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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글귀
금강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글귀 ⓒ 이기원
"금강산 내에서는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됩니다. 금강산 곳곳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에 대해 북한 측에서 오해할 수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글이 새겨진 바위에 손이나 발을 얹고 사진을 찍으면 안 됩니다."

처음 만날 때는 어색하고 낯설지만 한두 마디 나누다보면 같은 동포라는 친근함이 새록새록 더해가는 걸 지난 밤 금강산 호텔에서 느꼈습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살고 있지만 통일의 날을 바라고 사는 마음도 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랜 세월 단절되어 살아온 탓에 서로 이해하기 힘든 이질감도 존재합니다. 그 이질감이 때로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단절된 세월이 주는 이질감은 차창을 스치고 지나는 풍경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곁가지가 거의 없이 매끈하게 치솟아 자란 늘씬한 소나무들이 수없이 늘어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저 소나무를 미인송이라 부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를 한다고 합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만 보고 지나칠 뿐입니다.

금강산 선녀들이 내려와 춤추었다는 무대바위
금강산 선녀들이 내려와 춤추었다는 무대바위 ⓒ 이기원
구룡연 주차장에서 내려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던 풍경과는 달리 천천히 걸으며 보는 모습이 훨씬 경이롭게 다가섰습니다. 빠른 게 느린 것만 못하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커피 한 잔 드시고 가시라요."
"안 들고 가시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납네다."

금강문 입구에 들어서기 전 커피와 차를 끓여 놓고 파는 북한 아가씨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멈춰 서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 올라갔습니다. 말없이 지나치기 미안한 이들은 내려오다 마실 거라며 지나갔습니다.

구룡연 오르는 길목의 풍경
구룡연 오르는 길목의 풍경 ⓒ 이기원
하늘을 향해 치솟은 화강암 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옥류동 계곡물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때가 겨울이라 구슬처럼 맑은 물도 볼 수 없고,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소리를 듣지도 못합니다. 구슬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는 옥류동을 지나며 느끼는 아쉬움이었습니다.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양이라는 비봉폭포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양이라는 비봉폭포 ⓒ 이기원
폭포도 셋이나 있었습니다. 봉황이 날아오르는 모습이라는 비봉폭포, 봉황이 춤추는 모양이라는 무봉폭포, 그리고 유점사에서 쫓겨난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가 있었습니다.

폭포의 가장 큰 매력은 저 깊은 곳을 향해 제 몸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장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겨울인 지금 세 폭포 모두 차갑게 얼어붙어 있습니다.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면 저 폭포수들도 우당탕 소리 내며 쏟아져 내리겠지요.

유점사에서 쫓겨난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
유점사에서 쫓겨난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 ⓒ 이기원
금강산 여기저기에서 새겨진 글은 많습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적은 글도 있지만 멀리는 신라의 최치원의 시에서부터 조선시대 문인의 글도 새겨져 있습니다. 얼어붙은 구룡폭포 옆 바위 절벽에는 '미륵불'이란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1919년 새겨진 암각 글씨 미륵불
1919년 새겨진 암각 글씨 미륵불 ⓒ 이기원
1919년 해강 김규진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높이만도 19m, 폭 3.6m에 이르는 우리나라 암각 글씨 중에서 가장 큰 글씨라고 합니다. 미륵불이란 미래에 출현할 부처로 미륵이 출현하는 세상에는 현세에 고통을 당하던 중생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1919년은 3․1운동이 일어났던 해입니다. 구룡폭포 바위 절벽에 글을 새길 때 김규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구룡폭포를 바라보는 전각이라는 관폭정에서 얼어붙은 구룡폭포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한참을 머물다 내려와 구룡대로 향했습니다. 좁고 험한 급경사길을 올라 정상에 서면 상팔 담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금강산 팔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여덟 연못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는 곳입니다.

구룡대 정상에서 내려다본 상팔담
구룡대 정상에서 내려다본 상팔담 ⓒ 이기원
가쁜 숨 몰아쉬며 힘겹게 한발 두발 옮겨가며 30여 분 올라가니 겨우 구룡대 정상에 닿았습니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올라와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어렵게 상팔담을 찾아보았습니다. 여덟 연못을 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어 밀려 내려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커피 한 잔 드시고 가시라요."
"추운데 따끈한 커피가 좋습네다."

하산 길 금강문 입구에서 커피를 팔던 아가씨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오를 때와 같은 낭랑한 목소리로 커피를 권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하도 맑아 멈춰 서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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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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