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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재상은 권력의 나팔수나 신권의 우두머리를 넘어서, 땅과 민중의 대리자라는 소명에 충실했다.
성공한 재상은 권력의 나팔수나 신권의 우두머리를 넘어서, 땅과 민중의 대리자라는 소명에 충실했다. ⓒ 이가서
무릇 역사적으로 성공한 지도자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보좌하는 뛰어난 참모들이 있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집단 혹은 국가를 홀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궁극적으로 지도자의 재능이라 함은 개인의 능력 자체보다는 자신을 보좌해줄 수 있는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고 그를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종 우리는 왕조 중심의 사관에 갇혀서 정치사를 역대 군주의 이름표로만 암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역사의 수많은 행간 속의 실질적인 주역은 바로 군주의 이름을 대신하여 정치를 주도했던 참모들이다. 곧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참모들의 이야기는 왕조 중심의 정치사관와 대중적 시선의 민중사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재상>(박윤규 지음/이가서 펴냄)의 '한국편''중국편'은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양의 명재상들에 관한 기록을 풀어놓는다. 자고로 세종대왕에게는 황희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유방에게는 소하, 조나라 혜문왕에게는 인상여가 있었다. 이들은 뛰어난 정치적 능력과 개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며 집단 혹은 국가적 전성기의 토대를 닦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재상을 단순히 군주를 보좌하는 정치적 2인자 혹은 신하들의 수장이라는 고전적 관념을 넘어서 군주와 대등한 '러닝메이트'로 인식한다. '하늘은 왕을 내리고 땅은 재상을 세운다'는 말처럼 왕을 세우는 것이 '천시(天時)의 의지'에 달려있다면 재상은 곧 '땅(=민중)의 대리자'로서 왕과 정치적으로 대등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종종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성공한 시대는 군주의 절대권력이 독주하거나 신하가 왕권을 능가하던 시대보다 왕권과 신권이 각자 상호 배려와 존중속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명재상들은 당대의 정치적 실세로서 단순히 군주의 나팔수가 되거나 자신의 기득권을 보존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을 이어주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곧 천하(天下)와 백성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

조나라의 귀중한 보물 화씨벽을 진나라가 갈취하려하자 용기와 재간으로 진왕의 무례함을 꾸짖고 국가의 위신을 지켜낸 인상여의 일화, 사적인 이유로 내불당을 건립한 세종대왕이 신하들의 격렬한 시위로 궁지에 몰리자, 왕을 대신하여 노구를 이끌고 집현전 학사들을 설득한 황희의 일화 등은 분열과 혼란의 시기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사회통합을 일구어낸 재상들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 흔히 리더십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정치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드물어졌고, 사회적으로 분열과 혼란이 넘쳐나며 통합의 리더십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차피 어느 시대이건 갈등은 존재해왔다. 중요한 것은 권력 그 자체를 탐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갈고닦아 바로 세우고 크게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 헌신'한다는 기본을 상기하는 것임을 역대 명재상들의 교훈에서 되돌아볼만 하다.

재상 - 중국편, 하늘은 왕을 내리고 땅은 재상을 세운다

박윤규 지음, 이가서(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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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 한국편, 하늘은 왕을 내리고 땅은 재상을 세운다

박윤규 지음, 이가서(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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