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들어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이란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란 핵문제의 향방은 이라크 문제와 맞물려 중동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적인 변수일 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연합·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국제 유가와도 직결되어 있어 향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란 핵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란 핵문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랬듯이 한반도 문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 갈등의 축이 미국과 이란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북핵 문제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란 정부는 한국이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친미 노선을 고수할 경우, 경제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란 핵문제가 북핵 문제 및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란도 미국도 강경 일색... 한반도 문제에 상당한 영향 미칠 듯
최근 흐름을 종합해보면, 이란 핵문제가 원만하게 풀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란의 핵 활동을 바라보는 미국과 이란의 시각 차이가 워낙 큰 상황에서 '자주 노선'을 천명하면서 집권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최근 미국 등 서구진영과의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작년 말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야기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월 초에는 "유럽 국가들이 대량학살을 완수하기 위해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 이스라엘을 건립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더해 이란 정부는 1월 3일에 "다음주(1월 9일)부터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낸 편지를 통해 이란 정부는 "평화적 핵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란은 2004년 유럽의 트로이카인 영국·프랑스·독일과의 합의를 통해 '우라늄 전환'을 제외한 핵 활동을 중단해왔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외신과 전문가들은 핵물질을 제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활동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란 중부에 있는 나탄즈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 실험을 재개하거나 원심분리기 제조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란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도 강력한 경고로 응수하고 있다. 이란의 발표 직후,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활동을 재개할 경우 이는 이란의 핵 활동 목적이 핵무기 제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이란의 핵 야심을 억제할 추가적인 조치를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재안 퇴짜맞자 당황한 러시아, 중재 효과 있을까?
이번 이란의 발표에 가장 당황한 나라는 러시아이다. 최근 러시아는 이란 핵 문제에 관련해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이란이 자국 영토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란은 평화적 핵 활동에 필요한 핵연료를 확보할 수 있는 반면에, 서구국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로운 방안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란은 러시아의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한 핵연료 주기를 확보하는 것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국으로서 가져야 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이 러시아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핵 활동 재개를 선언한 것은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이란의 이번 발표를 근거로 미국은 '이란 대 국제사회'의 대결구도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면서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표단은 이번 주말 이란을 방문해 자국의 제안을 비롯, 이란 핵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러시아의 중재 외교가 효과를 거두고 다음주로 예정된 이란의 핵 활동 재개가 유보된다면, 추가적인 상황 악화는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협상이 이렇다할 성과 없이 끝나고 이란 핵 활동이 재개된다면, 이란 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란 대 국제사회' 구도 만들어지나... 다음 주가 고비될 듯
북핵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란 대 국제사회'라는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일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부담을 느끼고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고수해온 유럽연합과 중국 및 러시아가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등 강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면서 미국의 시도는 좌절되어 왔다.
그러나 이란이 핵 활동 재개를 전격 선언하면서 이러한 국제사회의 기류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IAEA는 이란의 핵 활동 재개 방침에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이러한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또한 이란 핵 협상을 주도해온 영국·프랑스·독일도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이란이 이번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핵 협상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 나라는 이란의 핵 활동 재개가 2004년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란은 핵 활동 재개는 "핵연료를 제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대(對) 이란 압박 분위기로 돌아서면서, 그 다음 수순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란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기 위해 골몰해온 미국은 이번 이란의 핵 활동 재개 선언을 계기로 국제적 압박 노선 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이란 정부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적 핵 활동은 협상 불가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이번주 말부터 이란 정부와 IAEA의 기술 대화가 시작되고, 러시아의 대표단의 이란 방문도 이번주 주말에 예정되어 있다. 또한 1월 18일부터 유럽연합과 이란 사이의 협상도 열릴 예정이다. 연달아 열리는 이들 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따라 이란 핵문제의 향방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