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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진정한 경제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상인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올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진정한 경제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상인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저성장, 경기침체, 부동산투기, 재벌, 비정규직, 양극화.

지난해 한국경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단어들이다. 대부분 어둡고, 부정적인 뉘앙스다. 새해 각종 여론조사는 많은 국민들이 경기회복 바란다는 '희망'을 전한다. 정부도 해마다 이를 다짐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 회복은 국민들에겐 말 그대로 '희망'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부터 소비와 경기지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민간경제연구소 등은 앞다퉈 올해 경제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만난 5인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신중했다. 그리고, 조심스러웠다.

오히려 이들은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경제회복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협 요소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고용 창출이 정체되고 있는 점, 심화되는 양극화에 따른 내수 회복에 대한 불안감, 날로 증가하는 세계시장에 대한 의존도와 투자 부진 등.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이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는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진보적인 조세개혁이다. 둘째는 삼성문제 등 재벌개혁과 혁신적인 산업 정책이다. 셋째는 비정규직 개선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다. 넷째는 교육문제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빈곤층에 대한 교육 투자를 늘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장과 분배의 경기 선순환을 위해선 사회적 갈등을 줄일수 있는 대타협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5명의 학자는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장상환 경상대 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그리고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 등이다.

길을 잃은 한국경제... 양극화가 성장기반 해친다

이들 학자들이 진단하는 한국경제 현실과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차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경기에 대해서도 '일시적'이라는 측면에 무게를 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신자유의적인 경제 개방정책으로 '고용불안-저성장-저투자'로 대표되는 경제 악순환을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악화된 계층 간 소득분배와 심화된 양극화는 경제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이강국 교수는 "최근 많은 경제학 연구를 보면, 소득분배가 불평등하면 경제성장이 저해될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양극화는 사회 불안과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고, 부의 불평등으로 가난한 이들은 충분한 교육투자를 할 수 없어 성장 기반을 해치게 된다"고 밝혔다.

전성인 교수는 "양극화 그 자체로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라면서도 "양극화를 해결하려고 땜질식으로 일단 막고 보자거나, 자칫 이상한 방법을 동원할 경우 오히려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특히 올해 5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대통령선거에 이르는 정치일정에 따라 경제가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5월을 넘어가면서 경제가 정치에 휘둘릴 가능성도 많다"면서 "선심성 대형 국책사업 등 건설과 표를 의식한 지방과 관련된 사업들이 나오게 되면, 이 과정에서 '무슨 게이트' 등 부정부패가 터져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유선 소장은 "올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전제하고 "문제는 성장만큼 각 계층에 골고루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실질적인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대안1] -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진보적인 조세개혁

장상환 경상대 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
이들 학자들은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분배악화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지난해 전 국민을 투기로 내몰았던 부동산 광풍과 같은 투기적 불로소득을 줄여야 한다는 것. 이어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진보적인 조세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강조한다.

장상환 교수는 "부동산 종합대책 등 정부가 나름대로 부동산 대책을 통과시켰지만, 얼마나 투기적 수요가 가라앉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투기적 소득은 철저하게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것과 함께 고소득, 자영업자 등에 대한 더욱 엄정한 세금 부과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고, 소득재분배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면서 그만큼 저소득,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나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조세제도 개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강국 교수도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버블은 국내소비와 노동의욕 저하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직접세 비중을 높이고, 금융소득종합과세와 부동산 보유세 강화 등 강력한 조세 정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대안2] - 삼성문제 등 재벌개혁과 혁신적인 산업 육성 정책

전성인 홍익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재벌을 포함한 산업정책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혁과 함께 성장 동력으로서의 기업을 위한 혁신적인 정책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성인 교수는 "올해 경제현안 가운데 중요한 것이 '삼성'으로 비롯된 재벌문제"라며 "삼성의 경우 경제 살리기를 위한 측면과 함께 공정거래법 등 각종 현행법과 충돌하는 부분을 어떻게 정부가 조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금산법을 비롯해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매각 등 삼성과 관련된 각종 문제는 결국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삼성문제 처리가 현 정부의 재벌 개혁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라고 강조했다.

장하준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육성정책을 주문했다. 장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부채비율 등 재무건전성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기업보다 훨씬 좋아졌다"면서 "하지만 기업들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 내몰리면서, 단기 수익을 좇고 일상적인 구조조정으로 고용시장만 불안정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우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연구개발 분야 지원을 크게 늘리는 등 산업육성 정책을 펼쳐야 한다"면서 "주식시장도 단기적인 투기보다는 기업들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돈을 공급 받을 수 있도록 금융시장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안3] - 비정규직 개선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도입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노동시장 개선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됐다. 김유선 소장은 "지난해 기업들의 수익성과 경상이익률은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면서 "기업하기에는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노동하기엔 엄청 나쁜 나라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정부가 양극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DJ정부나 노무현 정부 모두 노동시장 내부의 불평등을 시장에 방치해 왔다"면서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국회 계류중인 비정규직 법안이 하루빨리 마무리되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강국 교수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과 함께 기업도 교육 훈련과 협조적 노사관계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면서 "또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부분적으로 양보할 필요가 있다면, 양보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장상환 교수는 "정부가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자리를 작년보다 40% 늘리겠다고 했다"면서 "문제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며, 이를 개선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밝혔다.

[대안4] - 공교육을 강화하고 빈곤층 투자 확대해야

교육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소득재분배의 악화와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교육에 대한 접근 역시 계층간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장 교수는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는 사교육 등의 교육투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는 곧 장기적으로 봤을때 국가경제의 성장 기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교육개발연구원의 '최근 6년 새 초중고생 조기 유학 10배 증가' 발표를 들면서 "매년 수십억 달러의 국부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사교육 시장에서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교육개혁 정책을 주문했다.

따라서 정부가 향후 높은 성장과 함께 균등한 분배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교육 서비스를 받을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강국 교수는 "사교육 시장에 대해선 정부가 한층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개혁해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교육 예산을 늘리고, 공교육의 질을 높여나가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안5] -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위한 사회적 대타협 절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지막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치권을 비롯해, 정부, 노동, 기업, 시민사회, 문화 등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국가 전반에 걸친 갈등 요소를 줄여나가기 위한 진지한 토론과 논의의 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강국 교수는 "정부는 이 과정에서 각 사회세력의 균형을 위한 협상 원칙과 틀을 주고, 갈등을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하준 교수도 "최근 불거진 재벌 문제를 비롯해 비정규직 개선 등 사회적 갈등에 따른 국가 경제적 낭비는 매우 크다"면서 "이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이미 지난 1930년대에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낸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 모델을 두고 '우리와 맞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면서 "하지만 타협이 절실한 상황에서 사회 각 주체들이 서로의 원칙을 내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입장차를 좁혀나가면 한국적 대타협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지나치게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에 경도된 나머지 잘못된 개혁이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단순한 개방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개방을 위해선 충격을 흡수하고, 희생자들을 구제해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심은 곳간에서 난다'라는 말이 있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민과 중소기업의 '곳간'에는 곡식이 제대로 쌓이질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다. 올해 낙관적인 경제전망만큼이나 이들 '곳간'도 풍족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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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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