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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토종과실 농장을 꿈꾸는 농사꾼이 있다. 추억이 주렁주렁 달리는 농장을 일구는 농사꾼이 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귀농한 강장수씨. 얼핏 보면 농사꾼보다는 공무원이나 교수가 어울릴 듯한 얼굴이다.
고향이 전라도 진도인 강씨는 서울에서 일을 하며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19살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강화도에서 근무를 하였다. 섬 청년이 마주한 것은 국민에 대한 봉사가 아닌, 비리와 인맥에 줄서기에 바쁜 공무원들의 모습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사직서를 낸 강씨는 서울 ㄱ대학 법학과에 들어갔고, 직장 생활을 했다. 산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섬 청년 강씨는 몸은 치열한 경쟁의 직장에 있었으나, 마음은 늘 고향 마을 뒷산에 있었다. 인터넷에서 강씨의 닉네임은 '나무신장'이다. 나무를 만지면 기운을 얻는다는 강씨의 몸은 나무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 먹은 것들이 너무 생각이 나요. 꿩밥 알아요? 출난이라고도 하지. 학교 다니면서 배고플 때 참 많이 먹었어요. 대는 달고, 파란 꽃은 쌉싸름하거든요. 그런데 이 두 맛이 조화를 이루는데, 어떤 과일도 따로 오지 못해요."
어릴 적 배고픔을 달래주던 아련한 추억의 맛을 통해, 강씨는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정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씨앗을 찾아 헤매고, 직접 기르고, 때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이 기쁘다고 한다. 강씨의 준서, 준혁 두 남매는 산의 나무를 자기 아빠가 다 심은 줄 안다고 한다. 그가 나무를 사랑하고 심는 일은, 이웃도 동료도 없이 경쟁에 갇혀버린 콘크리트 장막에 나무에 뿌리를 내려 균열을 내고 싶은 섬 소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원주 부론면에 온 지 8년이 되었다. 그의 귀농도 여느 사람처럼 현실의 어려움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좀처럼 수입은 없고, 객지 사람이 마을에 뿌리내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마을에서 총무 일을 맡고 있는 강씨지만, 마을의 중요한 결정이나 보조 정책이라도 있으면 객지 사람 대우를 받아야 했다.
"마을에 귀농을 했다고 기대해서는 안돼요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마을에 도움이 되면 그만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내 갈 길을 가는 거예요."
강씨는 학구파 농사꾼이다. 친환경 농사교육은 발품을 팔아서 다닌다. 교육을 받는데만 멈추지 않는다.
"산다래가 우리 건데 우리나라엔 연구 자료가 없어요. 미국에는 우리 다래에 대한 논문이 있는데. 토종과실을 하려고 외국 원서를 번역해가며 해야 하다니…. 귀농을 돈 벌려고만 해서는 힘들 수 있어요. 개척정신이 필요할 때예요. 농촌이 어렵고 힘들잖아요. 초상이 나도 장사를 지낼 사람이 없는 형편이잖아요. 어렵고 힘든 농촌을 살릴 개척정신을 가지고 귀농을 해야 할 때죠."
강씨가 토종과실 농장을 일구려는 마음도, 원서를 번역하며 사라진 토종과실을 재배하려는 뜻도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다. 희망을 찾고, 꿈을 되찾는 길을 열어가는 걸음을 내딛고 있다.
처음엔 꽈리고추를 했던 강씨는 3년 전부터 산머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를 하다보니 어려움도 많다. 지난해에는 산머루가 많이 달렸는데, 수확을 앞두고 비가 자주 와서 노균병이 번지고 당도가 많이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강씨는 농산물을 거래하는 것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꽈리고추를 할 때 톡톡히 재미를 봤다. 마을에서 함께 꽈리고추를 가락시장에 올려 보내면, 강씨의 고추는 마을 사람보다 두 배 이상의 가격을 받았다. 마을사람들이 '서울에서 왔다고 비싸게 주나' 하며 시기도 했다고 한다.
"선별이에요. 내 농산물을 내 얼굴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이라 생각하고 선별을 해야 하죠. 좋은 고추를 양심껏 선별해서 올려 보내니, 박스를 뜯어보지도 않고, 내 이름만 보고 값을 쳐 주는 거지요. 농사꾼의 영업은 양심을 건 신뢰를 심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강씨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산머루를 어떻게 하면 신선도를 유지해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가? 저장성이 없는 산머루는 보름 안에 소비를 해야 한다. 포장법도 여러 가지로 연구하지만, 내 집 뒷동산에서 갓 딴 산머루로 도시의 소비자가 느끼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쉽지가 않다.
"산머루만이 아니라 다래나 으름을 재배하는 토종과실 농장을 만들 겁니다. 제 농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옛날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고, 고향이 그리울 적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농장을 만들 거예요."
옛 추억이 피어오르는 토종과실 농장은 꼭 만들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강씨가 귀농을 할 건가를 경제적 문제 때문에 고민할 때, 손을 끌고 "당신 하고픈 것 하세요" 말한 것이 아내이다. 귀농해서 자식교육과 경제적인 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이때마다 흔들리는 강씨를 붙잡아 준 사람도 아내다.
"여보, 당신은 농사만 생각하고, 농사만 지어. 돈은 내가 어떻게든 벌어 올게."
취재를 간 이날도 밤늦게 학원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강씨의 아내를 식당에서 만났다. 지친 얼굴엔 남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가득하다. 강원도의 밤은 차갑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친환경 농업을 일구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www.naturei.net)'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