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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한 당시의 로버트 김씨.
ⓒ 김범태
지난달 10년만의 조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버트 김(65. 한국명 김채곤)씨가 고국의 동포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내왔다.

로버트 김씨는 지난 21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robertkim.or.kr)인 '로버트 김의 편지(letter from Robert Kim)'를 통해 그간 자신을 따뜻하게 성원해 준 한국의 국민들에게 "이제는 앞만 바라보고 살려한다"며 "모든 분들이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가 출소 후 자유인으로 맞게 되는 첫 크리스마스. 때문에 이 편지에는 그가 국가기밀누설혐의로 구속된 이후 가족과 떨어져 재소자의 신분으로 지내야 했던 여덟 번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애잔하고 절절하게 묻어있다.

김씨는 편지에서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려고 집에 전화를 걸면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가족들의 포크소리와 아버지 없이 성탄절을 보내야 하는 자녀들의 슬픈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면서 "가족 없는 크리스마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회고했다.

또 수감 시절에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힘들어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캐롤을 한소절도 듣기 싫었으며, 애써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하루가 지나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특식을 얻어먹기 위해 식당문 밖에서 추위에 떨며 줄을 서있을 필요도, 점호를 받거나 싸구려 과자봉투를 받고 감출 필요도 없고,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할 필요도 없다"고 술회하며 가족과 함께 맞게 된 '첫' 성탄절을 감격해 했다.

또 "악몽같은 펜실바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는 내 기억에서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며 "내 앞길에 좋은 일만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는 말로 자신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했다.

▲ 로버트 김의 편지 사이트 모습.
ⓒ 김범태
한편, 로버트 김씨는 앞서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물자절약과 사교육비 절감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며 기부문화 정착을 강조하기도 했다.

로버트 김씨는 이 글에서 "소비는 미덕이 아니"라며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나'만을 위해 사는 것 같아 애석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 "자녀의 사교육비 예산이 가계 부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가정의 경제사정 때문에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가라고 자랑하지만, 이러한 기부문화가 발을 못 붙인다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성원해 준 고국의 국민들에게 매주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펼쳐 놓으며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시작된 '로버트 김의 편지'는 개설 3주 만에 회원 1만 명을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김씨와 한국 국민들과 교감을 나누는 통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로버트 김씨가 보내온 성탄편지

▲ 로버트 김씨.
ⓒ백한승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내가 출소 후 자유인으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가 된다.

나는 가족과 떨어져 여덟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것도 자유가 없는 구치소에서 한번, 그리고 교도소로 들어간 후 일곱 번이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수감자들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그날 점심에는 특식이 나오고 먹고 나면 내무반으로 들어가 특별 점호를 한다. 그때는 다들 눈치를 챈다. 점호를 하면서 과자봉투를 하나씩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 봉투를 열어보면 사회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싸구려 사탕들도 들어있다. 아마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조차 누군가 가져갈세라 락커에 넣어 자물쇠로 잠궈 두고 아껴서 먹는다.

이 ‘과자봉투점호’가 끝나면 어떤 수감자들은 방마다 돌아다니며 바꿔먹자고 한다. 교환시간이 지나면 교도소 안은 잠시 조용해진다. 다들 방에 들어가서 과자를 먹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과 얘기하기 싫어서 대꾸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는다.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 우리 가족은 늘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그러니 그런 날에는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일찍 방에 들어와서 귀를 막고 담요를 둘러쓰고 일찍 잠을 청하곤 했다.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한소절도 듣기가 싫었다. 크리스마스라는 걸 생각하는 순간 재소자인 나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고 힘들어 애써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빨리 오늘이 지나가라고 잠을 청하곤 했다.

매끼마다 식당 문 앞에 줄을 서서 배식순서를 기다리지만, 특히 추운 크리스마스에 한 끼 해결하기 위해 식당문 밖에서 기다리는 신세를 생각하면 눈물을 글썽거리게 된다. 그리고 이때는 산중턱에 있는 교도소 주변이 몸시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다른 죄수들처럼 스키모자 같은 걸 푹 눌러 쓰고 서있는다. 추위 때문에 옆 사람하고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게 보통이다.

이런 침묵의 시간 때문에 집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더욱 난다. 왜 내가 이런 곳에 와서 식어 빠진 ‘특식’ 배급을 받기 위해 추위에 웅크리고 서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이내 눈가가 젖어온다. 그리고 세어 본다. 이제 몇 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는지를.

가족 없는 크리스마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크리스마스날 함께 식탁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가족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춥기도 하고, 면회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에게 면회 오지 말라고 부탁 한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에 맞춰 "Merry Christmas!"를 하려고 집에 전화를 걸면 아버지 없는 식탁에서 식사하는 가족들의 포크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이 소리가 또 나를 얼마나 가슴 아프게 하는지 모른다. 이런 소리를 들어본 지가 너무나 오래 되어 그립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슬픈 얼굴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여덟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아홉 번째 크리스마스는 보호관찰기간의 첫 해였기 때문에 집에서 조심스럽게 보냈다. 공연히 나갔다가 술 취한 사람들과 자동차 사고라도 나면 나는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보호관찰 기간도 끝나고,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특식을 얻어먹기 위해 식당문 밖에서 추위에 떨며 줄을 서있을 필요가 없다. 점호도 받을 필요 없고, 싸구려 과자봉투를 받을 필요도, 감출 필요도 없다.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가족이 곁에 있기 때문에 눈물을 글썽일 필요도 없다.

악몽 같은 펜실바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는 내 기억에서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제는 앞만 바라보고 살려고 한다. 내 앞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두손 모아 기도해 본다. 이것이 나 자신에게 주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Merry Christmas!
이 편지를 읽는 모든 분들이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로버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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