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급히 돌려 매표소로 올라 가다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도 사람들이 뵈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길 옆으로 빠져 찻집에 들렀단다. 마침 그 앞이라 눈을 이고 있는 산죽 사진을 찍고는 찻집에 들어갔는데, 거기 주인께서 따끈따끈한 우전을 내오셨다.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 퇴직하시고는 지리산에 터 잡은 지 꽤 오래되셨단다. 같이 간 친구들의 찻집에 대한 부러움을 뒤로 하고 목적지인 하동으로 달렸다.
지리산을 벗어나자 눈발이 희미해지다가 하동으로 접어드니 눈발이 이젠 거세진다. 사실 이번 여행은 악양 고소산성에서 섬진강과 악양 벌판을 마냥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 아닌 폭설로 악양 벌판에 있는 유명한 두 그루의 소나무만 먼 발치에서 눈에 담아왔다.
같이 간 일행이 모두 여자들이라 새하얀 세상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처럼 좋아라한다. 내가 사는 진주에는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다. 예전에 친구와 "진주는 항상 그 밖의 지방에 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 역시 진주는 '그 밖의 지방'이었다. 이런 진주에 사는 여자들이 눈이 오니 오죽했을까 싶다.
한 때 하동을 자주 다녀 간 적이 있다. 특히, 화개 10리 벚꽃길에 꽃이라도 만발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들르는 곳이기도 한데 나 역시 화개 10리 벚꽃을 사진에 많아 담았다. 지난 해에는 들르지 못했는데 올 봄 2년 만에 찾아간 벚꽃길은 예전 그대로였다. 벚꽃이 만발한 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를 더 갖고 싶다면 벚꽃이 수명을 다해갈 무렵 꽃비가 흩날리는 때 들르는 것도 좋다. 봄비에 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눈 내리는 오늘. 10리 벚나무길을 거북이 걸음으로 얼마간 가다 보니 쌍계사입구 주차장이다. 쌍계사는 가까운 데 있는데도 정말 오랜만에 찾았다. 예전에 사진을 막 찍기 시작할 무렵 쌍계사 아래 흐르는 물을 찍기도 했고, 풍경이며 절 뒤편에 난 엉겅퀴 꽃을 찍기도 했는데 겨울에 눈 쌓인 쌍계사는 대웅전이 공사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즈넉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쌍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학창시절 배운 바로는 범패음악에 관한 어렴풋한 기억이다. 쌍계사 경내에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있는데 바로 진감선사가 범패음악의 선구자다. 또 중국으로부터 차나무를 들여와 차 문화 발전에도 공헌을 한 선승이다. 진감선사는 화엄경의 유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화엄종의 포교방식과는 달리 범패를 통해 선 사상을 확대하였다. 신라말기 선종이 염불사상을 수용한 것도 범패가 가져온 결과라고 한다.
이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국보 제 4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당시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의 글씨로 유명하다. 지금 이 대공탑비는 많이 훼손되어 있는데 아쉬운 마음이다.
눈 내리는 쌍계사를 뒤로 하고 얼마 전 친구 박정헌의 산악강연에 갔다가 인사드린 <낮은 산이 낫다>로 최근 유명세를 치르고 계신 남난희씨가 화개골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만 드리고 무례함을 무릅쓰고 무작정 찾아갔다. 다행히 날이 어두워지니 차라도 빨리 한 잔하고 가라는 말에 길을 재촉했다.
한 10여 분을 걸었을까? 오르막길에 누군가 오고 있어서 보니 남난희씨의 아들 기범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얼마 전 남해에 축구캠프를 다녀왔고 겨울방학에는 아예 합숙훈련을 남해로 떠나는 모양이다. 지금 5학년이라는 기범이가 자랑을 하고 싶었던지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새하얗게 눈 쌓인 마당에 동그란 나무로 된 징검다리를 밟고 들어섰다. 남난희씨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손님을 접대하는 방은 옛날 정지(부엌)로 쓰던 곳이었다. 천정에는 몇 십 년에 걸쳐 그을러졌을 서까래들이 까무잡잡한 피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내린 눈을 생각하니 슬슬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직접 우려내 주시는 보이차를 들이키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얼핏 보면 여장부지만 집을 소담스럽게 꾸며놓은 것이 무척 흥미롭고 부러움마저 들었다.
방에 있는 소품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梅蘭竹菊'이라 새긴 서각작품이었다.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 누구의 작품인지 여쭸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글을 쓰신 분이 환갑이 되던 바로 그 날 아침에 생을 마감하셨다는 얘기는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정말 멋진 삶을 살다 가신 분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중국에서는 매난국죽이라 쓴다는 얘기도 들려주셨다. 그리고 매난죽국은 남난희씨의 남매들 이름이라는 말씀과 함께.
벽에 걸린 서각작품을 보면서 글씨체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인 김영태 선생의 그림과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주 오래 전 <음의 풍경화가들>이라는 김영태 선생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직접 그려 넣은 삽화들 같은 느낌이었다(김영태 선생의 일러스트는 모 출판사 시집에 시인들의 프로필 사진으로 대신하고 있다). 김영태 선생의 그림들은 정말 내게는 매력적이어서 단번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수다를 떠는 동안 6시가 되고 밖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얗게 내린 눈으로 길은 잘 보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친구들은 갑자기 맞닥뜨린 눈 얘기로 꽃을 피우며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라 한다. 더욱이 다들 한 번 만나 뵙고 싶어했던 남난희씨를 만났으니. 시골집에서 흙을 밟으며 황토로 지은 집에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라 그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오르지 못한 지리산행을 다음 기회로 미루었지만 오늘은 뜻하지 않은 즐거움으로 모두 행복한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 하동에는 벚꽃이피는 봄이오면 축제가 시작된다. 봄이면 하동읍을 지나서 구례 가는 국도변에는 벚꽃들이 춤을 춘다. 쌍계사 입구 화개 10리 벚꽃길은 더 장관이다.
또 하나 하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야생차 축제인데 해마다 5월 말경에 열린다. 이 축제에 참가하면 다양한 종류의 차도 마실 수 있고 심지어 인도 짜이도 맛볼 수 있었다.
하동에는 쌍계사 외에도 칠불사라는 아름다운 절이 있는데 꼭 방문하길 권한다.
이 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으며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http://www.knto.or.kr)에서 검색하면 더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