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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심리학>
<승자의 심리학>
"아, 정말 마약 같다니까."

<승자의 심리학>. 제목을 보고서 '자기 경영에 관한 책 하나 또 나왔을 뿐'이라고 머리는 생각했지만, 마음은 읽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나 보다. '부자 되는 법' '메모 잘 하는 법' 이런 문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니 '승자' 그것도 '승자의 심리학'이라는 문구는 매우 강렬하게 날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 강렬함은 점차 당혹함으로 변해갔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간디, 마오쩌둥, 링컨 등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들을 보는 순간, 나는 이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들려주는 승자가 되기 위한 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 초반 '후흑학'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머리는 점차 복잡해지고, 저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1911년 중국에서 이종오라는 자가 썼다는 <후흑학>이라는 책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바로 이 '후흑'이다. 한자로 '厚黑'으로 쓴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낯두껍고 검은 것'을 표현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낯짝도 두껍지'라는 말을 쓴다는 점, 어둠의 황제 같은 표현이 긍정적이지 않은 표현이라는 점만으로도 <후흑학>이라는 책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 <후흑학>이라는 책이 <승자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쓰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시중에 나온 '자기 경영'에 관한 책들이 좀 심하게 말하자면 '처세술'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만, 이토록 대놓고 '남을 이용하라'는 듯이 얘기하는 책을 만난다는 건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승자의 심리학>을 쓴 저자는 <후흑학>을 쓴 '이종오가 그 자신이 써놓고서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승자의 심리학>은 <후흑학>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후흑학>의 충실한 해설서라고 보기보다 <후흑학>을 오히려 재창조해 낸 새로운 책을 썼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긴 해도, 각종 인물들의 일화를 인용해 가면서 쓴 책인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는 건 흔한 경험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되기 마련인 검은 마음과 낯 두꺼운 얼굴을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써놓은 책에 동감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아니, 차라리 그 뿐이면 좋겠다. 검은 마음과 낯 두꺼운 얼굴, 즉 후흑의 실천 단계도 3단계로 나눠 그 격이 다르다는 것을 또 다시 구분해, 독자를 더욱더 혼란에 빠뜨린다.

첫 번째 단계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로 저자는 이를 가장 수준이 낮은 후흑의 실천 단계로 보고 있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라는 말이 악당들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얘기다.

두 번째 단계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단계다. 1단계 후흑에서 결국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는 힘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고 한다. 1단계 후흑의 적들이 타인이었던 것에 비해 2단계 후흑에서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 3단계는 혼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앞의 1단계와 2단계가 조합되어 냉혹함과 고상함이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물론 이런 단계 안에도 급수가 다른 이들의 얘기가 또 들어가 있다.

여기까지는 본론을 읽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하다. 본론에 들어가 읽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래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라며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야 할 일 등에 대해 '맞아, 내 성공을 위해서는 그래야 해'라는 엉뚱한 경험을 하는 이들도 생길 법 싶다(사실 내가 그랬다).

그만큼 <승자의 심리학>은 만만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읽고 싶다면, 일단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이런 말을 물어보자.

"당신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재정난 때문에 몇 명을 해고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회사도 망하지 않고, 다른 종업원들도 직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해고를 택하겠는가? 아니면 죽어도 같이 살자를 택하겠는가? 당신이 전자를 택했다면 저자는 당신에게 칭찬을 줄 것이기에 당신은 기쁨을 얻을 것이지만, 후자를 택한 당신에게는 '대를 위해 소를 버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기에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화가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능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위안을 줄지도 모르겠다. 해석하기에 따라,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 시켜 줄 책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보편의 의지와 조화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공동의 선과 공동의 이익에 부합된다'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게 되면, 당신에게 지금 이 책이 절실한지, 아니면 불로 태워야 할 성질의 것인지 분명해지리라.

어떤 이에게는 '복음'과도 같이 들릴 것이요, 또 다른 어떤 이에게 이 책은 '악마의 유혹'처럼도 들릴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후흑의 진정한 실천은 그저 '남을 기만하고 속여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는 것을 훨씬 더 뛰어넘는 수준의 것이겠지만, <반지의 제왕>에서 보았듯 때론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은 저자가 말한 '후흑'을 남을 밀어내는 데 정당한 이유로만 쓸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자기 주관이 확실하거나, 중국이 격변하던 시기 1900년대 초반 사상을 공부하고 싶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적극 권유하겠지만, 스스로의 욕심이 떄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자제하는 편이 좋을 듯 싶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의 세계보다 '남을 이렇게 찍어눌러도 그건 정당하다'라는 엉뚱한 사상적 기반을 만들 우려가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 승자의 심리학 | 추친닝 저/함규진 역 | 씨앗을뿌리는사람(페이퍼하우스)


승자의 심리학 - 위대한 승부사들의 특별한 사고방식

추친닝 지음, 함규진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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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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