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26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헌법과 국제규약상 양심의 자유 보호 범위 내에 있음을 확인하며, 국회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가기관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정하는 권고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권위의 이번 발표는 특히 지난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위헌신청'을 기각하면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을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요지의 소수의견을 제기하고, 헌법재판소도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합헌' 판결에서 양심의 자유와 국가 안보라는 두 법익의 공존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나 다른 군인들과의 형평성, 혹은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특혜 시비 등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내부에서 표면화되고 있지만, 이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충분히 조율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이처럼 많은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 첫 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는 입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발표도 입법부가 조속히 판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는 국가기관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는 지난해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사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구속된 수감자는 1186명으로 늘어났으며, 국민적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 입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연간 6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수감되어야 하는 현실은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너무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남석 한양대 연구교수는 이와 관련 자신의 저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그린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수용에 따른 우리 사회의 최종 결론은 '이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인정한다면 어떤 형태로 인정할 것인가'로 귀결될 것이고, 이는 결국 정치적 과정을 통해 풀어가야 할 것"이라며 정치적 관점에서의 논쟁의 시급성과 입법부와 정치권의 활발한 의견개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 중 하나는 역시 '대체복무의 범위와 방식 및 심사기준'일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입법안은 대체복무 기간을 일반 사병 복무기간의 1.5배인 3년으로 규정하며, 내무반 방식의 집단생활을 하도록 발의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현행 복무기간보다 더 긴 기간과 어려운 분야에서 고된 일을 하더라도 사회의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보호에 필요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복무하길 원하고 있다.
이미 14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비군사 분야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같은 요구가 현실화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국회 국방위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무소방대나 교도행정복무 등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겠다. 또 '대체복무의 범위와 방식'을 놓고 별도의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강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공정히 판정할 별도의 심사기구 설치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은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엄격한 기준의 심사위원회를 만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면 병역거부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미 공론화된 '쿼터제'를 연구해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것이며, 병역거부자 인정 단계에서 병역의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거짓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해당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법적 수단도 방안으로 준비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병역법은 그간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의 경우 헌법상 기본 의무로 되어있는 병역의 의무와 사상·양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돼 양자를 적절히 조화·병존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징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지난 50년간의 상처를 씻고 즉각적으로 관련 법안의 입법에 힘써야 한다"고 촉구하는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 문제를 합리적이고 전향적으로 풀어가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