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보수언론에게서도 '주가 대박'이라는 찬사를 받은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의 의장직 마무리가 볼썽사납게 됐다. 자신의 산자부 장관 입각과 관련 "당이 장관 밑에 있다는 건가"(장영달 의원)라는 당내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정 의장은 결국 중도 하차하게 됐다.
또다시 여당은 2달 여만에 임시체제가 됐다. 한나라당은 "창당 이후 벌써 몇 번째 의장이냐"며 "이러다가는 '전 의원의 당의장화'라는 대기록을 세울지 모른다"고 비난 성명을 냈다.
정 의장은 퇴임사도 직접 전하지 못했다. 오영식 공보부대표는 3일 국회 브리핑룸을 찾아 "그간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로 최선을 다해왔으며 여러 가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국민과 당 의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며 "남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이렇게 사퇴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이에 대한 깊은 양해와 이해를 부탁했다"고 정 의장의 말을 전달했다.
왜 하필 지금 입각?... 친노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당에서는 정 의장과 유시민 의원의 입각 문제를 달리 보고 있다. 유 의원의 경우 '자질' 문제를 들어 입각 자체를 반대하는 흐름이 있지만, 정 의장은 '시기'의 문제를 따지고 있다.
사실 정 의장의 입각은 예정된 것이었다. 한달 전 쯤부터 정 의장이 임기 후 행보는 경제쪽 장관직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정 의장 측도 내심 바라는 눈치였다. 배기선 총장이 말했듯이 "왜 경제부총리가 아니고 산자부냐"는 자리의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시기가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에 의원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계파를 불문하고 공통된 시각이다. 친노 측에서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청와대에 일정한 책임을 물었다. 1월 24일 원내대표 경선, 2월 18일 전당대회 등 아직도 정 의장이 책임져야 할 굵직한 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관심은 이번 개각이 청와대의 일방 통보인지, 정 의장과 사전 교감 하에 이뤄진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김형주 의원은 "정 의장이 분명히 해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일방통보인가, 정 의장과의 사전 교감인가
일단 정 의장은 "2일 정오 연락을 받았다"며 말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통보가 그러했을 뿐 인사관례상 늦어도 3주 전에는 의견을 교환하지 않았겠냐"는 것이 당직자들의 시각이다.
청와대에서도 '일방통보'라는 당의 반발에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사전에 당과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시민 의원의 경우와 달리 정세균 의장에 대한 반발은 예상치 못했다는 것.
실제로 지난 2일 개각 소식이 전해지자 오전 회의를 주재하던 정 의장은 '입각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어젯밤 전화기를 옆에 놓고 잤는데, 아직 전화를 못 받았다"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회의장 밖에서 만난 정 의장의 한 측근은 '당의장 임기가 남지 않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며 "(2월 18일 전당대회 전까지) 당의장직을 수행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개정된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무위원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보내는 시간을 얼추 한달여로 잡으면 전당대회까지 당의장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중진들 "당장 의사봉 내려놓으라" 호통
그러나 2일 밤 소집된 중진급 의원 회동에서 가장 격한 감정을 토로한 임채정 의원(열린정책연구원장)은 "당장 내일 회의부터 사회 보면 안 된다, 당 꼴이 뭐가 되겠냐"며 의장직 사퇴를 종용해 정 의장을 당혹케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은 "정 의장이 너무 욕심을 부렸다"며 "장관 내정자 신분과 임시 당의장직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편의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날 심야회동에 참석한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청와대도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라며 "국무위원 청문회 제도가 새로 도입되다 보니 그 기간을 어물쩡 계산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청 갈등 재연으로까지 비화된 정 의장 입각을 둘러싼 갈등은 "(당청간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 미숙이라는 아마추어리즘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한편 김부겸·문희상·유인태·원혜영 의원 등을 중심으로 전당대회를 5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는 이른바 '전대 연기론'이 물밑에서 진행되어 왔으나 이번 개각 논란으로 물 건너간 셈이다.
이들은 2월 전당대회 전까지가 임기인 정세균 의장에게 유임을 추대하고 '정동영·김근태 빅매치'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룰 계산이었으나 정 의장이 이를 거절하고 입각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