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미 소설집 <노는 인간>(2005년 11월 17일 열림원 펴냄) 속의 '노는 인간'을 읽었다. 이 소설은 소설가가 내레이터 겸 주인물(主人物)인 예술가 소설 또는 소설가 소설이다. 이를테면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누구의 작품이건 상관없이)의 가지(枝) 하나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최후의 인간 K'를 쓰는 중인 소설가 '나'의 일상 중의 하루.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살고 있는 동네와 주변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뭐 특별한 사건이 터지지도 않는다. '나'의 보통 일상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직업이 '전업작가'이다 보니 이것이 '노는 인간', 즉 '백수건달'의 일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 쓰기'의 숙제를 지니고 있다.
'나'는 후배의 전화를 받은 뒤, 까부는 동네 꼬마를 울게 만들고 점심 후에 외출을 한다. 외출하여 처음 머무는 곳이 세탁소 앞에 세탁소 주인이 가져다 놓은 소파. 한 할머니가 누워 있고 '나'는 그 옆에 앉는다. 그곳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슈퍼 아줌마와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비디오 대여점 사람을 바라보기도 하고, 시장을 지나서 헬스클럽이 바라보이는 2층 리빠똥호프로 가게 된다.
1층의 작은 리빠똥호프 사장은 100평의 2층 리빠똥호프보다 더 큰 200평짜리 호프집을 차리기 위하여 돈을 빌리러 다니고, 100평짜리 2층 리빠똥호프에서 나온 '나'는 '아이편한소아과' 앞 벤치에서 캔맥주를 마신다.
'나'는 낮에 다시 전화한 후배가 현재 창작중인 소설 <최후의 인간 K>를 <최초의 인간 M>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충고한 것을 떠올리며, 주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K로 할 것이냐 M으로 바꿀 것이냐로 고민한다.
이제 뉴타운 개발로 '나'는 이 동네에서 떠나든지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이사를 앞둔 '노는 인간' 같은 '전업작가'인 '나'. 앞으로 '나'는 <최후의 인간 K>를 어떻게 완성시켜 나갈 것인가. 이 소설의 마무리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나는 다섯 번째 캔맥주를 따서 마셨다. 그리고 K와 M에 대해,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여섯 번째 캔맥주를 딸 때 환하게 불 밝힌 텅 빈 시내버스가 빠앙, 하고 지나갔다. 맥주가 넘쳐 손등을 적셨다. 햇빛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뿐이었다. -<노는 인간> 32쪽에서
마지막까지 가도록 '노는 인간'에서 큰 감동의 해일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럴 만한 구성법에서도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잔잔한 사고(思考)를 잇달아 연결하여 전업소설가의 한 일상적 모습을 그려내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구씨는 197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구씨의 첫 창작집인 <노는 인간> 속에는 '초지일관 그녀는', '형제 이발관', '동백여관에 들다', '봉덕동 블루스', '광대버섯을 먹어라', '그리고 싱가포르', '코탱의 골목', '하품', 'Sweet Town' 등 단편소설 9편이 더 들어 있다.