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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는 길에  바라본 오서산(790M), 충청남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바라본 오서산(790M), 충청남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 권용숙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직전 모습입니다.  해야 떠라!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직전 모습입니다. 해야 떠라! ⓒ 권용숙
대설주의보가 내린 한겨울 노총각 내 동생이 드디어 장가를 가는 날입니다. 새벽부터 아버지는 빨리 일어나라고 비상을 걸었습니다. 오랫만에 엄마와 부엌에서 아침밥을 같이 거들고 있었는데, 마음은 오서산 산봉우리에 가 있습니다. 어릴 적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한 번도 멋지다고 말해주지 못한, 그야말로 일출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엄마는 일을 도와준다고 하면서 들락날락하는 큰딸이 언제나 철이 들려나 하면서도 추운데 왜 자꾸 밖에 나가냐고 걱정을 합니다. 도대체 언제 해가 뜨는지 쳐다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왜 이리 해가 늦게 뜨는 거냐구 엄마한테 밥 하다 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어머니 앞에선 늘 철없는 딸이 되나 봅니다.

산 주위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갈 때 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명색이 이 집안의 큰딸인데, 오랫만에 함께 하는 아침식사에 빠질 수가 없어 밥을 후다닥 먹고 다시 밖으로 나와 오서산을 바라보니 그 새를 못참고 햇님이 산봉우리 바로 위로 떠올라 있었습니다. 여전히 내 집 앞에서 바라다본 오서산에서 붉은 해가 둥실 떠오르고 있었고, 나는 처음으로 오서산 산등성 위로 떠오른 햇님을 멋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구름이 없는 날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일출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름이 없는 날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일출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권용숙
아침마다 오서산 위에 둥실 떠오르는 해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마을 한가운데, 느티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가 고향을 찾든지 안 찾든지 여전히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느티나무에선 오래 전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커다란 스피커를 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의 이장을 이십년도 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느티나무에선 가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아~ 마이크 시험중 후후~" 마을회의 알리는소리, 개똥이네 아부지 전화 받으라는 소리, 뿐만 아니라 가끔 이른 새벽엔 노랫소리도 들렸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

집에 가는 길에 느티나무를 만져  보았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느티나무를 만져 보았습니다. ⓒ 권용숙

마을 이장님 오덕근씨, 둘째여동생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마을 이장님 오덕근씨, 둘째여동생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 권용숙
그런 느티나무 밑에다 사람들은 빨간벽돌로 마을회관을 짓고 지붕 위에 커다란 스피커를 세 개나 달아놓았습니다. 오늘(18일) 갑자기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며 방송 소리가 온동네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아아~ 포항 부락 방송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구 이장님댁 아들 결혼식이 광천 현대예식장에서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고, 회관 앞에 어린이집 차를 대기 하오니 열한 시 반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젊은 이장님은 방송실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원고도 없이 즉석 방송을 하였습니다. 눈길 미끄러지지 말고 조심하라는 즉석 멘트가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

적어도 이백 년은 넘었을 것 같은 느티나무는 우리 마을의 소소한 일들을 이렇듯 모두 다 듣고 나이테가 하나둘 늘었겠지요. 마을의 모든 대소사를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우리 마을에서 제일 잘났다는 할아버지도, 청진에 돈 벌러 갔다 끝내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를 돌아가시기까지 기다리시던 할머니의 눈물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방송중..느티나무도  마을 사람들도 방송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송중..느티나무도 마을 사람들도 방송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습니다. ⓒ 권용숙
그리고 내 둘째 동생은 잊고 싶겠지만 오늘 장가간 2대 독자를 업고 마실가서 내려놓고, 친구들과 공기놀음에 빠진 사이 뻘뻘 기어 들에 거름하려고 모아놓은 똥통에 빠졌던 동생을 건져내 느티나무 밑 샘터에서 수도없이 물을 뿌려 씻겨낸 뒤 다시 업고온 사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11월 아버지 생신때 느티나무 모습입니다.
11월 아버지 생신때 느티나무 모습입니다. ⓒ 권용숙
지난 18일, 똥통에 빠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어무이, 아버지가 딸 셋 주르륵 낳고 쫓겨날까봐 마흔이 넘어서 낳은 막내가 장가를 갔습니다. 여전히 며칠째 눈발은 휘날리며 대설주의보까지 내려,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결혼식을 하게 돼 온가족 애간장을 태운 동생의 결혼.

우리 마을에서 늘 변함없이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변함없는 사랑하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서산 위에 둥실 떠오른 햇살만큼만 밝고 따뜻하게 살아가길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장님, 방송하는 모습 참 멋지셨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 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겠습니다. 내고향 이름은 갯목마을입니다.

과방,  예식 하루전날 집에서 잔치를 미리 한번 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음식을해서 접시에 담아놓고 " 한상이요" 하면 음식을 한상 차려 내줬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신이 났습니다.
과방, 예식 하루전날 집에서 잔치를 미리 한번 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음식을해서 접시에 담아놓고 " 한상이요" 하면 음식을 한상 차려 내줬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신이 났습니다. ⓒ 권용숙

마을 사람들의 쉼터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쉼터입니다. ⓒ 권용숙

덧붙이는 글 |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고향풍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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