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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대혁명은 이후 세계사에 가져온 정치·사회적 변화 못지않게 내건 이념으로도 의미가 있다. 표방한 구호의 속뜻을 파헤치는 일은 혁명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세계인권사를 이해하는데도 꼭 필요하다. 인권논의 촉발에서 과정에까지 깊숙이 흐르고 있는 정신이다.

상대적으로 모호한 낱말은 '박애'다. '자유'와 '평등'은 일상에서도 빈번히 듣게 되는데, 자주 쓰는 두 단어와 나란히 놓여 있어 더 추상적인 느낌이다. 그럴수록 더 현미경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그리스의 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philanthropia(인간애)라고 불렀고, 후에 박애를 뜻하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형제애라 보아도 무방하다는 게 사전적 해설이다.

거장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삼색 시리즈 <레드> <화이트> <블루>는 프랑스 혁명정신을 철학적 내러티브로 필름에 담아내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박애를 그려낸 건 94년작 <레드>다. 삼색시리즈의 완결 편이자 2년 뒤 심장마비로 사망한 감독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패션모델로 활동 중인 여대생과 이웃의 전화대화를 엿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전직 판사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애정의 대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움직이는지에 대한 관찰을 기록한다. 이질적인 두 사람 간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았어도 '박애'정신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면 인권논의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제3세대 인권이론을 접하면 도움이 된다. 박애사상이 어떻게 구체화된 권리로 표현되는지 알 수 있다.

제3세대 인권이론, 배경과 내용

1948년 12월 국제연합 세계인권선언 발표 후에만 150번이 넘는 전쟁에서 2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절대빈곤에 처한 이가 8억이 넘고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이가 4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자연환경은 갈수록 파괴되고 유전공학 신기술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치닫고 있다. 인류가 처한 위기가 여기에 있다고 진단하고 내리는 대응책으로 전개되는 논의가 제3세대 인권이론이다.

1972년 바작(Karel Vasak)은 주창한다.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제1세대 인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제2세대 인권이라 부르고 제3세대 인권으로 '연대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용으로 경제발전권, 환경권, 평화권, 인류공동의 유산에 대한 소유권, 의사소통권을 든다. 제20차 UNESCO총회의 결정으로 1980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인권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서로 다를 수 있는 권리'와 '인도주의적인 도움을 청구할 권리'를 추가로 덧붙여 논의했다.

제3세대 인권은 앞선 세대 인권에 비해 정치적 색채가 희미하다. 제1세대 인권과 제2세대 인권이 법적 강제수단을 통해 국가에 의해 이뤄짐에 반하여, 제3세대 인권은 사회동반자가 연대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체도 제1세대 제2세대 인권이 개인이라면 제3세대 인권은 민족이든 국가든 집단이다.

한반도 현실, 인권을 확대하는 특수성으로

종래 서구 산업국가가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추구했다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실현에 치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민혁명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사회주의혁명은 '평등'에 대한 열정으로 요약된다. 제1세대 인권의 이념은 '자유'에, 제2세대 인권은 '평등'에, 제3세대 인권의 중심이념은 '박애'사상에 연결된다. 프랑스 혁명은 이후 이백년 넘게 인류역사에 펼쳐질 인권화두를 압축해서 제시하였다는 데 기실 놀라움이 있다. 혁명정신은 오랜 세월 인류사에 나침반이 되었다.

제3세대 인권이론은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전 논의가 국가 내부문제로 제기되어 국내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우선이었던데 비해, 제3세대 인권은 국제법적으로 문제되고 세계적 차원에서 인정되기를 요구한다.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최근 인권논의의 흐름은 우리내부 문제에도 더 많은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외부로부터 문제제기가 잦아 질 것이다.

국제사회가 인권 보편성을 관철하려 들 때 방어막으로 한반도의 특수성을 거론하는 일이 많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연유하는 논리가 대부분이다. 국가권력의 비대함을 인정하고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이 아니라 인권을 확대하는 한반도 특수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도리어 새로운 인권방향을 제시하는 특수성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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