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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강은 고요합니다. 아침 강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밤새 추위에 떨었는지 여기 저기 얼음 투성입니다. 하지만 태양이 비추기 시작하면 강물을 붉어지며 온화해 집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강변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강가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지만 섬진강으로 흘러내려가는 작은 개울에서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니 곧 봄이라도 올 것 같습니다.
이제 2월이 되면 매화가 꽃을 피울 것이고 매화가 지면 벚꽃이 피고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4월이 지나면 그 허전함을 철쭉이 매울 것입니다. 그렇게 섬진강에 여름이 오겠죠.
도시처럼 새로운 건물이 생기지도 않고 가로등도 거의 없고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없어 밤은 온통 컴컴하기만 하지만 매일 다른 모습을 펼쳐놓는 자연의 모습은 경이롭기만 합니다.
이른 아침, 섬진강 강변도로를 따라 출근을 하다가 산과 강이 만든 풍경에 취한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
제가 출근하는 길은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입니다. 구례읍 토지면을 지나 문척교를 지나면서부터 섬진강을 옆에 끼고 달리게 됩니다. 섬진강은 굽이굽이 온 몸을 꺾어 가며 흘러갑니다. 도로도 강을 거스르지 않고 강과 함께 굽이굽이 따라갑니다.
핸들을 꺾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나타납니다. 이 길로 매일 출퇴근을 한 것도 벌써 1년이 되어 가지만 계절마다 다르고 하루가 다른 강과 산의 풍경 때문에 출근길은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출근을 하는 동안 내 차를 추월하는 차는 한두 대 정도. 30km가 넘는 출근길에 마주치는 차는 채 10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침엔 농어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서너 명을 빼고 나면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차도 사람도 없는 공간을 자연이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도 벚꽃이 피는 4월에는 꽤 붐벼서 차량 지체가 일어납니다. 더구나 모두들 섬진강에 취해서 속도를 줄여 버려 지체는 더욱 심해집니다. 잠시 분주했던 19번 도로의 풍경은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벚꽃은 고작 2주 정도가 절정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이 길을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구례 하동 19번 강변국도(전남 구례∼경남 하동)의 4차선 확장공사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이미 끝났기 때문입니다.
즉 구례에서 하동까지의 섬진강 강변길을 4차선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입니다. 길을 넓히고 직선화시키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출퇴근길에 단 한 번도 차량 지체로 고통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단지 벚꽃이 피는 그 짧은 2주 동안 차량 지체가 심하다는 이유로 확장 공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하루라도 국토 어디선가 도로 공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모든 도로를 시원스럽게 뻥 뚫어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정부의 도로정책이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치욕스러운 공사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매일 이용하는 저 같은 사람이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도로확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무엇일까요?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장터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 소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