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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앞에 내걸린 삼성그룹 깃발.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앞에 내걸린 삼성그룹 깃발.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결국 왕의 귀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9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 2006년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장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매년 자신의 생일에 맞춰 열리는 '삼성인상' 시상식에 이 회장이 불참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또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부회장도 예년과 달리 시상식장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대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20여명의 그룹 사장단이 행사장에 참석했다.

무대 가운데 맨 앞줄에 자리를 잡은 이들 삼성 수뇌부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회장단 자리인 맨 앞줄에는 윤 부회장을 비롯해 이수빈 삼성사회봉사단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허태학 삼성종합화학 사장 등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뒷줄인 사장단 자리엔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을 비롯해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과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이건희 회장-이재용 상무-이학수 부회장 모두 불참

한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시상식은 일부 수상자 가족을 빼고 철저히 내부직원들만이 참여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서소문 중앙일보 빌딩 입구와 로비, 행사장 입구에서는 삼성 보안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되기도 했다.

삼성인상은 지난 1993년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뒤 94년부터 뛰어난 업적을 낸 국내외 삼성 임직원을 선정해 주는 상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거의 매년 행사에 참석해 수상자들에게 상을 직접 수여해 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시상식이 끝난 뒤 이 회장은 사장단과 만찬을 가져왔다. 이 자리는 삼성인상 수상자를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이 회장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이 회장은 매년 저녁에는 한남동 자택으로 자리를 옮겨 가족들과 생일을 보냈다. 그러나 올해로 64번째 생일을 맞는 이 회장은 결국 귀국도 하지 못한 채 외국에서 생일상을 받게 됐다.

12월 중순→12월 22일→1월 6일→설날?
... 혼선 거듭하는 귀국설


그렇다면 이 회장은 언제쯤 돌아올까. 이 회장의 귀국을 둘러싸고, 그동안 재계 주변에선 온갖 설(說)이 나돌았다. 특히 지난해 말 검찰이 X파일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후, 삼성 주변에서는 이 회장의 연내 귀국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X파일 사건도 일단락됐고, 그룹의 새해 경영 전략과 인사 등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이 회장이) 연내에 들어오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확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은 한발 더 나아가, 12월 22일 청와대서 열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상생 회의에 이 회장이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어 이 회장의 연말 귀국설 등이 이어졌지만, 언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해 들어서도 이 회장의 귀국설은 이어졌다. 9일로 예정된 삼성인상 시상식과 사장단 인사등 그룹과 관련된 중요 일정이 겹치면서 '귀국설'은 좀더 힘을 얻었다. 일부 삼성 관계자는 "만약 1월 중에 들어오신다면 그동안 삼성인상에 참석해 온 전례에 봤을때 (시상식) 그 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삼성그룹 전용 비행기인 '보잉-737'이 지난 6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온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이 회장의 귀국은 거의 기정사실화 됐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삼성구조본 관계자는 지난 6일 "이 회장이 당분간 귀국하기 어려운 사정에 있다"며 "9일로 예정된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 회장의 1월초 귀국을 부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래 6일 오후에 일본을 통해 들어오실 예정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아직 미국에서 마무리해야할 일이 남아있고, 국내 사정이 아직 여의치 않은 것 같아 귀국이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해법 풀기 위해서라도 이 회장 빨리 돌아와야"

지난해 9월 5일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회 재경위의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채택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출석했다. 이 회장은 4일 미국으로 신병 치료차 출국했다.
지난해 9월 5일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회 재경위의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채택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출석했다. 이 회장은 4일 미국으로 신병 치료차 출국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회장의 귀국이 늦어짐에 따라 자칫 해외체류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등 삼성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고,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역할 등을 감안할 때 이 회장이 빨리 돌아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에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 회장이 다음달 8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IOC 정기총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1월 설연휴를 전후로 국내에 잠시라도 머물렀다가 이탈리아로 출국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1~2주 사이에 (이 회장이) 귀국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IOC 총회의 참석은 모든 IOC 위원의 의무이며 이 회장 역시 1996년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이 총회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 회장이 이번 IOC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의 IOC 총회 참석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해 불참 가능성도 열어 놨다.

최근 검찰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배정 수사에 강도를 높이고 있고, 국회에 계류돼 있는 삼성 지배구조와 관련된 입법문제 등 국내 여건을 감안할 경우 이 회장의 해외체류가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X파일 수사가 일단락됐다고 하지만, 검찰이 이 회장 소환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삼성 쪽에선 부담이 여전할 것"이라며 "1월 중에 들어오지 못할 경우 (해외체류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이 회장이 하루빨리 들어와 삼성과 관련된 제반의 문제를 먼저 풀기 바란다"면서 "검찰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배정과 불법정치자금 등에 대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도 "지난해 불거진 삼성과 관련된 각종 문제는 한국경제 뿐 아니라 정치 등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 회장을 비롯해 삼성 스스로 국민들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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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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