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의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난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가운데, 샤론이 주도해온 중동 평화프로세스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3월 총선을 앞두고 샤론의 노선을 계승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권한대행과 강경파인 네탄야후 리쿠드당 당수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네탄야후의 집권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올메르트 총리 대행이 승리하더라도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줬던 샤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중동 정세와 관련해 우선적인 관심사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의 평화협상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던 양측의 평화협상은 2003년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에 땅을 돌려주기로 결단을 내리면서 중대한 전기를 맞았었다. 동시에 이러한 결단은 샤론이 강경 성향의 리쿠드당과 결별하고 카디마를 창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네탄야후는 샤론의 결정이 이스라엘의 안보와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자신이 집권할 경우 이러한 결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자신은 "샤론의 계승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그가 집권하더라도 초강경론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네탄야후 "이란 핵시설 선제공격 할 것"
샤론 이후 중동 정세와 관련해 또 한가지 복병은 이스라엘의 이란 정책이다. 특히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핵 활동 재개에 들어가, 이스라엘 총선에서 강경파가 승리할 경우 이란-이스라엘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네탄야후는 지난해 12월 샤론 총리에게 대 이란 강경책을 주문하면서 "내가 이스라엘 정부를 구성하면 과거에 사담 후세인의 원자로를 공격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자신이 집권할 경우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락 원자로를 공습한 것처럼,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해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하겠다는 의미이다.
물론 네탄야후의 공언처럼 그가 집권하더라도 이란 공습에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억제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탄야후는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이란의 핵무장을 저지하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최고 임무라며, 자신이 집권하면 이러한 과업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네탄야후가 집권할 경우,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적어도 '말의 전쟁(war of rhetoric)'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란, 핵 시설 봉인 제거
한편 이번 주 월요일(9일)부터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공언했던 이란 정부가 10일부터 핵 시설의 봉인을 제거하고 핵 활동 재개에 들어가 이란 핵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이란 정부는 핵 활동 재개가 연구 수준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소규모의 우라늄 농축 활동도 포함되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참고로 핵분열 물질인 U-235를 저농축하면 경수로의 핵 연료로 사용이 되고, 90% 이상 고농축을 할 경우 핵무기 물질이 된다. 이란은 자신의 핵 활동이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적 핵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 등 서방진영은 이 프로그램이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란이 공언해온 것처럼, 핵 시설 봉인을 제거하고 핵 활동 재개에 들어가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IAEA와 유럽연합 등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이란의 핵 활동 재개를 계기로 '이란 대 국제사회'라는 대립 구도를 본격 추진할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안개에 휩싸인 '중동의 미래'
이처럼 중동의 앞날은 '불안' 그 자체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촉발된 이라크의 유혈 사태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샤론 이후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계와 이란 핵 문제의 앞날도 점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의 에너지 보고이자 화약고로 불려온 중동의 정세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요 당사국 내부에서 극단주의와 일방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침공의 당사자인 부시 행정부에 대한 미국 내부의 견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이란 내부에서 아흐마니네자드의 초강경 대외정책에 대해 견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강경론을 주창해온 네탄야후 역시 역풍을 맞고 있다. 이처럼 미국, 이란, 이스라엘 내부에서 자기정화 기능이 살아난다면 최악의 충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역시 중동 외교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보여주듯, 중동 문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이제 미국의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한국 나름의 원칙과 전략을 세워 중동에 대한 외교적 역량을 강화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