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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산문집 <환장>
이윤학 산문집 <환장> ⓒ 랜덤하우스중앙
내가 이윤학 시인을 직접 만난 것은 딱 한 번이다. 몇 년 전 김기우 소설가 출판기념회 때였다. 내가 사회를 보았었고, 출판기념회 장소인 한국시문화회관에서 나온 우리는 노래방으로 옮겨 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때 이윤학 시인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군더더기 같은 말이라곤 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이윤학 시인의 글쓰기는 풍년이다. 글농사를 부지런히 지은 것이다. 하반기에 이윤학 시인처럼 여러 장르에 걸쳐 책을 다발적으로 내놓은 문인도 흔치 않을 것이다. 시작은 역시 시집이었다.

시집 <그림자를 마신다>(2005년 9월 문학과지성사 펴냄)
창작동화집 <별>(2005년 10월 아이들판 펴냄)
산문집 <환장>(2005년 10월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장편소설 <졸망제비꽃>(2005년 11월 황금제비꽃 펴냄)
성인동화 <내 새를 날려줘>(2005년 12월 문학동네 펴냄)


이렇게 9월부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책을 내었다. 이 가운데 내가 숙독한 것은 산문집 <환장>. 이 책은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환장은 환심장(換心腸)의 준말(전에 비하여) 마음이 막되게 달라짐을 뜻한다.

그러나 54편의 산문들은 대부분, '환장' 하게 재미있지는 않다. 입담의 재미보다는 다른 맛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윤학 시인만의 독특한 맛. 간결의 미학이 엿보인다.

<환장>은 대단히 건조한 산문집이다. 으스대지 않는 문체가 보인다. 아주 간결하다. 꾸밈이 없는 문체로 아주 간결하게 짜여져 있다. 편편마다 이야기가 더 이어질 듯하지만, 과감히 생략해 버린다.

'방귀'를 보면 이렇다. 그녀가 강의 전에 우유를 마시고는 방귀를 뀌었는데, 방귀 누가 뀌었냐고 말한 여학생이 오히려 범인으로 몰린다. 시인은 그 결말을 이렇게 끌고 간다.

처음 방귀 냄새 얘기를 꺼낸 여학생은 자기가 범인으로 몰리자 가방을 싸서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내참, 자기가 뀌어놓고 누구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냐. 짜증나게.”
강의실에 남은 여학생 셋은 눈을 흘기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는 절대로 강의 시간 전에는 우유를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쟤 본래부터 방귀 냄새 지독하잖아. 지가 뀌고 왜 우리한테 화를 내고 나가냐.”
옆줄에서 자던 여학생은 다시 책상에 얼굴을 대고 누웠다.
- <환장> 39쪽에서


강의실에서 있을 만한 얘기인데, 마치 군더더기 하나 없는 콩트 한 편을 읽은 느낌이다. '파리'는 또 어떤가.

서울에 도착해 이틀이 지났다. 주차장에 갖다 놓은 차를 타고 나왔다. 이틀 전에 마시다 만 캔커피가 보였다. 구멍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직은 상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캔커피를 흔들어보았다. 혹시라도 담배꽁초가 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날에는 누군가가 뱉어놓은 가래침을 마신 적도 있었다. 담배꽁초와 가래침은 흔들면 알 수 있었다. 캔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불어터진 쌀 알갱이 같은 것이 입안에 걸렸다. 차를 세웠다. 아스팔트 바닥에 캔커피를 쏟아 부었다. 불어터진 파리 여섯 마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 <환장> 117~118쪽에서


이렇듯, 일상의 우물에서 짭짤한 콩트 같은 이야기를 퍼올리고 있다. 필요없는 접속사나 수식어를 배제한 채, 산뜻하게 퍼올리고 있다. 물이끼는 끌어올리더라도 흙탕물은 끌어올리지 않는다. 산문집으로 엮었지만, 굳이 붙인다면 자전적 콩트집이라고나 할까. 입담 없이 간결한 문체로 산문 54편을 꾸려낸 유별난 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54편 가운데 '개장수 아저씨'는 특별히 내용이 길지만 맛도 다르다. 다른 산문들과 달리 숭늉처럼 구수하다고나 할까.

환장 - 문예중앙산문선

이윤학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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