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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겉표지 ⓒ 당대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귀농을 꿈꾸어 보았을 것이다. 귀농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남진의 저 유명한 노래 <님과 함께>에 나오는 가사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네'를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귀농이나 초원 위의 집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하루하루를 시계추처럼 빠듯하고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귀농이니, 초원의 집은 너무 막연하고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만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것일까? 귀농이나, 생태적인 삶은 몇몇 '대단한 결심만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까? 이 책 <최씨부부의 어처구니있는 아파트살이>의 공동저자인 최씨부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어차피 귀농이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꿈이라면 미우나 고우나 자신들의 삶터인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생태적이고, 자연적이며, 인간적인'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최씨부부의...>는 그러한 최씨부부의 알뜰하고 인간적인 사람 냄새나는 살림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최씨부부의 맛나게 사는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기로 하자.

그들은 아파트에서 직접 장을 담아 먹는다. 처음에는 '딸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무언가'를 찾다가 시작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돈 주고 사서 먹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장맛이 최고의 기쁨이다. 매우 번거로울 것 같지만 직접 해보면 생각만큼 복잡하거나 어렵지도 않다. 나중에는 쏠쏠한 그 재미에 온 가족이 푹 빠지니 장 담그기는 가족간의 좋은 '놀이'도 되었다.

장 담그기 뿐 아니다. 텃밭을 직접 가꾸는 것 역시 이들 부부의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초보일꾼으로서 텃밭을 가꾸는 어려움, 고단함의 술회와 더불어 자연이 주는 보람과 감사한 마음을 진솔하게 적어놓았다. 그런데 이 텃밭 가꾸기와 관련하여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단다.

텃밭 가꾸는 것이 마치 요즘 유행하는 '웰빙' 추세와 맞물려 너도나도 시작했다 대부분 그냥 흐지부지 끝내는 현실이 아쉽단다. 너도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실이나 여기에는 '자신의 인생계획을 다시 꾸려야할 정도로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하는' 큰 결심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당부해두었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두부 만들기 일화도 재미있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중의 하나인 두부의 제조과정이 꽤 까다롭고 어렵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직접 두부를 만들기 위해 재래시장에 발품을 팔아가며 맷돌도 사는 등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였으나 두부 만들기가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 두 번은 못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으로써 음식의 소중함과 만든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배우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지론이다.

최씨부부의 생활의 특징을 한마디로 꼽으라면 남들이 한다고 무턱대고 따라하지 않기이다. 즉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내 삶의 주인되기이다.

그 좋은 예가 아이들의 피아노 교육이다. 이들 부부는 남들 다 보내는 피아노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피아노를 구입한 뒤 아이들이 스스로 음악을 느끼며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쳤다. 좀 못치면 어떠랴, 악보 좀 못보면 어떠랴. 음악을 내 것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단다. 참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내기는 어려운 결정일 듯하다.

또한 이들 부부가 직접 팔 걷고 실행한 내부 인테리어 공사 이야기나 자기 집에 꼭 맞으면서도 저렴한 홈 시어터 구입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피커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진짜 이유는 뭐 대단하고 특별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문제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어떤 물건이든 시장에서는 특정 생산자에 의해서 획일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것만을 구입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물건은 나의 취향이나 입맛 또는 필요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또 어떤 것은 나에게 부족하고 또 어떤 것은 나에게 넘쳐난다. 나에게 맞는 것을 나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140쪽)"

어처구니 있는 삶은 주체적인 삶

이책의 공동저자인 최씨부부

이 책의 저자는 두 사람이다. 아내 최순덕과 남편 최종덕. 이름도 비슷하여 남매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들어야했고 처음 만났을 때도 동성동본이 아닌가를 먼저 따져보았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아내 최순덕은 'SE시스템‘이라는 측정장비 회사에서 기술영업을 하고 있으며 남편 최종덕은 현재 상지대학교 철학교수로 있다. 이들의 재미있고 살맛나는 이야기는 최종덕의 블로그(http://blog.naver.com/rundtable)에 가면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이들 부부의 각별한 재래시장 사랑과 시어머님께서 물려주신 재봉틀이야기, 방앗간의 재미있는 뒷이야기,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워주며 신나게 놀아주는 방법, 교육철학 등의 이야기에도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가만히 읽다보면 이들의 삶은 옛날 우리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들께서 살았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많이 닮아있다.

어처구니를 아시는지. 어처구니는 맷돌을 돌리기 위해 윗돌에 고정시킨 손잡이를 말한다. 그만큼 어처구니는 중요하다. 어처구니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어처구니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오늘부터라도 어처구니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것이 바로 주체적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있는 삶을 산다면 그곳이 아파트이건, 초원의 집이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씨부부의 어처구니있는 아파트살이>/최순덕, 최종덕 지음/ 도서출판 당대/12,000원


최씨부부의 어처구니 있는 아파트살이

최순덕.최종덕 지음,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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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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