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바람을 피운단다. 그것도 '이번 주'에?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경쾌한 제목의 책이 주는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관음증적인 흥미도 있었고, '바람'이라는 문제가 가벼우면서도 한편 참신하게 해결될 것만 같은 예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서평들은 주로 '드라마틱'이나 '감동적'이라는 수식어구들을 달고 있었다. '어디 한 번 그 감동의 세계에 빠져보자' 했다. 더군다나 요즘은 기존과는 다른 제3의 문제해결방식들이 나오는 시대이니, 최소한 외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하지만 책을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안타깝게도… 지루해졌다. 외도는 여전히, '너무나도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한 사이트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 지식인'이나 '엠파스 지식검색' 쯤 되어 보이는)에 한 남자가 올린 상담요청글과 그에 대한 답변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자는 며칠 후에 아내가 외도 상대방을 호텔에서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여기에 네티즌들의 댓글이 두 주 동안 백여 개 이상 올라온다.
백여 개 이상의 댓글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참신하지 않았다. 다만 가벼울 따름이다. 질문자의 질문은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한계만큼 단편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질문자와 아내와 상대 남자에 대한 판단, 그리고 문제상황에 대한 판단은 그 단편적인 정보와 답변자의 평소 생각에 기대어 내려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답변자들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남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워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그렇지 않았다.
접근하기 쉽고 익명화된, 그래서 욕망을 분출하기 쉬운 공간인 인터넷 게시판에서 조심스러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들은 아내의 외도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배신이며, 상대 남성은 질문자의 아내를 '엔조이' 상대로 여길 뿐이고, 질문자는 착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이러한 전제 하에, '아내를 가둬두라', '휴대폰을 몰수하라',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게 하라', '그 상사를 한 대 후려치라'는 식의 격앙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중간중간 보이는 진중한 글들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 희미해진다.
이런 댓글들 속에서 오히려 눈길이 가는 것은 질문자의 태도다. 그는 어떤 내용의 글이든 상관없이 모든 댓글들에 일일이 답변을 하는데, 이 모든 글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본다. 다양한 의견들로 인해 그의 생각도 엎치락뒤치락하지만, 때로는 편향된 글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조금씩 상황을 정리해 나간다.
게시판의 무수한 답변들이 질문자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다만 질문자는 게시판에서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격려하는 글을 통해서 위안을 받았을 것이고, 그 위안은 어떤 식으로든 아내를 대하는 질문자의 태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처음부터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주변의 모든 이들은 그저 도울 뿐.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인터넷 문화 속에서 갖춰야 할 미덕이란 어쩌면,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