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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성폭력, 성매매, 호주제 폐지 등 여성문제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 아내가 자기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여성 관객모독'은 "우리는 여성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페미니즘이나 여권신장 등 여성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 여성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1977년 첫 공연 이래 과감한 형식 파괴와 통렬한 사회풍자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언어연극 <관객모독>의 기국서 연출가는 이런 생각으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형태를 바꿔보았다. <여성 관객모독>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세계가 점점 파워풀해지고 있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래도 아직은 여성문제가 막연하네요. 이제 실험을 시작했으니 여성의 시각을 보다 정확히 잡아내서 텍스트를 수정해나갈 계획입니다."

관객모독 여성 버전이 기존 연극 관객모독과 다른 점은 남자배우 3명과 여자배우 1명이 출연했던 것을 반대로 바꿨고, 극중 대사에 여성 소재를 추가했다. 무엇보다 여성관객들이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기국서 연출가는 30년 넘는 동안 관객모독을 연출하면서 "관객모독이 세련되어지고 의미화 되고 있다"고 말한다. 공연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이 작품에 다시 반영돼 변화하면서 세련되어지고, 시대에 맞는 대사로 변하면서 전달 의미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모독 여성버전도 세련되어지는 과정 중 하나다. 시대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가 언제나 '남성'의 문제로만 조명되어져 왔기 때문에 이제 '여성'의 이야기를 할 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여성 관객모독을 보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연극은 관객에게 하나의 텍스트잖아요. 관객들이 공감을 하고 자유롭게 할 말이 생기면 그걸로 충분히 하나의 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먼타임스
여성 관객모독에 이어 기국서 연출가는 1992년과 2004년, 두 번에 거쳐 무대에 올렸던 사뮈엘 베케트 작 '행복한 나날들'을 다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1961년 뉴욕에서 초연돼 연극역사를 통틀어 생의 혼란과 비극의 중심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은 '행복한 나날들’을 통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여러 갈등 속에서 고뇌하고 삶과 죽음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는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느끼는 문제잖아요. 연극에서도 대부분 남성들의 고뇌와 고민만 그려진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전 '행복한 나날들'을 머지않아 다시 무대에 올리려고 합니다."

이렇듯 그는 같은 작품을 수정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자신을 스스로 '쟁이'라고 표현한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싶은 연출가로서의 욕망과 한 번 만들어놓은 것을 다시 완벽하게 재현하고 싶은 '쟁이'로서의 욕심을 모두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1976년 '극단 76'에 입단하여 현재 극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기국서 연출가는 1970년대 <관객모독> <마지막 테이프>, 1980년대 <기국서의 햄릿>을 비롯한 햄릿시리즈와 <바람 앞에 등을 들고>, 1990년대 <지피족> <미친 리어>, 2000년대 <길 떠나는 가족> <나 하늘로 돌아가리> 등 수많은 작품을 연출하면서 역량 있는 중견 연출가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일 막 오른 <여성관객모독>은 오는 2006년 1월 8일까지 창조콘서트 홀에서 공연 중이다. 문의 02-726-3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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