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2권 책 표지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2권 책 표지 ⓒ 한겨레신문사
한글은 우리 겨레의 문화 수준을 세계 으뜸으로 올려놓은 귀중한 가치가 있으며,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다. 또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것에 한글이 압도적으로 꼽힌 것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글은 일부 정치권과 경제계의 홀대 속에 바다의 날 등과 함께 그냥 일반 기념일이었다.

그러다 한글날 국경일 승격을 간절히 바란 한글단체들의 끈질긴 싸움과 '한글 세계화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도움에 힘입어 드디어 지난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의안번호 173572)'이 통과되었다. 그래서 2006년부터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기리는 잔치를 열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한글날의 국경일 승격이 끝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한자말과 외래어에 만신창이가 된 한글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광복을 맞은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 애매, 역할, 아나고, 요지, 빽미러, 레자 따위의 일본말 찌꺼기가 버젓이 쓰이고, 와이프, 파이팅, 로드맵, 게이트 등도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 것들을 바로 잡지 못한 데서야 한글날 국경일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점에서 그동안 <한겨레신문>이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란 제목으로 말글을 위한 연재를 해왔던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지금은 그 연재를 접고 또 다른 형태의 '말글찻집'을 연재하고 있는 중인데 그동안의 연재물들을 모아 한겨레신문사는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제2권을 책으로 묶어냈다.

2004년 8월에 나온 1권에 이어 2권에는 권재일 서울대 교수(언어학),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안인희 전문번역가,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정재도 한글말연구회 회장, 조재수 사전편찬인, 최용기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최인호 한겨레신문사 교열부장 등이 참여했다.

제2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되짚어 볼 우리말'에선 '잘못 쓰는 서술어', '어색한 표현들', '구별해야 할 말' 등을 모았으며, 제2장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는 '말밑 또는 말 만들기'를 제3장 '잡탕말 홍수에 빠진 우리말'에서는 '외래어, 외국어 다듬어 쓰기', '번역과 말글 차이'를 제4장 '남북 말골 메우기'에선 '남북말 비교', '배달말꽃',을 제5장 '바로 쓰고 바로 읽기'에선 '바로 쓰고 바로 일기', '이런 말 저런 말'들을 모아쓰고 있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먼저 권재일 서울대교수(언어학)의 '배려하는 대화'라는 글을 보자.

"사람과 동물을 구별해 주는 가장 확실한 특성은 사람만이 말을 통하여 대화를 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한 언어에서 이러한 사실을 재미있게 보여 준다. 그 말에서는 '쿤투'는 사물을 뜻하고 '문투'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태어나서 말을 배우기 전까지는 아이를 '쿤투'라 부르고, 말을 배워서 쓰기 시작하면 비로소 '문투'라 일컫는다. 대화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말을 주고받는 활동이다. 그런데 대화에서 이 둘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말하며 듣고, 들으며 말하는 활동이 순환한다.

그러나 사람은 늘 자기 위주여서 말하는 쪽에 설 때와 듣는 쪽에 설 때 태도가 달라진다. 말하는 이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려 하고, 듣는 이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들으려 한다. 심지어는 들리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만 가려 듣기도 한다. 가장 이상적인 말하는 이는 듣는 이의 관점을 가장 잘 고려하는 '말하는 이'고, 가장 이상적인 듣는 이는 말하는 이의 관점을 가장 잘 고려하는 '듣는 이'다."


세종임금 동상
세종임금 동상 ⓒ 김영조
그리고 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은 '배달말의 생기'라는 제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nara)라는 소리를 들으면 배달겨레 초등학생 머리에도 곧장 네이션(nation)이 지니고 있는 뜻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방·국'(邦·國)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이 배웠다는 대학생일지라도 곧장 그 뜻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본디 뿌리가 배달말이 아니어서 어렵게 된 것이다.

'방(邦)'이라는 말을 공자가 많이 썼고, 맹자는 '국(國)'이라는 말만을 사용했다. '방'과 '국'이라는 말을 우리가 오랜 세월 써 왔지만 배달말로 되지 못했다. 배달말로 되지 아니했기에 거기서 생기가 솟아나지 아니한다. 더구나 국민(國民)이란 말은 고구민(gogu-min)이라는 소리로 되는 일본말이었기에 배달겨레는 아주 듣기 싫은 말로 되었다. 그런데도 이를 깨치지 못하고 요즘엔 이를 너도나도 함부로 쓴다. '나라'를 덜 쓰고 '국가'를 많이 쓰는 까닭이다."


훈민정음 해례본(국립중앙박물관)
훈민정음 해례본(국립중앙박물관) ⓒ 김영조
또 최용기 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은 "파이팅/'아리아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 힘내자는 뜻으로,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힘내서 잘 싸우라는 뜻으로 '파이팅'(fighting)이란 말을 외친다. 본래 이 말은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영어에서 이 말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는 정도의 뜻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하자' 뜻으로는 속어로 '키프 잇 업'(keep it up)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파이팅'은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인 셈이다.

얼마 전 우리말 순화 운동가 한 분이 이 말을 '아리아리'로 바꿔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제안하였다. 곧, '아리랑'의 앞부분인 '아리아리'는 '여러 사람이 길을 내고 만들어간다'는 뜻으로 위의 뜻을 잘 뭉뚱그린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예술적이고 도덕적인 우리 민족다운 말'이라고 하였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여 이쪽저쪽에 알리고 써 보니 썩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 밖에 '얼씨구!, 힘내라!, 영차!' 들도 때에 따라 써볼 만하겠다."


한글날 국경일 승격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우리 모두가 한글을 가꾸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을진대 최소한 이 책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를 읽고 새롭게 가다듬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그것은 한글 사랑의 첫걸음일 터이다.

새로운 필자들을 다시 모실 터
[인터뷰] 한겨레신문 교열부장 최인호

- 연재를 하면서 있었던 기억나는 일은?
"정재도 선생의 경우는 한자말로 알고 있던 것을 우리말이라고 바로잡은 글이 몇 편 있었는데 한문을 잘 아는 두 분이 인터넷한겨레 토론방에 이의제기를 해왔다. 그분들은 옛 한문책들을 들춰 그 말들이 한자임을 증명하려 했으며, 고증을 통한 비판을 하는 것이 좋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정재도 선생은 인터넷을 하지 않는 분이어서 그 토론방에서는 일방적인 공격만 있었고, 그에 대한 대응이 없어서 아쉬웠다. 정 선생은 그 반론을 보여드렸더니 그를 통해 많은 공부를 했지만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하며, 전적으로 부정적인 눈을 가지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 한두 사람의 글쓴이는 조금은 앞서가는 듯한 내용도 있던데...
"지금 얘기가 정재도 선생과 려증동 선생을 두고 한 말로 들리는데 약간 앞서 나가긴 했지만 크게 무리라는 생각은 없다. 정재도 선생은 현재 살아있는 분 중 그 정도로 해박한 한문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어려우며, 앞으로도 그런 글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지금 더 많은 글을 받아 후학들이 이를 통한 연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려증동 선생은 20여 년 전부터 이런 겨레사상과 관련한 주장을 많이 해왔다. 특히 '이씨조선'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했는데 이를 언론이 받아들여 이젠 정착이 되었다. 역시 무리가 좀 따르더라도 이런 주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민족주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국수주의로 몰아 매장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 현재는 예전의 연재를 접고, 혼자 '말글찻집'을 연재하고 있는데 다양성 면에서 모자람이 있지는 않은지.
"맞는 지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다양한 글을 올리는 게 옳은 일이다. 하지만, 예전의 글쓴이들은 이젠 쉬었으며 하고, 새로운 필자를 찾기가 어려워 그렇게 된 것이다. 앞으로 좋은 필자들을 다양하게 모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나는 오히려 젊고 새로운 시각을 가진 학자들에게 문호를 넓히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조선시대 언문이 지배층의 공식 글자였음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밝혀낸 김슬옹 박사나, 네이버 최우수 카페인 '한말글사랑' 카페지기 김형배 박사 등을 추천했는데 최 부장은 적극 공감하고 고려하겠다는 답을 준다. / 김영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