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아주머니가 오랜만에 '국수'를 먹으러 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겨울에 웬 국수? 국수를 좋아하지만 우리 집의 경우 국수는 주로 더운 여름에 더위를 쫓을 양으로 먹었지 겨울에는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밥이 아닌 다른 먹거리라면 떡 만두국을 가끔 끓여먹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얘기나 할 양으로 국수초대에 응했는데 막상 국수를 대하고 따끈한 국물을 한입 머금으니 마음이 달라졌다. 어찌나 맛있던지. 연거푸 두 그릇(?)을 후딱 해 치웠다.
겨울에는 따뜻한 다시 물을 부으면 되는 것을, 그 생각을 못하고 겨울국수라니 가뜩이나 추운데 얼어 죽을 일이 있나하며 외면한 것이 애석했다. 아무튼 한번 짜릿함을 맛본 나의 미각은 한번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해서 그날 저녁 그리고 다음날 점심과 저녁 연거푸 국수를 먹고 나니 아, 드디어 포만감이 왔다.
나의 이런 성향은 먹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겨울산 휴양림, 거창의 금원산 휴양림을 다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그곳 풍경과 거창 시내에서 먹었던 '통뼈감자탕'을 잊을 수 없었던지 남편이 남은 휴가를 써먹어야 한다기에 당연 그곳으로 정해서 또 한번 더 갔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달쯤 푸욱 곰삭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고 대신 대구에 있는 '통뼈 감자탕'을 찾아 통뼈를 뜯으면서(?) 금원산 휴양림을 그리워하였다.
다시 찾은 금원산
그러다 올해 또다시 친구들과 금원산 휴양림을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 볼까 했으나 다들 금원산을 잊을 수 없다하여 다시 찾게 되었다. 지난해는 우리가 갔을 때 다른 한 팀이 있었지만 올해는 아주 완전히 독무대였다.
산장에 짐을 풀고 창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확' 트이면서 아니, 그 동안 나는 왜 그토록 찡그리고 살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에게 내었던 짜증과 남편과의 티격태격 등 금원산 풍경을 바라보며 지난 일상을 생각하니 모두 내 잘못이었다.
이래서 여행이 필요한 것이구나. 새삼 여행을 존재 의미를 절감했다. 마음이 열림은 나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난감이 없어도 여섯 명의 아이들은 잘도 놀았다.
벽장 속에 들어가서 이불처럼 누워있기도 하고 마침 여섯 개 있는 베개를 다리사이에 끼고 뜀뛰기를 하는 등 시끌벅적 일대 난장이 벌어졌다.
그리하여도 그곳에서는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라는 말을 안 해도 되어서 좋았다. 산장엔 유일하게 우리들뿐이니 오히려 시끄러워야 산도 덜 적적할 것이었다. 어른까지 합해 아홉이다 보니 귤도 한 박스를 싸왔는데 쑥쑥 잘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귤 주스를 만든다며 한참을 정신없이 몰입했다.
집에서 귤 쥬스 만든다며 전을 폈으면 분명 한소리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는 달랐다. "어떻게 쥬스 만들 생각을 다했어? 열심히 만들어 한 병 채워서 한잔 씩 돌려주이소!!"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얘기들을 2박 3일 내내 멈추지 않았다. 이십대를 함께 보냈던지라 옛날 추억을 더듬는 것부터 시작하여 중년, 노년의 삶에 대한 설계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산행
지난해에는 아이가 어려 금원산 정상을 가지 못했기에 올해는 꼭 정상에 올라서고야 말리라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 또한 정상까지 못가고 중간에 돌아왔다. 이유는 날씨가 지난해보다 춥고 바람이 불어서 산장에서 뭉개다가 너무 늦게 출발하여 중간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좀 미진한 산행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왕복 두 시간은 충분한 듯했다. 그냥 길도 아니고 눈이 2센티미터쯤 깔린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뽀드득 뽀드득 걷는 다는 것은 아이, 어른 모두에게 유쾌한 일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때 산장으로 돌아와서 후다닥 밥을 하여 김과 김치찌개 달랑 두 가지만 반찬으로 두고 먹어도 입이 많다보니 모두들 꿀맛이었다(이 '꿀맛'은 돌아올 때 거창 시내의 모 중국 음식점에서 또 한번 맛 볼 수 있었다. 그냥 별 기대하지 않고 들어갔는데 그 중국집은 그릇부터 달랐다. 보통의 하얀색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고 도자기였다. 그릇만 특별한가 했는데 먹어보니 맛 또한 일품이었다. 우리가 배고파서라기보다 정말 깔끔하고 맛이 있는 집이었다).
맺으며
한번 와 본 것도 인연인지 지난해는 그토록 무서웠던 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박3일이 꿈처럼 흘러갔다. 평일에 가서 산장을 통째로 전세 낸 듯 놀다 왔기에 금원산 휴양림이 더 정겨웠다.
돌아와서 금원산은 이제 그만 갈까 자문해보니 역시 대답은 '아직도 고프다'였다. 친구들에게 전화해 보아도 친구들 역시 갈수록 더 정이 간다고 하였다. 해서 여차하면 봄이 되기 전에 또 한 차례 '금원산 휴양림, 못 잊어서 또 왔네!' 노래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