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인가. TV에서 특집으로 만화영화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제목이 <공룡아, 불을 뿜어라>였다. 지금 이런 만화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 느꼈던 감동은 대단했다. 지금 거의 2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제목을 잊지 않고 있는 이유다. 아쉽게도 지금은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제목과 음악의 여운이다.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1억년 이전의 공룡들이 과연 불을 뿜었을까. 사실 만화는 공상과학만화였다. 그러니 실제로 공룡들이 불을 뿜었을 리는 만무하다.
경남 고성에서 열리는 공룡 엑스포가 100여 일(2006년 4월14일~6월4일) 남았다. 예전에 공룡발자국이 있다는 상족암(床足巖)-일명, 쌍발이라고도 한다-에 자주 다녀봤지만 '아~ 그냥 공룡발자국이구나'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룡발자국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새삼스레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왔다. 중생대 백악기의 흔적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영화 <쥬라기 공원>으로 공룡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물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전 들은 얘기로 우리나라에 공룡전문가가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이런 일을 계기로 새로운 전문가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룡발자국을 보기 위해 우선 가장 유명한 쌍발로 향했다. 지난 번 채석강에 갔을 때 물때를 잘못 맞춰서 가는 바람에 허탕 친 일이 생각나 이번에는 준비를 해서 갔다. 인터넷에서 물때표를 뽑아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시간대를 택해서 갔다.
예전에 갈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 가는 길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상족암의 통로를 지나 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나왔을 때 예전보다 더 선명하게 발자국이 보였다. 보는 순간 '아~!'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이 상족암의 공룡발자국은 약 1억2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것으로 그 당시 이 곳은 호수였다고 한다. 이 호수에 발자국이 남겨지고 퇴적된 흙이 시간이 지나 다시 솟아올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족암의 해안절벽들은 마치 변산에 있는 격포의 채석강과 닮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생성연대가 비슷하다. 여기도 마치 수천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세월의 흐름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상족암 반대편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가면 또 다른 공룡발자국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는 더 많은 발자국들이 있는데 아마 거기가 공룡들의 운동회장이 아니었나 상상해 본다. 어떤 발자국은 바다 쪽으로 촘촘히 나 있어서 바다로 수영을 나갔나 싶기도 하다.
이 상족암 일대가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공룡발자국의 수가 무려 40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내가 본 것은 몇 개 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다.
상족암 반대쪽 길을 가다보면 특별한 화석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물결자국(연흔)이다. 이 물결자국의 화석은 그 당시 여기가 호수였음을 보여주는데 그 모양이 직선에 가까워 그렇게 추측하는 모양이다. 이 물결자국을 가까이서 보면 실제로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물결이 화석으로 굳어져 있는 것은 처음 보는데 경이로움 그 자체다.
고성이 공룡엑스포가 열릴 만한 충분한 요건이 갖추어진 곳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고성군 일대에는 이 상족암 일대 이외에도 곳곳에 공룡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금 군에서는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이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도로며 산책로를 정비 중이다.
얼마 전에는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공룡발자국을 보러 다녀왔다. 물때를 맞추느라 거의 보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나선 길이었는데 이번에 간 동해면의 공룡발자국들은 정말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 크기가 거의 1미터에 달할 정도니 아마 충분히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발자국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조차도 이건 공룡발자국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리를 다시 옮겨 저 멀리 보이는 다른 곳으로 갔다. 거기도 물론 공룡발자국이 있는데 이곳도 지금 산책로를 정비하고 바닷가에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 곳 역시 공룡의 발자국이 꽤 선명했다. 이 곳 공룡발자국은 그 크기는 앞서의 것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자로 재보니 가로 세로 40여 센티미터에 달할 만큼 큰 발자국이었다.
고성에 있는 공룡발자국을 한 번에 다 돌아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주 가는 곳임에도 모르고 돌아선 곳도 있었고 찾기가 힘들어서 포기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핑계 삼아 앞으로 다 돌아볼 예정이다.
공룡발자국을 보러 다니면서 공룡박물관에 가지 않으면 이상하다. 공룡박물관은 개관한 지 1년여가 되었는데 박물관의 규모도 규모지만 상당히 내실 있게 만들어진 멋진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세심한 흔적이 보인다. 보도블록에는 공룡발자국 모양의 흔적들을 군데군데 만들어 놓았고 공룡을 형상화한 거대한 아름다운 조각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심플하다. 박물관은 공룡의 뼈를 형상화한 듯 아름다운 구성이었다.
내부의 전시물들도 또한 실제 크기였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온다면 금상첨화겠다. 내부의 전시물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여러 화석의 모형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삼엽충에서 암모나이트를 비롯해 심지어 잠자리의 화석까지.
얼핏 보기에도 아름다운 화석들도 많이 보였다. 박물관에서 여건이 된다면 화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체험해보는 코너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이 막연히 보기만 하던 화석에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에 공룡발자국을 찾아다니면서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잘 모르는 길을 가는 터에 '공룡'이라는 글자만 보이면 브레이크를 밟는 재미있는 버릇이다. 아마 관심을 가지고 고성에 가는 이들은 누구에게나 이런 버릇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이제 앞으로 공룡엑스포가 열리기까지는 100여 일이 남았다. 공룡 엑스포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공룡전문가가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룡엑스포가 일회성에 그치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 상족암은 삼천포로 들어와서 남일대해수욕장 방면으로 가면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고성의 공룡발자국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것이 편하다.
사이버공룡 테마파크(http://www.dinopark.net)
2006경남고성세계엑스포(http://dino-expo.com)
고성군청(http://www.goseong.go.kr)
*발자국 만나러 가는 길에 꼭 물때를 확인해야 한다. 국림해양조사원 홈페이지(http://www.nori.go.kr)에 가서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하면 된다. 고성의 경우 인근 사천을 검색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