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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가 연일 화제다. 조선시대 연산군의 동성애와 궁중 광대의 존재, 오늘날의 개그콘서트라는 '소학지희' 등 풍성한 이야깃거리. 여기에 여장남자 이준기씨의 매력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나 보다(실제로 극장에 가면 이준기씨가 나오는 부분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온다는 말도 들린다).

영화의 원작은 알려진 바 대로 김태웅의 희곡 <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내 위치한 극장 용에서는 영화 <왕의 남자> 상영에 맞춰, 연극 <이> 재공연이 한창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상영될 때 원작 연극 <날보러와요>가 무대에 올려지면서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경험을 한 독자라면 이번 공연 역시 관심을 가질만 하다.

연극에서는 여장남자 광대인 '공길'이 영화보다 비중있게 그려진다. 특히 장생과의 갈등을 다룬 초반 장면은 영화에서보다 울림이 크다. 연산군의 총애로 궁중광대기관인 희락원의 수장 '대붕'이 된 '공길'에게 동료광대 '장생'은 '이건 아니다'며 '장바닥에 나가 빌어먹어도 할 말은 하고 살자'며 궁궐에서 나갈 것을 제안한다. '피죽을 먹어도 줏대는 있어야 한다'는 장생에게 공길은 세상은 줏대갖고 사는 게 아니라고 차갑게 말한다.

이에 장생은 그들이 함께 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호소한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보탬이 됐어. 몹쓸 것들 흉내내면 웃다가도 그 놈 잡아들여 혼줄 내고. 그래서 통쾌했고. 이젠 입이 근질거려도 한 마디 못하잖아."

배우들의 열연, 재미있는 볼거리, 다양하고 화려한 의상, 영화와 비교하는 재미 등을 뒤로 하고 왜 유독 이 장면에서 눈길이 머물렀을까.

문득 작년에 신문사 기자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신문사를 두고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신문사지만 '우리 속 사자'와 같다'는 자조섞인 평가를 내놨었다.

물론 이 연극에서는 권력의 맛에 취해 본질을 잃어가는 광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공길'은 과거 우리 언론의 모습은 물론 현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해서 씁쓸했다.

다만 현재의 언론은 '권력'보다 '자본'의 힘에 더 자유롭지 못한 것이 다를 뿐이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중순, 일부 중견 기자들이 삼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작금의 보도 행태에 반기를 들었을까 싶다.

연극이 끝나고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장바닥에 나가 빌어먹어도 할 말은 하고 살자'는 장생의 말에 우리 언론은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연극 <이>는 1월 30일까지 극장 용에서 공연한다. 참고로 '이'는 조선 시대에 왕이 종4품이상의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극중 연산군이 공길에게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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