의 시를 "서정의 심화를 통한 근원적 생의 형식 탐구"라 명명했다.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덧붙이는 글 | 복효근 시집 [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