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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영화 포스터
<말아톤> 영화 포스터 ⓒ www.run2005.co.kr
2005년 2월 겨울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니 이제야 살맛이 난다. 긴 겨울 방학 동안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시험을 치르느라 전문 서적에 얽매어 수천 페이지의 문자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래도 공부하는 그 시간만은 젊음의 그날로 되돌아 간 듯하여 참 기뻤다. 책상 앞에서 두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들락거렸지만 정신만은 세수를 한 듯 가볍다.

'교육'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과 잡지, 전문 서적의 숲을 드나들며 작가들의 사상과 목소리와 향기를 마신 겨울 방학 덕분에 20여 년 동안 제대로 갈지 못하고 달려온 무디어진 칼날을 다시 세우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잠시 수험생이 되어 도전을 마치고 한가한 마음으로 설을 맞았다. 양가 어르신이 모두 생존하지 않으시니 허전하고 서글펐다. 친척, 조카들과 어울리면서도 가신 분들에 대한 그리움,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내 몫의 삶이 어설프게 다가서서 시간이 참 더디게 갔다. 그런 허전한 공간을 채우려고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으로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혼이후 명절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치'였으므로…….(어르신들을 찾아서 음식을 장만하고 뒷마무리를 하는 일이 전부였으니) 새삼스럽게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는 옛 말씀이 아프게 다가서며 더 잘 해 드리지 못했던 시간도 후회가 되는 명절. 이제는 편리해진 입식부엌에 밀려 사라진 시골집 정지도 그리움이 되었다.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극장에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군에 간 아들의 빈손을 그리워하며 우리 식구 셋은 하나가 되었다. 영화 <말아톤>은 자폐아를 둔 한 어머니의 사랑과 열성이 이룬 한 편의 기적이었다. 더욱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더욱 아프고 따스했다. 정상인도 힘든 마라톤을 자폐를 지닌 아들의 삶의 목표로 끝없이 달리게 하며 뜨거운 눈물과 한숨으로 모성애를 보여주는 모습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만큼이나 삶을 애처롭게 이겨내면서도 순수한 한 청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관객들을 울면서도 웃게 만드는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작품을 엮은 사람의 진심어린 사랑과 언어를 배열하고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진솔한 연기력이 잔잔한 영상으로 전편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 다 다르듯이 각자가 살아내야 하는 모습도 다 다른데 하나같이 공부 잘하여 출세하기를, 보기 좋고 내놓을 만한 직업으로만 내모는 입시철에 가족이 함께 모이는 설날 연휴에 참으로 잘 들어맞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모습만으로도 한없이 고마운 우리 집 딸아이는 연신 눈물을 닦느라 얼굴이 젖어 있었다. 저 아이에게 좀더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고 투자(?)해 주지 않은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선택한 '홀로서기'였음을 강변해 온 나의 교육 방법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결국 달려야 할 사람은 자식인데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을 출발부터 결승에 이르는 순간까지 모두 책임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곤 한다. 즐겁게 달리기를 배운 다음에는 홀로 달리며 넘어지고 깨지면서 머나먼 길을 가야할 이 땅의 자녀들에게 시행착오의 기회조차 아까워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체력의 한계도 알지 못한 채 너나없이 마라톤(1등으로, 일류대학으로)을 뛰게 한 건 아닌 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천 명에 한명 꼴로 자폐아동이 있다니 새삼스럽게 소외된 곳에서 홀로 눈물지으며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죄스러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게 주어진 조건에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이웃을 돌아볼 줄 알게 하며,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지,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도 내 자식, 우리 집의 울타리를 넓혀 한층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을 지닌 사회가 되어야 함을 가슴으로 전하고 있었다.

영화 <말아톤>은 말없는 아픔과 사랑을 절절한 언어와 영상에 실어,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철저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는 부모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내가 웃을 때 우는 사람도 있으며, 내가 기쁠 때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는 무거운 책임을 내 어깨에 실어준, 오래도록 아픈 영화로 기억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2월 11일 개학 첫날 저녁, 연곡분교장에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에는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짖고 야단치며 삿대질하는 모습이 넘쳐나는 세상이 두렵습니다. 새해에는 따스한 소식들이 넘쳐나길 간절히 바라며 한 켠에 남겨둔 원고를 보냅니다. <한교닷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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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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